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AI 시대, 근면의 정의가 달라진다

2026. 2. 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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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시대에 '근면'을 말하면 시대착오처럼 들리기 쉽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상황에서 더 열심히 일하자는 주장은 과로의 미화로 오해받는다.

주4.5일제 논의, 근로시간 단축, 워라밸의 확산 속에서 근면은 낡은 덕목처럼 취급될 수 있다.

그러나 AI 시대가 근면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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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완결 책임이 경쟁력
결과 중심 평가 체제로
韓노동시장 개편해야
최정일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경영학회 차기회장

인공지능(AI) 시대에 '근면'을 말하면 시대착오처럼 들리기 쉽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상황에서 더 열심히 일하자는 주장은 과로의 미화로 오해받는다. 주4.5일제 논의, 근로시간 단축, 워라밸의 확산 속에서 근면은 낡은 덕목처럼 취급될 수 있다. 실제로 퇴근 시간이 되면 업무 완수 여부와 관계없이 자리를 뜨고, 중간관리자와 상위 관리자만 남아 일을 마무리하는 풍경도 일상화됐다. 그러나 AI 시대가 근면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면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

AI는 노동을 대체하기보다 노동의 성격을 재편한다. 반복 업무는 자동화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판단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가 있으니 덜 일해도 된다는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 기술은 노력을 대신하지 않는다. 방향 없는 노력만 걸러낼 뿐이다. 성과의 차이는 AI 도입 여부가 아니라 AI를 활용해 맡은 일을 끝까지 완결하는 능력에서 발생한다.

한국 사회의 근면은 오랫동안 '오래 일하는 것'과 동일시돼왔다. 산업화 시기에는 국가 주도의 성장 전략 아래 근면·성실이 집단적 동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근면 자체를 버릴 수는 없다. AI 시대의 근면은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책임의 완결성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를 설명할 수 있으며, 자신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태도다.

문제는 이러한 근면의 재정의가 한국 노동시장 구조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직무는 불명확한데 책임은 사후적으로 부과되고, 성과 기준은 모호한 반면 규정과 절차는 촘촘하다. 이 구조에서는 효율적으로 일하려는 시도보다 '문제 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 된다. AI 도입 후에도 생산성이 체감되지 않는 것은 기술보다 효율성과 진정성이 함께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노동 관련 법·제도 변화 역시 이러한 긴장을 드러낸다. 근로자 보호 취지는 분명하지만, 현장에서는 책임과 권한의 비대칭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사용자 책임은 넓어지는데, 성과에 대한 공동 책임과 업무 완결 규범은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는 분쟁의 경계를 규율하지만, 일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대한 기준까지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노동시장은 '시간은 엄격히 관리되지만 성과는 흐릿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근로시간 단축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업무 재설계 없이 시간만 줄어든 구조가 문제다. 효율성은 떨어지고 일에 대한 몰입과 진정성은 약화된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율이나 더 적은 노동이 아니라 명확한 역할과 책임, 그리고 결과 중심의 평가 체계다.

근면을 세대 문제로 환원해서도 안된다. 젊은 세대가 일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완수보다 준수가 더 중시되는 제도 속에서 행동이 합리화된 결과다. 퇴근 시간에 맞춰 자리를 뜨는 것은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그러나 맡은 일의 결과에 관심을 갖고 학습과 개선을 이어가려는 진정성까지 사라질 때 조직 경쟁력은 급속히 약화된다. AI는 일을 도와줄 수는 있어도 일에 임하는 태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AI 시대의 근면은 과거처럼 희생을 요구하는 덕목이 아니다. 불필요한 노동을 줄이되, 필요한 일에는 끝까지 책임지는 능력이다. 더 오래 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고 진정성 있게 일하자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만이 아니다. 기술을 성과로 완결시키는 근면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최정일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경영학회 차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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