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왜곡 역사 바로잡기…‘정판사 위폐 사건’ 재조명

고은정 기자 2026. 2. 1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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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암 이관술 재심 무죄’ 국회 토론회
판결 의미 되짚고 서훈 등 과제 논의
울산 출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고(故) 학암 이관술 선생(1905~1950)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으면서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판결 의미와 향후 과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제공
울산 출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고(故) 학암 이관술 선생(1905~1950)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으면서 독립유공자 서훈 가능성에도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판결 의미와 향후 과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유족과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이재유기념사업회와 국회역사정의 포럼(공동대표 이수진·김용만 국회의원)이 함께 마련했다.

토론회에서는 임성욱 박사('이관술과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배문석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진실과 명예 회복을 위한 법정 운동'), 이지원 대림대 명예교수('한국근현대사 역사 정의 운동의 과제')가 각각 발제했다.

# "정판사 사건 조작은 해방정국의 친위 쿠데타"

임성욱 박사는 해방 후 5년간 친일 잔재 청산과 통일 국가 수립이 좌절되면서 좌우 갈등이 심화했고, 그 틈에서 친일·분단·독재 세력이 득세한 것이 분단·전쟁·독재로 이어졌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그는 그 비극의 초기에 벌어진 사건으로 정판사 '위폐' 사건을 거론하며, 이를 "미군정이 행정·군대·경찰·사법기구를 총동원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작한 허구의 범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제1야당을 파괴"하고 지도자의 명예와 삶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사건 조작을 "해방정국의 친위 쿠데타"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재심 무죄에 대해 "80년간 '진실'로 굳어진 조작된 역사를 되짚어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다시 끼운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 "11월17일 순국선열의 날 독립유공자 서훈 기대"

배문석 사무국장은 정판사위폐사건 재심에서 이관술 선생의 무죄가 선고 이후 2025년 12월 30일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서훈과 관련해서는 유족(외손녀 손옥희)이 2026년 1월 28일 국가보훈부에 서훈을 접수했으며, 이번 심사가 2020년 보류 이후 6년 만에 다시 이뤄진다고 밝혔다. 또한 "재심 무죄 확정 이후 서훈 문의가 계속됐다"는 보훈부 담당자 발언을 전하면서, 보훈부가 자체적으로도 심사 대상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독립운동 서훈 심사 적체로 결과는 빠르면 올해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전후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청원서 확보 등 추가 접수도 이어가며 "선양에 머물지 않고 재심과 서훈의 의미를 더 크게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역사정의 운동의 성공 사례"

이지원 대림대학교 명예교수는 이관술·정판사 사건을 단순 '위조지폐 사건'으로 둘 것이 아니라 "미군정기 사법 폭력과 냉전 반공체제의 출발점"이라는 맥락에서 공공의 역사문화로 수정·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공적 서술의 문제 사례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내 '조선정판사 위폐사건' 항목이 사건을 "공산당원들이 위조지폐를 발행"한 것으로 정의하는 점을 언급하며, 공공역사 영역의 일반적 인식 자체가 재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무죄 확정 자체를 "유족·시민사회·연구자의 장기 자료 수집과 캠페인, 언론 기획 보도가 결합한 역사정의 운동의 성공 사례"로 평가했다.

주최 측은 "토론회가 재심 무죄 판결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서훈 심사 및 명예 회복, 공공역사 정비 등 후속 과제를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관술 선생은 울산 울주군 범서 출신으로 서울 중동고와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1930~40년대 항일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해방 직후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1946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인 1950년 7월 3일 대전 골령골에서 학살당했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