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간 소멸 부르는 블랙홀…‘무해함’ 압박에 청년들 질식”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쾌적한 도시를 위해 인간이 개조되는 현상을 ‘사회적 표백’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소음과 느림, 서투름 같은 이질성을 지워버리고 도시에 어울리는 ‘무해한 시민’만을 남긴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서울과 도쿄가 ‘거대한 블랙홀’이라고 경고한다. 거대 도시가 쾌적함을 미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압력을 견디다 못해 연소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번역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는 책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에서 도시의 화려한 ‘번영’ 뒤에 숨겨진 ‘소멸’을 드러내보였다. 이 책은 2021년 일본의 권위 있는 출판상인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받았다. 그를 지난 8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 서울과 도쿄를 ‘블랙홀’에 비유했다.
“지방에서 서울이나 도쿄로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쉽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다. 자본주의·개인주의 관점에서 보면 반짝이는 도시의 삶이 더 바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좁은 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낙오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옥죌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존재가 되라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질식해버린다. 블랙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서울과 도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쾌적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엄격한 ‘자기검열’ 하는 도시인들
사소한 실수도 용납 못하는 사회
노키즈존 등으로 약자 먼저 배제
‘통제 불가의 존재’ 책임지라는 건
시스템과 사투 벌이라는 말 같아
심각한 ‘저출생’ 결과로 이어져
- 도시 생활 자체가 압박이란 말인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고도의 규칙’, 즉 예측 가능한 질서가 필요하다. 만원 지하철이나 좁은 아파트 단지에서 냄새나 소음, 돌발 행동은 없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조건이 강화되다 보면, 사람들은 질서를 ‘지켜야 하는 규칙’ 정도가 아닌 ‘침범당해서는 안 되는 성역’처럼 여기게 된다. 에밀 뒤르켐이 ‘질서가 완벽히 유지된 수도원에서는 작은 일탈도 큰 죄악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듯, 지금 사회가 그렇다. 예전 같으면 웃고 넘길 실수나 소음이 이제는 용서받지 못할 ‘민폐’가 되고, 척결해야 할 ‘악’으로 규정된다. 사회가 쾌적해질수록 ‘죄인’의 범위도 더 넓어진다.”
-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고 뛰어다닌다. 과거에는 아이가 성장하며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감내했지만, 표백된 사회에서는 아이의 소음이 ‘잡음’으로 규정된다. 한국의 ‘노키즈존’ 논란, ‘운동회 소음’ 사과 사건 등은 통제 불가능한 존재를 우리 곁에 두지 않겠다는 사회적 선언과 같다. 도시가 쾌적해질수록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약자들이 가장 먼저 배제된다.”
-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 정신의학적 진단 증가도 같은 맥락인가.
“과도한 ‘의료화’ 현상이다. 예전 같으면 조금 특이하거나 산만한 사람으로 넘겼을 이들을 ‘교정해야 할 환자’로 분류하는 식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의 범위가 극도로 좁아졌다. 도시는 노동자에게 높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기준에 미달하면 ‘빌런’으로 낙인찍히거나 병원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사회의 허용 폭이 좁아져서 ‘환자’가 양산되는 꼴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향해 ‘너는 정상인가’를 묻는 거대한 검문소를 운영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 ‘무해함’을 추구하는 사회의 끝은 무엇일까.
“도시가 재생산 기능을 상실하고 소멸하는 것이다. ‘무해한 시민’으로 살기 위해 매 순간 스스로 검열하는 청년들에게, 통제 불가능한 존재(아이)를 책임지라는 건 시스템과 사투를 벌이라는 말과 같다. ‘나 하나 무해하게 살아남기도 벅찬데, 어떻게 유해한 존재(아이)를 세상에 내놓겠는가’라는 저항이 저출생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는 식이다. 서울과 도쿄라는 블랙홀은 주변의 젊은 에너지를 빨아들여 화려한 빛을 내뿜지만, 그 내부에서는 인간이 소멸하며 사그라들게 될 것이다.”
- 소멸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개인을 걸러내는 사회는 결코 유토피아일 수 없다.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무엇이 ‘정상’인지에 대한 기준은 의외로 불확실하다. 이제는 ‘부적응자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건전’하다고 인정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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