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다음은 우리 차례”…삼성전기·LG이노텍, AI 사이클 올라타나
스마트폰·PC 의존도 낮추고 ‘부품 슈퍼사이클’ 수혜 받을까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인공지능(AI) 열풍에서 시작된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온기가 전자부품 업계로 옮겨붙고 있다. AI 수요가 데이터센터, 로봇, 방산 장비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자, 반도체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전력·패키지 부품 수요까지 폭증하고 있다. 과거 스마트폰 수요에 실적이 출렁이던 부품 기업들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AI발 '부품 슈퍼사이클' 대응에 나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LG이노텍은 지난해 4분기 공격적인 성과를 내며 '비수기 부진'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삼성전기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2조902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2395억원으로 108% 급증했다. AI 서버 확산에 따른 고사양 반도체용 부품 공급이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개선된 결과다.
LG이노텍 역시 반도체 기판 수요 확대에 힘입어 분기 기준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은 7조609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247억원으로 31% 증가했다. 반도체 기판을 담당하는 패키지솔루션사업부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7.6% 증가하며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기업은 과거 스마트폰과 PC에 탑재되는 부품 공급 비중이 높아 세트(완제품) 수요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애플이나 삼성전자 등 주요 고객사의 신제품 출시 일정에 따라 매출이 좌우됐고, 전자제품 수요가 둔화되는 4분기에는 구조적으로 실적이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AI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시장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삼성전기·LG이노텍 등 부품 기업의 제품이 스마트폰·PC를 넘어 데이터센터, 로봇, 방산 장비에까지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연산 능력을 좌우하는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반도체와 함께 탑재되는 전력·패키지 부품 수요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칩'만 웃는 게 아니다…부품도 슈퍼사이클 조짐
현재 삼성전기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 시장에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MLCC와 FC-BGA는 중앙처리장치(CPU) 등 반도체 칩에 적정 전력을 원활히 공급하도록 돕는 부품으로, 칩 주변 전력망의 안정성을 좌우한다. 특히 서버나 AI 가속기 등 고성능 시스템에 반드시 탑재되어야 하는 필수 부품으로 꼽힌다. 글로벌 MLCC 시장 점유율 2위인 삼성전기는 AI 서버 시장 확대에 따라 수요가 급증하면서 올해 1분기 기준 MLCC 라인 가동률이 94%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기는 FC-BGA 시장에서도 서버용 프리미엄 제품군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오는 하반기 중 삼성전기의 FC-BGA 생산라인이 사실상 '풀가동' 상태에 돌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2027년으로 예상됐던 가동률 상승 시점이 6개월 이상 앞당겨진 셈이다. 삼성전기는 현재 미국 AMD와 애플에 FC-BGA를 납품하고 있으며, 3분기부터는 글로벌 빅테크 4곳을 추가 고객사로 확보해 납품을 개시할 예정이다.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 사업 비중이 높은 LG이노텍 역시 FC-BGA를 비롯한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신사업으로 낙점해 AI 사이클의 수혜를 받고 있다. 문혁수 LG이노텍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미국 CES에서 "LG이노텍의 반도체 기판은 현재 풀가동 상태"라며 "글로벌 수요 역시 당분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LG이노텍이 애플 스마트폰에 공급하던 카메라 모듈 기술이 로봇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사업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LG이노텍은 보스턴다이내믹스, 테슬라, 베어로보틱스 등 북미 주요 휴머노이드 기업 3곳을 고객사로 확보한 상태다.
서버 한 대에 부품 3만 개…AI가 만든 수요 폭증
데이터센터와 휴머노이드 로봇 등 AI 인프라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업황 전망도 긍정적이다. 대규모 연산을 처리하는 데이터센터와 정밀한 구동능력이 중요한 로봇에는 스마트폰이나 PC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부품이 탑재되기 때문이다. 연산 성능이 고도화될수록 전력 안정성과 신호 무결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품 수요도 비례해 늘어날 수밖에 없다.
KB증권에 따르면, AI 서버 한 대에 탑재되는 MLCC는 약 3만 개로 일반 서버의 100배 수준이다. 완제품 당 탑재되는 부품 수가 급증하는 만큼, 서버 수요 증가가 부품 수요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종배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AI 서버 및 일반 서버 수요가 전년 대비 각각 28%, 13% 성장해 IT 세트(완제품)의 수요 우려를 AI가 상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전력·패키지 부품의 가격 인상 사이클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AI발 수요 증가로 최근 급등하는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반도체와 동일한 애플리케이션에 채용되는 MLCC는 올해 1분기 중 가격 인상 사이클이 시작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과거 MLCC 슈퍼 사이클 당시 삼성전기 MLCC 사업부 영업이익률은 42%까지 늘어났는데, 인상 사이클이 현실화되면 실적 추정치도 대폭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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