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쫓다 금융정보 다 털려… ‘통장 묶기’ 우려 등골 서늘

우예주기자 2026. 2. 1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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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르포] 스미싱 문자 부업 알바의 덫 (5)

보이스피싱 자금세탁 통로 전락
눈물 머금고 주거래 통장 해지
자칫 공범으로 범죄자 될 수도
꿀알바의 끝은 결국 오랫동안 써오던 통장을 해지하는 초라한 엔딩이었다. 사진=우예주 기자

텔레그램 방 '나가기'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600여 명의 욕망이 들끓던 채팅방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알림 소리도 뚝 끊겼다. 손가락 몇 번 움직여 번 돈 9만 원. 미끼만 먹고 탈출했으니 이득인 걸까. 잠시 안도감이 스치는가 싶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정적 속에 남겨진 것은 수익의 기쁨이 아니라, 등 뒤를 서늘하게 하는 공포였다.
 

기자는 그들에게 돈만 받은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내 이름, 전화번호, 그리고 무엇보다 '계좌번호'를 넘겨줬다는 사실이 뒤늦게 뇌리에 박혔다.

"통장 묶기."
취재를 준비하며 스치듯 들었던 신종 금융 보복 수법이 기자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사기범들이 앙심을 품고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기자의 계좌로 강제 입금한 뒤, 이를 범죄 계좌로 신고해 내 모든 금융 거래를 동결시키는 수법이다.

그제야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받은 이 9만 원은 과연 그들의 자본금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피눈물을 흘리며 사기당한 돈, 그 '검은 돈'이 세탁되기 위해 내 통장을 거쳐 간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기자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에 가담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피의자'가 되어 경찰서 조사실에 앉아 있어야 할 판이었다. 놈들은 타인의 평범한 계좌를 범죄에 이용하고 버리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작자들이다. 9만 원의 수익이 순식간에 기자의 인생을 옥죄는 범죄 연루의 증거물이 될 수 있는 상황.

다음 날 아침,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창구로 달려갔다.

"이 계좌, 지금 당장 해지해 주세요. 비대면 거래도 전부 막아주시고요." 은행원의 의아한 시선이 꽂혔지만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수년간 내 월급이 들어오고 공과금이 빠져나가던, 내 금융 생활의 심장과도 같은 주거래 통장이었다. 하지만 이 통장을 살려두는 건 내 목에 칼을 겨누는 것과 다름없었다.
"드르륵, 드르륵."
은행 창구 너머 파쇄기에서 내 통장이 잘게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종이 조각이 되어 사라지는 그 통장을 바라보며, 기자는 지난 며칠간 홀린 듯 빠져들었던 그들의 사기 행각을 차분히 복기해 보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너무나 정교하게 설계된 한 편의 연극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일 급여 10만 원"이라는 달콤한 문자로 시작된 이 사기극은 기승전결이 확실했다.
 

그들은 기자가 연락하자마자 2만 원이라는 '미끼'를 즉시 입금해 의심을 허물었다. 이어 텔레그램 가입비 명목으로 2000원을 결제하게 만들어, '이미 돈을 썼으니 포기할 수 없다'는 심리를 자극했다.

가장 치밀했던 건 업무 방식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가짜 사이트가 아닌, 실제 대기업 쇼핑몰 앱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나는 정당한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다"는 강력한 착각을 심어줬다. 그 착각 속에서 기자는 텔레그램 방에 입장했고, 그곳에서 600여 명이 쏟아내는 고액 입금 인증샷에 이성을 잃을 뻔했다.

문자 한 통으로 시작해 통장 해지로 끝나기까지, 불과 며칠 걸리지 않았다. 사기꾼들은 우리의 '불안'과 '욕망'을, 그리고 '성실함'마저도 악용했다.

이번 잠입 취재의 결론은 명확하다. 얻은 것은 독이 든 사과 같은 9만 원이요, 잃은 것은 소중한 개인정보와 멀쩡했던 주거래 은행 계좌,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찜찜함이다.

"세상에 노력 없는 대가는 없다." 스마트폰 액정을 몇 번 터치해 앉아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약속은 행운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을 조준하고 있는 '해독제 없는 독'이다. 이 길의 끝에 꽃길은 없다. 의심스러운 메시지에 대해 가차 없이 삭제 버튼을 누르는 것, 그것만이 당신의 재산과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결국,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지금의 기자처럼 쫓기듯 은행 창구로 달려가야 하는 '초라한 통장 해지 엔딩'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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