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에야 만든 ‘내 작품’ 나이테에 새긴 영원한 미완의 길 [경남 무형유산을 찾아서]

류민기 기자 2026. 2. 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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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목장 정진호 보유자

은인 김동진 선생 만나면서 소목에 몸담아
정돈산 선생과 17년간 함께해…1995년 독립

일타 스님·도실 스님 등 불교와 인연 돈독해
대표작 ‘사방불오층목탑’에 소목·조각 인생 녹여

전승교육사·이수자 등 함께하며 전승 기반 탄탄
“노력하면 안 될 게 없어…원력으로 한 것 같아”
경상남도 무형유산 소목장 정진호 보유자가 1월 30일 자신의 작업실인 진주 단원공방에서 대표작 '사방불오층목탑'을 설명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상남도에만 모두 41건의 무형유산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름과 내용, 그것을 지켜온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지역 유산을 조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록의 필요성'과 '계승의 위기'가 이야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쉽게 흩어진다. 이 기획은 단순히 지역 유산을 나열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의 시간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오늘까지 이어온 사람들의 현재를 차분히 따라가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일이다.

2021년 9월 23일부터 28일까지 경남문화예술회관 제2전시실에서는 <소목의 멋과 은칠보공예의 공감(共感)> 전시가 열렸다. 경상남도 무형유산 '소목장' 정진호(72) 보유자의 고희를 기념한 이 전시에서 그는 반세기 소목·조각 인생을 정리하며 만든 '사방불오층목탑'을 공개했다. 그는 이를 미완(未完)의 역작이라 했다.

정 보유자는 전시에서 같이 선보인 자서전 <매혹, 그리고 미완-소목장 정진호의 인생 나이테>에서 미완의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나이테는 영원히 자란다. 미완이라는 이야기다. 나의 길 또한 그러하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해왔다. (중략) 그 작품들에 어머니 얼굴, 부처님 얼굴 그리고 인연 깊었던 스님들과 내 스승의 얼굴을 새겼는지 모른다. 아마도 영원한 미완에 대한 나의 부끄러운 고백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 현재 사방불오층목탑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며 최근 정 보유자의 작업실 단원공방(진주시 명석면 광제산로26번길 7)을 찾았다. 공방에 들어서니 사방불오층목탑이 공간의 중심을 잡고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미완의 완성'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이를 작품이 오래오래 사람들의 눈길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전통 목가구나 목기 등 제작

정 보유자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소목장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목장(木匠)은 대목장(大木匠)과 소목장(小木匠)이 있다. 대목장은 집 짓는 일의 전 과정, 즉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 설계부터 공사 감리까지 책임지는 목수를 일컫는다. 대목장이 건물을 짓는다면 소목장은 건물 내 가구 등을 제작한다. 다음은 국가유산청에서 설명하는 내용이다.

"소목장은 건물의 창호, 목기, 목가구(장롱·궤·경대·책상·문갑 등)를 제작하는 목수를 말한다. 기록상으로 보면 목수는 신라 때부터 있었고,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 때부터 사용됐다. 조선 전기까지는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을 위한 목가구가 만들어졌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보급돼 자급자족에 따른 지역적 특성이 나타나게 됐다."

정 보유자는 진주 출신 고 정돈산(1939~1992·국가무형유산 소목장 보유자) 선생에게서 사사했다. 그는 소목뿐 아니라 조각까지 기능을 갖췄으며,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는 최초로 2004년에 보유자로 지정됐다. 경남에는 정 보유자와 함께 김동귀(2012년 지정), 조복래(2016년 지정) 보유자가 있다. 국가무형유산으로는 김금철 전승교육사가 있다.
경상남도 무형유산 소목장 정진호 보유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류민기 기자
경상남도 무형유산 소목장 정진호 보유자의 작품 '일타 큰스님 글씨 10폭 병풍'. /류민기 기자
경상남도 무형유산 소목장 정진호 보유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류민기 기자

16살에 조각과 연 맺어…20대 중후반부터 소목에 몸담아

"인생살이 70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인연이었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흔히 인연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 같지는 않다.(중략)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중에서 하필이면 좋은 인연이 내 삶을 여기까지 데려와 준 게 아닌가 싶다." (정진호 자서전 중에서)

경북 포항 출신인 정 보유자는 16살이던 1967년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끊고자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던 그는 오며 가며 본 목공소 일에 매력을 느꼈고, 함께 살던 작은형에게 부탁해 그곳에 취직하며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한두 차례 업체를 옮기는 동안 조각 실력은 늘었고, 불단 조각에도 연이 닿았다.

정 보유자는 25살이던 1976년 잠시 돌아온 고향에서 김동학(1989년 국가무형유산 전통장 보유자 지정) 선생을 만나며 다시 전환점을 맞았다. 김 선생의 주선으로 진주에서 김동진 선생을 만났으며, 약 2년 후 김동진 선생이 작고한 이후에는 그의 이조공예사를 인수해 의천공방으로 운영한 정돈산 선생과 17년간 함께했다.

정 보유자는 김동진 선생의 살아생전 약속인 진주 연화사 부처 좌대 제작을 맡으면서 소목 일에 몸담게 됐다. 이전까지는 조각 등을 하는 데 그쳤다면 김동진 선생이 이어놓은 사찰과 연을 맺으며 첫 작품을 만들게 됐다. 이후 사찰 의뢰·중개 덕에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덜었으며, 정돈산 선생이 작고하고 3년이 지난 1995년에는 공방을 차려 독립할 수 있었다.
작업실 모습. /류민기 기자
조각도를 비롯해 톱·대패·끌 등 연장. /류민기 기자
작업실 모습. /류민기 기자

불교와 떼려야 뗄 수 없어…사방불오층목탑에 소목·조각 인생 집약

첫 작품이 진주 연화사 부처 좌대인 것을 비롯해 정 보유자와 불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좌대 제작비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불교에 마음이 기울며 연은 깊어졌다. 그가 인연을 맺은 스님도 진주 의곡사 황산 스님, 합천 해인사 지족암 일타 스님, 부산 광명사 도실 스님, 부산 호명사 고 묘명 스님, 산청 대원사 행돈 스님 등 헤아릴 수 없다.

정 보유자의 대표작 사방불오층목탑에는 그의 이런 소목·조각 인생이 집약됐다. 정 보유자는 일흔 가까운 나이가 돼 '내 작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으면서 목탑 제작에 골몰했다.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지, 몇 층으로 만들 것인지 고심을 하다 보면 형태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이를 '목탑이 스스로 내 안으로 들어왔다'고 표현했다.

사방불오층목탑은 12면 탑신이다. 동서남북으로 각각의 방향에 세 개의 면을 구성해 입체감을 주고 조각품을 늘렸다. 맨 아래층에는 8대 금강역사와 비천상, 2층에는 문수보살·보현보살 등 12명의 보살, 3층에는 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 등 4명의 부처와 8명의 동자승, 4층에는 육법공양, 5층에는 불교의 상징을 새겼다. 탑 주변에는 386개의 촛불을 형상화했다. 정 보유자는 "조각과 대목 기법을 모두 녹여 완성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소목 작품"이라고 말했다.

"사방불오층목탑을 만들고 나서 '노력하면 안 될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을 접할 일이 있으면 그런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안 될 거 같아도 끈질기게 노력하면 되더라'고 말이다. 원력(부처에게 빌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마음의 힘)으로 한 것 같기도 한데, 생각지도 못한 걸 완성하고 나니까 흐뭇하다."
경상남도 무형유산 소목장 정진호 보유자가 작은아들이자 전승교육사인 정연오(맨 오른쪽) 씨, 이수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연오

"작품 하나하나 보면 마음 흐뭇해"

정 보유자의 공방에는 사방불오층목탑을 비롯해 '일타 큰스님 글씨 10폭 병풍'과 '진주반닫이' 등 소목 작품들이 1층과 2층에 전시돼 있다. 안쪽으로 작업실이 있는데, 그의 보물 1호인 나무(목재), 특히 사찰에서 구한 수백 년 된 나무들이 다음 작품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보물 2호로 그가 직접 만들어 쓰는 조각도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에는 단원소목연구회 공방이 있다.

김동진 선생과 정돈산 선생을 모셨던 정 보유자는 이제 그 자신이 연구회를 통해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작은아들인 정연오 씨는 전수교육생과 이수자를 거쳐 전승교육사가 됐으며, 반려자인 박수은 씨는 정 보유자의 작업에서 사포질과 옻칠을 전담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이수자 3명과 전수교육생 7명이 있는데, 정 보유자는 이들을 희망이자 미래라고 말했다.

정 보유자는 "이제는 나무가 아름다운 것이, 작품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전에는 먹고사느라 그런 생각도 못 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애들 다 결혼하고 제자들도 있다. 나무를 다 꾸며놓고 작품을 보면 마음이 좋다. 매일 작업실로 내려와 작품 하나하나 보면 만들 때 기억도 나고 마음이 좋다"고 말했다.

/류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