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보험’ 같은 ISU 규정… 구제 받지 못한 韓 쇼트트랙

심진용 기자 2026. 2. 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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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리, 美 선수와 충돌, 혼성계주 결승행 좌절
반칙 아닌 단순사고 자동구제 해당 안돼
충돌 순간 1, 2위 아니라 재량구제도 못받아
쇼트트랙 대표팀 김길리(왼쪽)가 10일 열린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에서 미국 커린 스토더드에게 부딪혀 넘어지고 있다. 밀라노 | AP연합뉴스

쇼트트랙 종목의 숙명과도 같은 불운이 대표팀 선수들을 덮쳤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에서 미국 선수에게 걸려 넘어지며 탈락했다.

최민정, 임종언, 김길리, 황대헌이 나선 대표팀은 지난 10일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종목 준결승에서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상위 2개 팀에 주는 결승A 티켓을 놓쳤다. 총 18바퀴 중 6바퀴를 남긴 시점, 1위로 달리던 미국 커린 스토더드가 미끄러졌고 3위로 막판 역전을 노리던 대표팀 김길리를 덮쳤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뒤엉키며 함께 넘어졌다. 다음 주자 최민정이 급하게 터치하고 달렸지만 앞선 둘을 따라잡기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남은 바퀴도 부족했다. 김민정 대표팀 코치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표팀은 그대로 3위, 결승B에 오른 끝에 최종 6위를 기록했다.

쇼트트랙에서 다른 선수의 방해나 접촉으로 피해를 당한 경우 상황에 따라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동안 대회 때마다 수많은 사례가 있었다. 구제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갈래다.

먼저 ‘자동 구제’다.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규정집을 보면 “다른 선수로부터 방해를 받았고 그 다른 선수가 페널티나 옐로카드 또는 레드카드를 받은 경우, 그 위반 행위의 순간 1위 또는 2위의 위치에 있었던 선수는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고 되어 있다. 10일 상황과는 관련이 없다. 심판은 스토더드가 미끄러진 걸 단순 사고로 판단하고 페널티를 부과하지 않았다. 설령 페널티가 주어졌더라도, 김길리는 당시 3위였기 때문에 자동 구제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자동 구제’와 별개로 ‘재량 구제’가 있다. 이 또한 인정되지 않았다. ISU는 자기 책임이 아닌 사유로 다음 라운드 진출이 가로막혔다고 판단될 경우, 심판 재량으로 해당 선수를 다음 라운드에 올릴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이날 심판은 이번 상황이 그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레이스 막판까지 3위에 머물렀던 점이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충돌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2위 안에 들었을 것으로 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만약 사고 당시 김길리가 1~2위로 달리고 있었다면, 재량 구제가 검토될 여지는 더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여러 선수가 빽빽하게 모여 달리는 종목 특성상 10일 같은 불운은 허다하게 벌어진다. 2021~2023년 사이 16개 국제대회를 분석한 결과 레이스 2번 중 1번은 충돌이 있었다는 논문도 있다. 2002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남자 1000m 결승에서는 앞서 달리던 4명이 모두 뒤엉켜 넘어지면서 꼴찌로 달리던 호주 대표 스티븐 브래드버리가 금메달을 차지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쇼트트랙 종목 자체를 두고 공정성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온전한 실력이 아니라 운에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술·전략에 따라 사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10일 대표팀의 경우도 레이스 초반부터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면 앞선 주자에 휘말려 탈락하는 사고는 없었을 수 있다. 대표팀 스스로 이를 가장 잘 알고 있다. 담담하게 불운을 받아들였다. 최민정은 선수들을 대표해 “종목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오늘은 운이 좀 안 좋았지만, 다른 날은 또 좋을 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2위로 달렸다면 어드밴스(구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오늘은 우리가 좀 잘 못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출발은 아쉬웠지만 아직 남은 종목이 많다. 불운을 딛고 제 기량을 발휘한다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둘 기회는 충분하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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