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모든 건 '콩'에서 시작된다...국내 유일 '빈투바' 초콜릿 공장을 가다

[대한경제=오진주 기자] "자부심이 있는 카페는 원두를 직접 가공해서 커피를 내리지 커피가루를 수입해서 커피를 내리진 않습니다. 원료에서 시작해야 원하는 맛을 낼 수 있죠."(최명완 경남 롯데웰푸드 양산공장 공장장)
30년 전에도 지금도 국내에서 초콜릿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카카오 빈(콩)을 자루째 수입해 오는 곳은 롯데웰푸드가 유일하다. 카카오빈을 초콜릿으로 만들기 위해 거대한 설비를 유럽에서 들여오는 게 당시에는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초콜릿에 진심'인 이 철학은 롯데를 껌만 팔던 회사에서 국내 대표 제과 회사로 올려놓는 발판이 됐다.
롯데웰푸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경남 양산공장에서 빈투바(Bean to Bar)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빈투바는 카카오 원두를 초콜릿 완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뜻한다.
빈투바 시스템의 핵심은 BTC(Bean to Chocolate) 공정이다. BTC 공정의 기본 원리는 커피와 참기름을 내리는 원리와 비슷하다.

지난 10일 찾은 양산 롯데웰푸드 공장은 들어서자마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떠올리는 달콤한 향이 코를 찔렀다. 이 달콤함은 투박한 카카오 빈에서 시작한다. 라인 입구에는 엄지 손가락 절반만한 카카오빈이 가득 담긴 헝겊 포대가 사람 키를 훌쩍 넘겨 쌓여있다. 가나와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에서 온 카카오 빈이다.
이 카카오 빈은 깨끗이 씻은 뒤 커피콩처럼 고온에 볶아지는 과정을 거친다. 땅콩 껍질을 벗기듯 거대한 '위노어(Winnower)' 설비에 넣어 껍질과 알맹이를 분리하면 껍질은 빨아들이고 알맹이만 남는다. 껍질은 버리지 않는다. 동물 사료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남은 알맹이는 '로스터(Roaster)'에 넣어 한 시간당 3.5톤(t)을 고온에 볶아낸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빈 특유의 산미가 없어지고 미생물이 사라진다. 카카오빈은 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알칼리 용액을 넣는 과정을 지난다. 이제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맛의 기본이 된다.
BTC 공정의 핵심은 빈을 매스(액상)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다. 다른 국내 초콜릿 제조사들은 카카오 매스 자체를 수입해 초콜릿 완제품으로 가공한다. BTC 공정을 도입하면 거액을 투입해야 할 뿐만아니라 안정화하기까지 노하우가 필요해 시간도 오래 걸린다. 롯데가 지난 30여년 동안 구축한 국내 초콜릿 시장 1인자의 자리를 넘보기까진 효율성이 떨어진다.

양산공장에서 만드는 카카오 매스는 참기름을 짜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카카오빈을 밀가루 입자보다 고운 20마이크로미터(㎛) 크기로 잘게 분쇄하면 기름이 나오면서 액상화된다. 바로 당장이라도 막대과자를 찍어 먹을 수 있는 초콜릿 분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살짝 찍어먹어본 카카오 매스는 말 그대로 '카카오 100%'다. 카카오 함량을 높인 '드림 카카오 82%' 제품이 있다면, 카카오 매스는 '드림 카카오 100%'다.
이 과정에서 가열과 냉각을 반복하며 코코아 버터와 유지 성분의 지방 결정을 사람 체온과 가장 비슷한 결정으로 재배열한다. 이렇게 하면 상온에서는 고체지만, 34도인 입 안에 들어가면 부드럽게 녹아 풍미가 퍼지는 초콜릿이 된다.

롯데웰푸드는 1995년 BTC 공정을 도입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150억원을 들여 지난해 9월 새 설비를 설치했다. 설비는 30여년 전 비워뒀던 공간에 설치됐다. 당시 롯데는 BTC 공정을 적용하면 초콜릿 수요가 늘 것이라 예상하고 라인을 비워뒀다.
신규 설비는 약 4개월의 안정화 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 중이다. 이를 통해 직원 수는 그대로지만, 공정 수가 이전보다 25%가량 줄어든 효과를 거뒀다. 카카오매스 생산능력(CAPA)도 한 시간당 1톤에서 2.5톤으로 150% 늘었다.

최 공장장은 "신규 설비로 밀도를 낮추니 혀에서 녹는 촉감이 더 부드러워져 본연의 맛에 더 가까워졌다"며 "올해는 소비자에게 저가에 더 고품질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진주 기자 ohpearl@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대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