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말의 해?… 띠 동물에 색 붙이는 것은 우리풍습 아냐[2026 설특집]

인지현 기자 2026. 2. 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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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설특집 - 말에 대한 말·말·말
6가지 ‘진실 혹은 거짓’
게티이미지뱅크

새해가 되면 60갑자(甲子)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우리 민속 문화 속 띠 동물에 대해 알아보고, 그 속성에 빗대 한 해를 풀이하는 일도 반복된다. 2026년 올해는 병오년(丙午年) ‘말의 해’. 열두 띠 가운데 일곱 번째 동물로, 활력과 강인함의 상징인 말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병오년과 띠 동물인 말에 대한 여러 이야깃거리 중 ‘진실과 거짓’을 동물 민속학자인 천진기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장에게 들어 봤다. 천 위원장은 2011년부터 8년간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지냈으며, ‘동물민속학자가 들려주는 열두 띠 이야기’ ‘인간·동물 민속지’ 등을 집필한 학자다.

1. ‘말띠 해’의 시작은 1월 1일이다?

새해가 되면 가장 먼저 벌어지는 여러 논쟁 중 하나는 ‘띠’의 시작점이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양력 1월 1일, 음력인 설·입춘 등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병오년 말띠 해의 기점에 대해 천 위원장은 “결론적으로 띠의 기준은 음력”이라면서 “이 때문에 설 이전과 이후로 뱀띠와 말띠가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병오년은 60갑자의 간지기년법(干支紀年法)인데, 이는 음력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역법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천 위원장은 “사주명리학에서는 입춘을 새해 기준으로 주장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큰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며 “사주도 결국 60개 간지 체계에 기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 조상들도 오방색 띠 동물로 운명을 점쳤다?

천 위원장은 “띠 동물에 색을 붙이는 건 본래 우리 띠 담론 전통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 문화에 오행(五行)과 오방색(五方色)으로 시간, 방위 등을 표기하는 기호는 있지만, 띠 동물을 색깔별로 구분해서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풍속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의 시작은 2007년 정해년(丁亥年)이 중국 속설에 영향을 받아 황금돼지띠로 둔갑한 것이었다. 이어 ‘황금돼지띠 아이들은 재물운을 타고난다’는 속설이 확산되면서 띠 동물을 색깔별로 구분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새해는 10간의 병(丙)과 12지의 오(午)가 결합한 병오년인데, 병은 오방색으로 적(赤)이기도 하다. 그래서 ‘붉은 말의 해’라고 부르지만, 이 역시 최근의 문화적 양상에 따른 것일 뿐이다.

3. 병오년은 언제나 활력·강인함을 상징했다?

병오년은 말에 빗대 ‘힘차게 질주하는 한 해’로 풀이되지만, 과거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60년마다 돌아오는 병오년의 병(丙)은 음양오행에서 양화(陽火)이고, 오(午)도 양화에 속하기 때문이다. 천 위원장은 “말이 가지는 이미지도 활기차고 외향적인데, 거기에 양의 화가 겹쳤으니 양의 기운이 무척 센 말의 해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백말띠는 팔자가 세다’는 잘못된 속설도 실은 흰 말띠에 해당하는 경오년(庚午年)이 아니고 병오년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동음이의어와 관련된 문제도 있다. 병오년의 병(丙)은 아프다는 병(病)과 같은 발음이다. 그래서 10월, 말에 제사를 지낼 때 병오일(丙午日)을 꺼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4. 장 담그기 좋은 ‘말의 날’도 있다?

올해는 ‘말의 해’지만 우리 세시풍속 중에는 매해 ‘말의 날’을 기념하는 일도 있었다. 천 위원장은 “조선 시대 때는 정월 첫 ‘말날’에 말을 위한 제사를 지내며 그 중요성을 기렸다”며 “음력 10월 상달의 말날에도 팥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외양간에 갖다 놓고 말의 건강을 빌었다”고 소개했다.

말날에는 소와 함께 중요한 가축으로 여겨진 말에 제사를 지내고 찬(饌)을 줘 위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 이날 풍속으로 장을 많이 담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천 위원장은 “말이 좋아하는 콩이 장의 원료이고, 우리말 ‘맛있다’의 ‘맛’과 ‘말’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맛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말날에 장을 많이 담갔다”고 설명했다.

5. 마을을 지키는 말의 다리는 4개가 아니다?

우리 전통 속 말 모형을 살펴보면 원래 4개인 말의 다리가 3개이거나 특정 다리가 유난히 짧은 경우도 있다. 마을을 지키는 서낭말이 그렇다. 천 위원장에 따르면 옛적 호환이 심해지자 서낭신이 마을 원로의 꿈에 나타나 “말을 타고 호랑이를 퇴치하고자 하니 서낭당에 말을 봉납하라”고 했다. 사람들이 말을 만들어 봉납하니 호환이 사라졌는데, 이후 서낭신이 다시 꿈에 나타났다. 이어 “호랑이를 물리치다가 말이 다쳐서 한쪽 다리가 떨어져 나갔으니 다시 찾아 서낭당에 모셔 달라. 그 말을 타고 다니면서 마을을 지켜 주겠다”고 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처음부터 아예 일부러 한쪽 다리를 없애거나 부러뜨려 서낭당에 말을 봉납했다고 한다.

6. 말띠, 특히 말띠 여자는 기가 세다?

‘말띠, 특히 말띠 여자는 기가 세다’는 속신(俗信)은 우리나라 문헌이나 수집된 자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천 위원장은 “조선 시대에도 세종대왕의 부인 소헌왕후 심 씨,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윤 씨 등 말띠 왕비가 여럿 있다”며 “왕실에서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따질 줄 몰라 말띠를 왕비로 간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 위원장에 따르면 말띠에 얽힌 고약한 속신이 유입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말해에 태어난 여자가 시집가면 남편을 깔고 앉아 기세를 꺾는다는 생각 때문에 말띠 태생의 부인을 경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 속신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1960년대 영화 ‘말띠 여대생’ 등 대중문화를 타고 확산했다는 것이다.

인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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