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시간 2026년, 성산의 승리는 강정의 승리다
2026년 2월 26일, 제주해군기지가 준공된 날로부터 10년이 됩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으로 강정마을 공동체는 심각한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제주해군기지는 우려했던 대로 미국의 핵잠수함과 핵항공모함이 드나드는 기지가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기동함대사령부를 창설하며, 미국의 대중국 전초기지로 역할과 기능을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그 10년의 시간은 매일 현장을 지키며 모니터링하고 싸워온 활동가들과 국내외 시민들의 끊임없는 연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강정마을에서는 지금도 해군기지 폐쇄 운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준공 10년을 맞아 군사기지 폐쇄와 비무장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해 마음을 모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4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 주]
해군기지 10년 무엇을 남겼는가?
10년 전인 2016년 2월 26일, 강정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부 장관,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호섭 해군참모총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제주해군기지 준공식이 열렸다. 당시 참가자들은 '21세기 청해진이 떴다'고 팡파레를 울렸다. 그러나 2007년부터 9년을 싸워온 강정 주민들과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생명과 평화의 상징인 구럼비를 시멘트 덩어리 아래 묻고 치르는 참혹한 장례식이었다.

그러나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이 부정적인 유산만을 남긴 건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된 생명평화운동이 없었다면 제주는 '세계평화의 섬'이라는 간판마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있던 군사기지도 없애야 할 판에 새롭게 군사기지를 짓는데 변변한 저항마저 없다면 무슨 낯짝으로 '평화의 섬'을 이야기한단 말인가? 4.3의 아픔에 기원을 둔 '세계평화의 섬'은 그저 종이 위에 존재하는 미사여구일 수 없다. 또한 '평화'라는 이름을 붙인 각종 국제회의나 행사가 '세계평화의 섬'의 실체가 될 수도 없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완강한 저항으로부터 시작하여 지역 시민사회가 함께하고 전국과 세계의 지지·연대를 이끌어낸 강정 생명평화운동이야말로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진정한 실체이고 제주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강정을 찾아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구럼비가 부숴지던 2012년에 시작된 생명평화대행진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대중적인 평화운동과 평화교육의 장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실이 그 징표다.
또한 4.3이 처절한 패배와 참혹한 희생을 딛고 다시 자랑스러운 항쟁의 역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듯이,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도 패배와 상처의 기억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나는 제주 제2공항 반대투쟁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축적된 연대의 경험, 제2공항 반대투쟁의 자산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이 발표된 것은 해군기지가 준공을 바로 앞둔 시점이었다. 지역의 시민사회는 10년 동안 각자의 일상활동을 뒤로 하고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던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여파로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해군기지 반대투쟁에서 쌓아온 연대의 역사는 제2공항 반대투쟁의 큰 자산이 되었다. 다양한 부문의 활동가들이 구럼비에서 같이 자고 먹고 싸우며, 해마다 몇날 며칠을 생명평화대행진에서 같이 걷고 밥을 지어 나르며 강정이 아니었으면 경험할 수 없는 연대의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노동, 농민, 환경, 여성, 인권, 청년 등 부문의 벽을 넘어 서로를 알고 정을 나누며 깊은 연대의 경험을 축적했다. 제주 제2공항 반대운동에서 때로 흐트러지거나 느슨해지거나 갈등이 생겨도 중요한 순간에 다시 힘을 모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에서 축적된 연대의 파토스와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가 공동체적 유대의 유산이 남아 있는 섬이기 때문에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유산을 무시할 수 없다.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도민들에게도 강정 해군기지 갈등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는 하나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남았다. 제주 제2공항에 대한 찬반을 넘어 80%에 가까운 도민이 도민결정권을 지지한다. 여기에는 물론 직접적인 피해가 한 마을에 집중되는 해군기지와는 달리 제2공항은 과잉관광과 환경파괴, 투기 등으로 제주도 전체에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작용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사업이 강행될 경우 강정의 아픔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인식도 민주적 절차에 따른 갈등해결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제2공항의 향방을 가를 결전의 시간이 왔다
2015년 발표 당시의 계획에 따르면 작년에 제2공항이 완공되어 지금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한 평의 땅도 빼앗기지 않고 제주를 지켜왔다. 그런데 이제 고비에 왔다. 2024년 기본계획이 고시됨으로써 마지막 절차인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이다. 지방선거 직후인 올해 8~9월쯤 국토교통부가 환경영향평가 초안을 제출하여 제주도와 협의절차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되면 실시계획이 고시되고 토지수용이 시작된다. 땅을 빼앗기고 나면 제2공항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제2공항은 중단된다. 올 하반기 반년이 제2공항의 향방을 결정할 마지막 결전의 시간이다.
제도적으로만 보면 쉽지 않은 싸움이다. 환경영향평가는 사업 추진을 전제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저감방안을 마련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서산·태안의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문경 쌍용양회 산업폐기물 매립장, 영양A풍력발전단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등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동의를 얻지 못해 취소된 사례가 있고, 제주도에서도 송악산 뉴오션타운 조성사업과 (주)대륙 토석채취사업이 도의회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로 중단된 바 있다. 더구나 제2공항의 경우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타당성을 검증해야 할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해소해야 할 쟁점들이 조건부라는 이름으로 환경영향평가로 넘어왔다. 통상적인 환경영향평가에서 다루지 않은 수요예측이 포함된다. 조류충돌 위험이나 숨골에 대한 영향은 저감할 방안이 있을 수 없다. 철새도래지를 없애지 않는 한 어디에 대체서식지를 만들어 철새들을 유인한단 말인가? 용암지대 165만평에 산재한 숨골을 막아버리고 나서 그야말로 '인공숨골'이라도 만든단 말인가?
내용이 통상적인 환경영향평가를 넘어서는 만큼 절차 역시 통상적인 절차에 머물 수 없다. 무엇보다 주민의견 수렴 절차를 통상적인 설명회나 공청회로 끝낼 수 없다. 무엇보다 여전히 압도적인 다수의 도민이 실질적인 도민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제주MBC 등 4개사 여론조사에서도 갈등해결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에 대해 76%가 찬성했다. 반대는 21%에 그쳤다. 도민결정은 기본계획에 대한 주민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그럴 뜻이 전혀 없었고, 오영훈 도지사도 정권의 눈치 보느라 자신의 공약이기도 했던 도민결정권을 방기했다. 구실은 제주도가 협의권한을 가지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에서 도민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시작된 지금에 와서는 도의회의 동의절차가 도민결정권 행사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차기 도지사가 절대 다수 도민이 바라는 민주적인 도민결정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제2공항 건설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보나마다 공군기지, 그래서 막기 어렵다?

사실 제주도에 공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말에는 알뜨르 비행장에 공군기지를 건설하려다 도민의 저항으로 실패했고, 1992년에는 국방부와 건교부가 민군 겸용 제주 신공항 건설에 합의했다. 이어 2004년에는 정석비행장을 민군공동으로 사용하려고 했으나 대한항공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2015년 공항 인프라 확충 용역에서 현 제주공항 확장이나 현 공항 폐쇄 후 신공항 건설 등 하나의 공항 대안이 아니라 복수공항 대안으로 결정한 것도 공군기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1~2분에 한 번씩 민간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을 공군기지로 같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2공항 건설계획이 추진되자 국방부와 공군에서는 제2공항에 공군부대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간의 맥락을 보면 제2공항이 공군기지가 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정권에 상관없이 공군기지의 필요성 때문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2공항을 강행할 정도로 강한 의지나 불가항력이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만약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당시 도민의견 수렴 절차(여론조사)를 수용하거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반려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제2공항을 건설하여 공군기지로 쓰고 싶은 생각은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제2공항을 무조건 강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요컨대, 우리가 제2공항을 막아내지 못할 어떤 불가항력은 없다.
물론 현재 공군기지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와 관계없이 제2공항이 건설될 경우 공군기지로 전락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관광객도 더 이상 늘지 않는데 현 제주공항보다 더 큰 공항을 지어서 어디에 쓸 것인가? 제2공항이 건설되면 제주의 군사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제주는 동북아의 화약고가 되어 불안에 떨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제2공항을 기필코 막아내야 하는 이유다.
도민결정 쟁취로 제2공항에 마침표를!

'민주적 절차에 따른 도민결정'은 제2공항 반대운동을 관통해 온 구호이자 전략이었다. 물론 도민이 제2공항 추진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도민결정이라는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제2공항을 막아낼 길이 없다고 보았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른 방법이라면 소송이나 몸으로 막는 것이지만, 그런 방법으로 실제 제2공항을 저지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 그리고 제주도민의 민주적 결정을 통해 제2공항을 막아낸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의미가 있다.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 토목사업을 주민의 결정으로 거부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리병원의 경우처럼, 환경영향평가 협의권을 가지고 있는 도지사가 도민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제2공항 이슈가 지역사회에서 갖고 있는 정치적 비중이나 그간의 과정을 고려하면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도민결정의 절차를 어떻게 쟁취해낼 것인가이다. 누가 되든 도지사의 선의에 기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권이 바뀌면서 도민결정 쟁취를 위한 여건은 다소 나아졌다. 윤석열 정부였다면 민주적 절차에 의한 도민결정을 공공연하게 부정하면서 도지사에게도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앙정부의 기류는 다소 바뀌고 있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 모두 갈등해소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혔다. 2022년 대선 당시 제주를 방문했던 이재명 후보도 "합리적으로 설명해서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정책이라면 도민의 뜻에 반해서 강행할 일은 아니다"며 합리적 토론을 통한 도민의 결정을 강조한 바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제2공항을 추진해온 당사자인 국토교통부가 스스로 결자해지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제주도가 도민결정의 절차를 밟을 경우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일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럴 경우 도지사에게 도민결정 절차를 밟도록 압박하기는 훨씬 쉬워진다. 도의회나 도의원들도 나서게 해야 한다. 민주당이 다수인 도의회가 자당 소속 도지사가 환경영향평가 동의안을 회부할 경우 반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의원 개개인들로서는 찬반을 떠나 '뜨거운 감자'인 제2공항에 대해 공개적으로 손을 드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금도 제2공항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의원은 드물다. 따라서 도의원들이 도지사에게 도의회의 부담으로 떠넘기지 말고, 동의안을 회부하기 전에 도민결정 절차를 거치도록 요구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밑으로부터의 투쟁이다. 결사적인 투쟁을 통해 도민결정에 대한 압도적 지지여론을 실질적인 정치적 압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도민결정 쟁취를 위한 강력한 투쟁과 함께 중앙정부가 열린 입장을 보이고, 도의회에서도 도민결정을 선행하도록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면 누가 되든 도지사도 이를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다.

2026년, 우리는 지난 11년의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 갈등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운명의 시간대에 들어섰다. 14년 전 구럼비 바위를 파괴했던 그 거대한 불도저가 이제 성산의 들판과 주민들의 삶터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여 제2공항을 백지화하지 못한다면 제주의 미래는 다시 한번 차가운 콘크리트 아래 영원히 매몰될 것이다. 제2공항 백지화는 단순히 제2공항 반대투쟁 10년을 넘어, 강정 해군기지 반대로부터 시작된 20년 싸움의 승리이고, 새로운 제주를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성산의 승리는 강정의 승리다. / 박찬식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공동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