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붕괴라는 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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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이런 문장을 남겼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높이 날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죽음을 맞이한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의 추락을 연상시킨다.
중력은 늘 작용하지만 높이를 확보했을 때만 우리는 그것을 '추락'이라고 인식한다.
바흐만의 표현을 빌리면 추락이 보인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날고 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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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에 민감한 심리 이용 자극적
생태계·금융시장 상승·조정 반복
변동성보다 장기 성장 추세 봐야
오스트리아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이런 문장을 남겼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높이 날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죽음을 맞이한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의 추락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핵심은 추락이 아니다. 날았다는 사실이다. 날아본 적 없는 것은 추락할 수도 없다. 먼저 고도를 얻은 다음에야 낙하라는 사건이 생긴다.

며칠 혹은 몇 주간의 조정만 있어도 시장이 곧 무너질 것처럼 묘사되지만 이쯤 되면 또 다른 ‘붕괴’를 기다리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붕괴가 이어질수록 지수는 더 높아질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상승이 없었다면 ‘추락’이라는 표현도 성립하지 않는다. 고도를 얻지 못한 물체는 떨어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는 인간 인지의 특성이 작용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손실 회피 편향’이라 부른다. 사람은 같은 폭의 이익보다 손실에 훨씬 민감하다. 상승 뉴스보다 하락 뉴스가 더 강하게 기억되고 더 많이 소비된다. 언론 역시 이 심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자극적인 하강 표현은 클릭을 부르고, 클릭은 다시 비슷한 제목을 재생산한다. 정보 생태계가 위험 신호에 과도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된 셈이다.
하지만 복잡계 과학 관점에서 보면 진폭 없는 성장은 지속되기 어렵다. 생태계든 금융시장이든 자기조절 피드백이 작동하며 상승과 조정을 반복한다. 이를 변동성이라 부른다. 변동성은 시스템 불안정의 신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적응 과정의 일부다. 변동성 자체가 시장의 생명력이다.
한국 증시 역시 최근 상당한 상승을 경험했다. 세계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업 경쟁력, 기술 산업 성장, 정책 환경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단기 조정은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상승 국면이 있었기에 조정도 나타나는 것이다. 바흐만의 표현을 빌리면 추락이 보인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날고 있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하강 자체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조정을 붕괴로, 변동을 위기로 단정하면 시장 참여자의 불안은 커지고 합리적 판단은 어려워진다. 과학은 언제나 장기 추세와 구조를 보라고 말한다. 기후변화도 하루 날씨로 판단하지 않고 수십년 데이터를 본다. 생태계 건강도 일시적 개체 수 감소만으로 결론 내리지 않는다. 금융시장 역시 비슷하다. 짧은 낙폭만 떼어내 보면 위기처럼 보이지만 긴 시간 축에서는 성장과정의 일부일 때가 많다.
정말 위험한 순간에는 ‘추락’이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미 아무도 날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시장에서는 공포보다 무관심이 먼저 나타난다. 우리는 낙하라는 단어만 붙잡고 불안해하기보다 그 이전의 비행을 함께 봐야 한다.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는 것은 살아 있는 시스템의 특징이다. 날지 못하는 것은 추락도 하지 못한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은 아직 날개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추락은 끝이 아니라 지금 비행하고 있다는 흔적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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