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배터리·현수막… 폐기물 혁신 '3총사' 뜬다 [지금, 순환경제]
에어컨서 희토류·배터리서 리튬을 캐다
버려진 현수막이 자동차 부품으로 변신
자원 안보와 탄소중립, 한국형 순환모델의 과제
[지데일리] 폐기물이 ‘보물창고’로 바뀌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6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순환경제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에서 폐기물 재활용 기술 3건을 대상으로 ‘순환이용 규제특례’를 최초 부여하면서, 한국형 순환경제가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해당 사업들은 ▲폐전기·전자제품 내 희토류 자석 회수 ▲폐배터리 폐액 리튬 회수 ▲폐현수막 자동차 소재화 등이다. 정부가 폐기물관리법 등 기존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하고, 혁신기술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실증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중국 의존 80%를 넘는 희토류 수입 구조와 폭증하는 폐배터리 처리를 동시에 겨냥한 실질적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진다. 산업계에서는 “한국이 드디어 순환경제를 자원 주권의 전략축으로 올려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규제 유예로 열리는 ‘자원 독립’의 길
‘순환경제 규제특례’ 제도는 2023년 1월 시행된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에 근거한다. 혁신 기술이나 서비스를 한정된 지역·기간·규모 내에서 시험할 수 있도록 기존 재활용 및 폐기물 규제를 유예하고, 검증 후 제도화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특히 중소기업을 위한 실증 비용 최대 1억2000만 원 및 보험료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다.
이 방식은 EU ‘그린딜’이나 일본의 ‘자원순환사회’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권한 있는 기업이 기술력을 입증하면, 정부는 이를 공식 재활용 기준으로 편입한다. 목표는 2025년까지 국내 순환경제 시장 규모를 7조 원대로 확대하는 것이다.
“에어컨에서 캐낸 희토류”... LG전자와 E-순환거버넌스
첫 과제는 ‘폐전기·전자제품 내 희토류 영구자석 회수 실증’이다. 사업 주체는 LG전자와 E-순환거버넌스.
희토류 자석은 네오디뮴(Nd) 등 17종 금속으로 구성돼 전기차 모터, 풍력 터빈, 스마트폰과 가전 등 현대산업의 필수 부품이다. 하지만 한국은 자체 광산이 없고, 2025년 기준 희토류 원자재 수입의 79.8%가 중국에 의존한다. 특히 영구자석의 90% 이상이 중국산이다.
국내 폐자원에서 발생 가능한 희토류 규모는 연간 약 111톤(자동차 26톤, 가전제품 27톤, 승강기 32톤 등)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간은 회수 체계가 부족해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됐다. 이번 특례 부여로 폐기물 재활용업 허가 없이 현장 실증이 가능해진다.
E-순환거버넌스는 전국 폐가전 회수 네트워크를 활용해 에어컨 실외기 로터를 별도 분류하고, LG전자는 ‘자기장 탈자방식’을 통해 자석을 손상 없이 추출한다. 강한 자기장을 순간적으로 인가해 자성을 약화시키는 기술로, 기존 파쇄·고온 방식 대비 에너지 효율과 회수율이 모두 우수하다. 회수한 자석은 정제련 과정을 거쳐 다시 재제품화하고, 연간 235톤 회수 시 경제 가치는 약 60억 원에 달한다.
LG전자는 2026년 1월 미국 기업 노베온(Noveon)과 ‘M2M(Magnet-to-Magnet)’ 재활용 기술 협력을 체결하며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궁극적으로 ‘도시광산(Urban Mining)’ 개념을 국내 산업기반에 정착시키려는 구상이다.
“미세조류로 리튬 건진다”... 그린미네랄의 생광물화 기술
두 번째는 생물학적 방식으로 리튬을 회수하는 그린미네랄(Green Mineral)의 기술이다.
전기차 폐배터리 발생량은 2025년 12만 개, 시장 규모는 75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도 리튬이온 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25년 5조 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화학적 용매로 금속을 추출한 뒤 남는 폐액에 들어 있는 저농도 리튬은 경제성이 낮아 대부분 버려졌다.
그린미네랄은 여기에 유전자 조작 클로렐라(Chlorella)를 이용한 생광물화 반응을 적용한다. 조개껍질 형성과 유사한 생물학적 대사를 통해 금속이온을 안정적 광물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이 접근법은 폐액 속 리튬의 최대 90%를 고순도 탄산리튬으로 회수하며, 비용은 기존 화학 공정보다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에는 생물 기반 금속회수 기술의 적용 근거가 없지만, 이번 특례기간을 통해 안전성과 환경 영향을 평가하고 향후 니켈·코발트 등 다른 금속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그린미네랄은 2025년 ‘넷제로챌린지X’ 공모에서 우수기술 기업으로 선정되며, 생명공학 기반 자원순환의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다.
“현수막이 자동차 안으로”... 리플코어의 폐섬유 재활용
세 번째 실증 대상은 폐현수막을 자동차용 내외장 소재로 재활용하는 리플코어(ReepLcore)의 기술이다.
2025년 폐현수막 발생량은 5400톤을 넘었으며, 재활용률은 33%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 소각되며, 염료나 첨가제 때문에 우산, 장바구니 등 한정 용도로만 사용돼 왔다.
리플코어는 지자체 수거함과 앱 기반 관리 시스템을 연결해 안정적 원료 공급망을 확보하고, 용융 공정 없이 선별·세척 과정을 거쳐 재생섬유를 제조한다. 이 소재는 자동차 대시보드나 도어 트림 등 내장재로 가공 가능하며, 폐플라스틱·바이오소재 중심의 친환경 CMF(색·소재·마감) 트렌드와도 맞물린다.
정부는 재활용업 허가를 면제하고, 폐섬유를 자동차용 원료로 분류하는 새로운 용도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소각 대비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현수막 1톤당 약 3.6톤CO₂ 수준이다.
산업과 환경 모두 잡는 ‘한국형 순환모델’
이번 3건의 특례는 금한승 제1차관이 이끄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는 “희토류와 리튬, 현수막까지 일상의 모든 폐기물이 자원으로 환생하는 사회를 본격화하겠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정부는 2025년 누적 21건 특례를 넘어 기획형 순환경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로봇·AI 기반 자원분리, 바이오 리사이클 등 차세대 기술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기업에는 실증 기회를, 정부에는 데이터 기반 제도 개선의 흐름을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자원 안보’와 ‘탈탄소 산업전환’을 동시에 촉진할 것이라 분석한다. 특히 중국 리스크가 심화된 희토류와 2차전지 소재 분야에서 한국이 기술 축적을 선도하면, 순환경제가 ‘첨단산업의 무기화’를 막는 실질적 방파제가 될 것으로 본다.
산업 생태계와 규제 정비 필요
순환경제 특례가 혁신의 문을 열었지만, 실증이 곧 시장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표준 부재와 수거 체계 미비를 첫 과제로 꼽는다. 폐가전 회수, 배터리 해체, 섬유 선별 등 분야별 인프라가 분절돼 기술 적용에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회수 자원을 산업용 소재로 인정할 재활용 원료 인증체계도 미비하다. 품질 기준과 거래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산업 재사용 가치가 제약된다. 여기에 초기 실증 단계에서 높은 선별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하며 경제성 입증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따른다.
결국 제도의 지속성과 산업 확산을 위해서는 기술 실증뿐 아니라 제도 표준화와 시장 기반 강화가 동반돼야 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정부가 특례 이후 단계에서 ‘순환원료 인증제’, ‘공공 조달 우선구매’, ‘세제 인센티브’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소비자 인식 개선과 지방정부의 적극적 협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 폐기물은 더 이상 산업의 부산물이 아니다. 그것이 다시 돌아와 자원을 만들고, 광물을 대체하며, 탄소를 줄이는 시대가 열렸다. 순환경제는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 전략이자 에너지 안보정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순환경제 규제특례는 그 첫 단추다. 실증이 성공한다면, 한국은 자원 빈국에서 ‘循環(순환) 강국’으로 체질을 바꿀 기회를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