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가 안 그랬다면” 가해자의 ‘정신 승리’ [경찰로 간 심리학자들]

2014년 5월 말,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팀에서 근무하던 추창우는 창밖의 봄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구 달서경찰서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이었다. 전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가 부모를 모두 죽이고 여자도 해친 남자가 추창우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추창우는 어느덧 9년 차의 노련한 프로파일러였다. 하지만 이번 면담에서는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했다. 1990년생, 스물네 살 장재진. 번듯하고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공고를 졸업한 뒤 ‘수시 리더십 전형’으로 경북에 있는 한 대학교를 다니며 총동아리연합회장을 맡은 경력도 있었다. 언뜻 보아 평범한, 오히려 또래보다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젊은 남성이었다.
제대 후 복학한 장재진은 막 입학한 피해자와 교제를 시작했지만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단 둘이 있을 때는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고, 술자리에서는 여자친구를 ‘별것도 아닌 게 뻗댄다’고 흉을 봤다. 친구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가 따지자 장재진은 여자의 뺨을 때렸다. 사귄 지 6주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피해자는 헤어지자고 말했다.
닷새 뒤, 장재진은 학교에서 피해자를 자신의 자취방으로 끌고 가려 했다. 여성이 거부하자 이번에도 장재진은 어김없이 뺨을 때렸다. 열 대 넘게 뺨을 맞고 쓰러진 여성의 몸을 발로 짓밟았다. 거의 실신한 여성을 택시에 태워 자신의 자취방으로 끌고 가서는 또 폭행했다. 피해자의 친구들은 장재진의 폭력성을 눈치채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친구를 걱정하던 동기들은 장재진의 자취방으로 달려가 간신히 피해자를 구출했다.
멍들고 부어오른 딸의 얼굴을 본 부모는 장재진의 부모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장재진의 부모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아들에게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다. 어차피 ‘여자친구를 때린 남자’로 소문 난 장재진은 학교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며 집착하던 총동아리연합회장 자리도 잃었다.
그날부터 장재진은 학교에 나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술을 마셨다. ‘내가 전 여자친구를 폭행했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는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문장의 주어와 술어가 바뀌어 있었다. ‘전 여자친구 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쫓겨났다.’
프로파일러는 가해자의 ‘남 탓’에 익숙하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남 탓으로 돌리는 건 범죄자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범죄는 늘 ‘어쩔 수 없이’ 정당한 일이 된다. 그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상황을 ‘이렇게 만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뒤틀린 결론에 다다른다.
자기 자신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상황에서도 장재진은 ‘승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2014년 5월19일 오후 5시 반, 그는 한 손에는 공구함을 들고 다른 손에는 수첩을 든 채 전 여자친구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가 4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장재진은 자신이 수첩에 미리 적어온 대사를 보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띵동 띵동~ 계세요?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보일러 배수관이랑 화장실 배수관 점검 때문에 왔습니다. 이 동 8층 쪽에서 배수관이 엉망인데 원인을 찾지 못해서 지금 전체적으로 점검 중인데 5~10분 양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구라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의심 없이 장재진을 집 안으로 들여보낸 피해자의 부모는 차례차례 죽임을 당했다.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온 딸은 비명을 질렀다. 장재진은 여자의 머리칼을 낚아채 또다시 폭행했다. 부모님이 죽은 게 아니라 기절한 거라고 거짓말한 남자는 동이 틀 때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여자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사람을 둘이나 죽인 상황에서도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의 지위와 권력이었다. 피해자가 사과하자 장재진은 그제야 어머니의 시신을 보여줬다. 충격에 빠진 피해자가 아버지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장재진은 비웃었다. “너 하는 거 봐서.”
장재진은 부모의 시신 앞에서 그 딸을 강간했다. 그러고 난 뒤에 아버지의 시신도 마저 보여줬다. 이미 아버지도 세상을 떠난 뒤였다는 걸 깨달은 딸은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경비원이 4층 베란다에서 떨어진 딸을 곧바로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딸은 정신을 잃기 직전 자신의 집 주소와 가해자 장재진의 이름을 말했다. 중상을 입은 피해자는 넉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

피해자가 베란다에서 추락한 이후 자신의 집으로 도망쳐 소주를 마시고 있던 장재진은 체포됐다. 2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짧은 만남으로 인생이 무너져 내린 피해자는 한국을 떠났다.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가해자
대구에서 나고 자라 순경을 하다 다시 프로파일러로 ‘재입사’한 추창우는 특히 교제 살인 사건을 눈여겨봤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아이의 아빠로서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사건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잘 헤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이라도 학생들에게 강연하고 다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경찰청은 2023년부터 피의자와 피해자 간 관계 분류 기준에 ‘전∙현 배우자나 애인, 사실혼 배우자’를 추가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살인 및 살인미수 피의자 778명 중 192명(약 24.7%)이 범죄를 저지른 대상은 전∙현 배우자나 애인, 사실혼 배우자였다. 여성이 피해자인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 10건 중 3건이 이미 가해자로부터 가정 폭력, 교제 폭력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PV, Intimate Partner Violence)’을 당한 바 있다는 2024년 경찰청 통계도 있다.
추창우와 마주 앉은 장재진은 ‘죄송하다’고만 했다. 추창우는 죄송한 대상이 피해자인지, 자기 자신인지, 눈앞에 앉아 있는 형사인지 구체적으로 물었지만 장재진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걔가 나랑 대화만 했어도” “걔네 엄마 아빠가 우리 부모님한테 그런 얘기만 안 했어도”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며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발각돼 처벌받을 일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기색이었다.
“잡혀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이런 사람이 고려하는 요소가 아니에요.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 훼손된 자신감을 되찾아야 하니까 ‘어떻게 접근해서 내 앞에 무릎을 꿇릴 수 있을까’만 궁리합니다. ‘네가 감히? 결국 내가 이겨’, 이 생각 하나뿐인 겁니다(추창우).”
장재진을 면담하고 집에 돌아온 추창우는 그날 밤 아내에게 사건을 이야기했다. 집에서는 되도록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잊으려 하는 편이지만 교제 살인 사건을 맡은 날이면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면만 보여주지 않습니까.”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R-L)’를 도입해 이 개념을 대중화한 로버트 헤어 박사조차 그런 사람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그의 유일한 조언은 단순하다. “피하라.”
※‘경찰로 간 심리학자들’ 기획은 〈시사IN〉과 웹툰·웹소설 및 논픽션 기획사 에스판다스가 협업한 결과물입니다. 축약된 버전의 이 기획기사 전체 내용은 올 상반기에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나경희 기자-에스판다스 공동 기획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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