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우 “세계 톱 3박자는 탄탄한 기본기·맹훈련·느긋한 마음”
세계선수권·월드게임·월드컵 등
세계 3쿠션 당구 그랜드슬램 위업
끈기 갖고 느긋하게 자신 믿어야
희비 순간도 담담히 집중력 유지

당구에서는 세계선수권, 월드게임, 월드컵, 대륙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그랜드슬램’이라고 부른다. 월드컵은 매년 7회 열려 기회가 많지만 세계선수권은 연 1회, 심지어 월드게임은 4년에 한 번 개최돼 이 대회들을 모두 우승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3쿠션 남자 당구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한국 당구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이가 바로 조명우(28·사진) 선수다. 그는 2023년 10월 이후 15개월 만인 지난해 초 세계 정상을 재탈환했다. 남자 당구계는 조 선수가 속한 세계 캐롬 당구 연맹(UMB, 아마추어)과 프로당구(한국의 경우 PBA)로 나뉘어 있으나 다른 종목과 달리 아마와 프로의 실력이 비교적 대등한 편이다.
서울시청 및 실크로드시앤티 소속인 조 선수는 11일 경기도 시흥 배곧신도시의 개인 연습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세계 1위 비결과 관련, “8살부터 한 당구가 너무 재미있어 참 열심히 했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한다”며 “끈기를 갖고 좀 느긋하게 나를 믿고 계속 도전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2살짜리 반려견인 ‘설탕’이를 동반한 채 3시간가량 인터뷰에 응한 그는 주로 질문에 단답형으로 답하는 등 다소 내성적이고 수줍은 모습이었지만 꽤 호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큐만 잡으면 눈빛이 달라져 2024년 세계선수권 우승에 이어 지난해 월드게임 우승, 월드컵 7번 중 2번 우승, 아시아선수권 우승, 국내 대회 6번 중 5번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강한 승부사의 면모를 보였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속으로는 강한 ‘외유내강’ 형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당구 신동’으로 꼽힌 그는 3쿠션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치 그림을 그리듯 창의적인 방법으로 성공하곤 해 ‘조 화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 선수는 초등학교 입학 직전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처음 큐를 잡은 뒤 당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어른들의 권유로 이미 초등학교 2~3학년 때 선수를 목표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시 당구장에서 음주·흡연하는 어른들이 많아 힘들었지만 이를 감수할 정도로 당구에 흥미를 느꼈다. 그 결과, 이미 초등학교 3학년 때 상위권 실력을 갖춘 뒤 중·고교생일 때도 우승을 휩쓸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당구부에 들어가서는 4교시만 수업을 듣고 훈련에 매진했으나 외려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저도 낙천적 성격이지만 초중고 시절 아버지가 제 마음이 해이해지려고 할 때마다 엄하게 관리해주신 것도 주효했어요. 실력이 느니 자신감도 붙어 당구 특기생으로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과에 들어간 뒤 1학년 마치고 자퇴하면서 ‘세계 톱이 되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이후 2020년 18개월 간 군에 입대해서는 일절 큐를 잡을 수 없었지만 그 이전에는 매일 12시간씩 훈련에 매진했다. 세계 최정상이 된 지금도 7년 커플인 용현지 선수(여자 프로당구·LPBA)와 같이 쓰는 개인 연습장에서 하루 8시간 정도를 꾸준히 연습한다.
조 선수의 또 다른 세계 1위 비결을 꼽자면 담담하면서도 느긋한 캐릭터를 들 수 있다. 그는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을 때도 당일은 환호하더라도 자고 나면 별 생각 없이 담담해졌다고 했다. 역으로 비록 시합을 못 했을 경우 하루 이틀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내 훌훌 털어낸다. 그는 “고교 졸업 후 3~4개 대회 만에 일반부 전국대회에서 처음 우승했는데 오랫동안 염원했던 것이지만 ‘평생 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 엄청 행복하지는 않더라”고 했다. 결국 정상급에서 롱런하려면 외부 상황에 끌려가거나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라 중심을 잡고 잘하거나 못하거나 바로 평시처럼 복귀하는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다소 기복이 있을 때도 따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아요. 매년 첫 대회에서 망쳤다고 볼 정도로 경기가 잘 안풀렸지만 특별히 해결하려고 한 적이 없어요. ‘다음번에 잘하면 되지’ 라는 생각에 자신감을 유지하며 연습을 쉬지 않았지요.”

결국 그가 세계 톱으로 등극한 데에는 조기 교육 과정에서 스스로 재미를 느끼면서 쌓은 탄탄한 기본기, 커플끼리 의지하며 지속해온 맹훈련, 희비의 순간에 상관없이 비교적 담담한 멘탈리티 유지 등 3박자를 꼽을 수 있다. 그의 경기를 보면 초반에 뒤지더라도 흔들림 없이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3쿠션에서 국내 대회와 국제 대회의 격차가 느껴진다. 벨기에·네덜란드·튀르키예·베트남 등 잘하는 해외 선수층이 국내보다 10배는 되는 것 같다”며 “각국 정상급 선수들의 실력이 엇비슷해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환갑까지 항상 우승을 목표로 뛸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당구가 2030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부터 다시 정식종목으로 들어갈 예정이지만 아직 올림픽에 포함된다는 소식이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저는 이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 정부에서 연금을 받고 있는데 국위 선양을 위해 아시안게임은 물론 올림픽에서 꼭 우승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당구선수들을 많이 후원해온 실크로드시앤티 같은 기업에게도 보은할 수 있고요.”
한편 그는 “당구를 즐기는 연령대가 중장년층에서 요즘은 10~20대까지 확산한 것을 피부로 느낀다”며 “당구 케이블TV도 있지만 관련 유튜브도 많이 생겼다. 앞으로 당구가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저변이 넓어진 초중고생 선수 중에는 당구 영상과 장문의 편지를 보내오는 경우가 꽤 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열심히 하라’는 답밖에 할 게 없다”며 활짝 웃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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