[인사이드 스토리]2나노 전선에 선 日…'메모리 강국' 한국 시험대

강민경 2026. 2. 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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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3나노·라피더스 2나노…日 투트랙 복귀
반도체를 안보 자산으로…공급망 재편 본격화
전문가 "HBM에 머문 한국, 로직 역량 키워야"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이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앞세워 반도체 산업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대만 TSMC와 자국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를 양축으로 삼아 3나노-2나노 선단 공정까지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입니다.

단순 기술 추격이나 산업 육성이라기보다 반도체를 국가 안보 자산으로 규정하고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전략적 전환에 가깝다는 평가입니다. 메모리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는 한국과 대비되면서 시스템반도체 전략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D램 제국의 전성기

일본 반도체 산업의 전성기는 1970~1980년대였습니다. NEC·도시바·히타치 등 대기업들은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 정책과 탄탄한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D램을 비롯,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를 동시에 장악했죠. 설계부터 제조까지 한 기업이 책임지는 수직계열 구조 속에서 품질과 수율을 끌어올렸고 일본 반도체는 오랜 기간 '고장 나지 않는 제품'의 대명사였습니다.

오일쇼크 이후 미국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던 시기에도 일본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설비 투자를 이어갔습니다. 높은 공정 수율과 엔저 효과를 앞세워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죠. 1990년 기준 세계 반도체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6곳이 일본 기업이었고 생산액은 1970년대 대비 8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흐름은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기점으로 꺾였습니다. 가격 규제와 시장 개방 압박이 겹치면서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공격적인 설비 투자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미세 공정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선단 공정을 유지하려면 천문학적인 자금 투입이 전제됐습니다. 그러나 수익 기반이 흔들린 일본 기업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죠.

* 1980년대 일본 반도체의 급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일본과 체결한 통상 협정. 일본의 반도체 덤핑 수출 문제를 계기로 협상이 시작됐으며 일본은 반도체 가격을 원가 이하로 낮추지 못하도록 규제를 받음. 자국 시장에서는 미국산 반도체 점유율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하는 게 골자. 이로 인해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는 평가.

그 사이 대만은 파운드리를 산업의 중심 모델로 키우며 생산을 전문화했고 한국은 메모리에 선택과 집중하며 격차를 벌렸습니다. 일본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과 제조 노하우를 지켜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글로벌 분업 체제 속에서 자국의 위치를 새로 정립하지 못했고 결국 주도권을 내줬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 매출 10위 변동 추이./그래픽=비즈워치

외부 수혈+내부 복원

실패의 경험은 일본 정부가 현재의 반도체 전략을 다시 짜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일본은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자 '경제안보 핵심 품목'으로 규정하고,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복원하겠다는 목표 아래 단계별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메모리부터 로직까지 전 분야를 다시 장악하겠다는 식의 전면전은 아닙니다. 자동차·우주항공·산업용 기기에 쓰이는 시스템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죠. 반도체를 수출 확대의 수단으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자국 제조업 전반을 떠받치는 기반 산업으로 재배치하는 흐름입니다.

이러한 전략의 현실적 출발점은 대만 TSMC입니다. 일본이 당장 보유하지 못한 선단 공정 역량을 외부에서 끌어와 공급망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판단이죠. 최근 TSMC는 규슈 구마모토현 제2공장에서 3나노 공정을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일본 정부에 공식 전달했습니다. 당초 6~12나노급 성숙 공정을 전제로 설계됐던 공장이 선단 공정으로 방향을 튼 것입니다.

TSMC의 결정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산 거점 다변화가 불가피해졌죠. 미·중 갈등과 대만해협 리스크 속에서 우방국 내 선단 공정 확보가 전략적 선택지로 떠올랐습니다. 여기에 일본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과 소부장 생태계 경쟁력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웨이저자 TSMC 회장이 도쿄 관저를 직접 찾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게 계획을 설명한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총리는 이를 "경제안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선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외국 기업 유치를 넘어 선단 제조 역량을 자국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정치적 메시지였죠.

공정 전환에 따라 투자 규모도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일본 언론은 구마모토 제2공장의 설비 투자액이 122억달러에서 170억달러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보조금 추가 확대를 검토 중입니다. 3나노는 AI 데이터센터·자율주행·로봇 등 고성능 연산 수요를 떠받치는 전략 공정입니다. 일본은 이를 단기 공급망 완충 장치로 활용하면서 장기적으로는 2나노 영역을 자국 기업에 맡기는 이원 구조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일본 반도체 지원 정책 및 기업./그래픽=비즈워치

중국과는 다른 위협

그 장기 축이 라피더스입니다. 지난 2022년 도요타·소니·키옥시아 등 8개 기업이 출자해 출범한 라피더스는 2027년 이후 2나노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상실한 선단 제조 주권을 되찾겠다는 상징적 프로젝트입니다.

자금 동원 규모도 공격적입니다. 민간 출자금이 확대되고 있고 정부가 약속한 재정 지원만 2조9000억엔에 달합니다. 반도체와 AI 전반을 합치면 2030년까지 10조엔 규모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정부가 목표를 설정하고 민간 자본을 결집하는 전형적인 '미션 지향형 산업정책'입니다.

문제는 기술 축적의 시간입니다. 2나노는 10·7·5·3나노로 이어지는 공정 진화를 거쳐야 안정적 양산이 가능한 영역입니다. 일본은 이 연속성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 IBM과 손을 잡았습니다.

IBM은 2나노의 핵심인 나노시트 기반 GAA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라피더스는 IBM과 협력해 테스트 웨이퍼 단계까지는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기술 실증과 대량 양산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가장 큰 변수는 EUV 노광장비와 양산 경험입니다. 현재 확보한 EUV 장비는 1대 수준에 불과합니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앞세워 격차를 좁히겠다는 구상이지만 실제 수율과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러한 일본의 행보를 "늦었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단순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차원이 아니라 파운드리를 축으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 다시 발을 들이려는 전략적 판단이라는 겁니다.

이 교수는 "2나노 공정은 하루아침에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선단 공정은 설비 투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수율 관리와 공정 노하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과거 세계 1위를 경험한 반도체 강국이고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경쟁력이 여전히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본의 산업 구조를 감안하면 성공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며 "중국과는 성격이 다른 변수"라고 덧붙였습니다.

"HBM 이후 준비해야"

TSMC의 일본 진출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입니다. 이 교수는 "TSMC의 선단 공정 운영 경험이 일본 산업 생태계에 일부 흡수될 수 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생산 거점 유치를 넘어 기술과 인력, 운영 노하우가 간접적으로 축적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이 메모리가 아닌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에 방점을 찍은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은 비메모리 영역입니다. 메모리는 30% 안팎에 불과합니다. AI 반도체 경쟁의 핵심 역시 로직 설계와 제조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이 교수는 "AI 반도체는 로직이 중심이고 메모리는 부품에 가깝다"라며 "일본도 AI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파운드리 영역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과도한 위기론은 경계하면서도 구조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일본의 2나노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삼성 혼자 대응하기에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한국도 전체 반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향에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SK하이닉스가 HBM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 간 경쟁을 통해 파운드리 역량을 키우는 방안도 검토할만한 시나리오"라고 제언했습니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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