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talk)!세상] ‘품다’라는 동사의 경건함

오형일 KBS 드라마PD 2026. 2. 1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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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 드라마 결정하는 회의…
商것이든 공적이든 문제 아니다
날서거나 상투적인 언어들사이
놓치고만 생명을 품는 온기였다

오형일 KBS 드라마PD

나의 업은 드라마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이다. 돈의 규모도 크고 얽혀 있는 사람도 많은 상(商)것의 영역이다. 그런데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임금을 받는 곳은 방송 영역에서 가장 공적인 것을 요구받는 곳이다. 내 월급의 절반 가까이는 매달 2천500원 시청자들의 수신료로부터 빚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것과 공적인 것, 창과 방패처럼 모순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교집합이 많은 것도 아니다. 원래 공이란 상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거나, 미뤄지지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온기를 보완하고 지켜내는 것을 기본 가치로 두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때론, 아니 자주 “나는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이런 의문을 품게 되는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후속 드라마를 결정하는 회의실. 이 회의는 상것의 언어와 수치가 팽팽하게 맞서는 장이고, 상것의 언어에 강하지 못한 나는 회의 내내 얻어터지는 기분이다. “이 캐스팅으로 사업성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ROI(투자수익률)죠. 적자 날 게 뻔한데 왜 합니까?” “저희 채널 주고객과 맞습니까? 시청률 안 나와요.” “2049세대에게 소구하지 않으면 광고 안 팔려요.” “OTT에 선판매되기 전에 저희 예산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대로 질 수 없잖아, 오기가 생겨 같은 논리로 대응하다 보면 돈과 숫자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정 없는 꼰대가 돼가는 기분이다. 아니 상것이라고 이렇게 매몰차기만 해도 되는 겁니까!

심란한 마음으로 자리로 돌아오니 메일 하나가 왔다. ‘경영평가 면담 자료 언제까지 주실 수 있나요? 내일이 마감입니다’. 공적인 것을 요구받는 회사에서 귀찮아도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설명 책임’이라는 게 있다. 저희 이런 것, 요런 것을 이런 공적인 맥락에서 했어요, 라고 시청자를 대표(?)하는 높으신 분들에게 설명하는 거다. 참고하라고 보내준 첨부 파일을 여는데 그 텍스트에는 앞선 회의에선 찾아볼 수 없던 이야기가 가득했다. 따뜻한 웃음과 감동, 온 가족에게 꿈과 행복을, 수신료의 가치를 그대 품 안에…. 이런 단어들을 보다 보면 괜히 오글거리고, 여기에 공적이라고 이야기되는 언어꾸러미들을 하나, 둘 덧붙이다 보면 클리셰 범벅의 따분한 대본을 쓰는 기분이다. 아니 공적이라고 이렇게 재미없어도 되는 겁니까!

재미없는 말 중 가장 상투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 ‘차별화’다. “저희는 상업방송과 차별화된 드라마를 합니다.” 차별화가 들어가지 않으면 무슨 문제라도 되는 양 곳곳에 차별화를 덕지덕지 붙여놓다 보니 이런 질문이 들었다. 도대체 차별화란 뭘까? 다른 영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단막극이나 대하드라마를 하면 차별화인가? 엄마, 아빠들이 매일 틀어놓고 보는 연속극을 하면 차별화인가? 분명 차별화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상것의 영역에서 새 상품을 만든다는 것도 기존과 다른 것을 선보이겠다는 차별화 몸부림 아닌가? 챗 GPT가 매번 업그레이드 소식을 내놓는 것도 차별화 아닌가? 새 기획안을 마주할 때 첫번째 덕목으로 삼는 신선함이라는 것도 결국 차별화의 다른 말 아닌가? 그렇다면 상것들과 다른 가치로 차별화를 덕지덕지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투적으로 쓰는 차별화가 어떤 공적 세계도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것 언어의 매몰참에 얻어터지고, 공적 언어의 오글거림과 상투성에 한숨이 나던 늦은 오후, 창문 사이 푸르스름한 빛에 책장 한편에 오래 꽂혀 있기만 하던 ‘허송세월’이라는 단어가 눈에 밟혔다. 적확하게 내 마음을 겨냥하는 제목 같아, 책을 꺼내 어떤 페이지를 펼치니 알을 품은 새의 고요한 집중을 관찰하며 느낀 한 노작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새가 알을 품어서 새끼를 깨워 내고 형태를 부여해 주듯이, 나는 나의 체온을 불어넣어 가며 단어와 사물들을 품어 본 적이 있었던가. 당신들과 나는 오랫동안 잘못 살아왔다’.

상것이든 공적이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날서거나 오글거리는 상투적인 언어들 사이 놓치고만 생명을 품는 온기였다. 퇴근길, 나는 ‘오랫동안 잘못 살아왔다’는 노작가의 죽비소리와 ‘품다’라는 동사의 경건함을 오래 생각했다.

/오형일 KBS 드라마PD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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