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왜 차별금지법 앞에서 멈추는가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가 '김예원의 다른 시선'을 연재합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 의심하지 않았던 상식에 물음표를 던져 보고, 목소리 큰 이들 뒤에 가려진 사람과 사연을 김 변호사만의 따뜻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길어 올립니다. 우리 사회 다양한 이슈를 새롭게 읽어 낼 이번 연재는 매월 2번째 수요일에 찾아갑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던 때, 같은 학교 교수와 종종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유대인인 그는 말수는 많지 않았지만 눈빛에 총기가 넘치는 중년 남성이었다. 밥을 먹다가 그가 자연스럽게 '남편' 이야기를 꺼냈다. 두 사람의 일상은 소소하고 재미있었다. 다음 주에 남편 고향인 인도네시아에 다녀온단다.
인도네시아는 일부 지역에 이슬람 샤리아 형법이 남아 있는데, 동성애를 범죄로 보아 벌금이나 징역은 물론 공개적인 태형도 집행한다. 걱정이 되어 슬쩍 물어보았다. "고향에 같이 갈 때 서로 뭐라고 불러요?" 잠깐 멈칫하더니, 방문할 때마다 그 부분이 늘 고민이라고 말했다. 여기서는 서로 '허니'라고 부르지만, 남편의 고향 길거리에서는 그럴 수 없어서 늘 어색하게 거리를 두고 말을 아낀다는 것이다. 제일 좋아하고, 가장 친한 사람을 부르는 사적인 호칭마저 사회의 법과 규범 앞에서는 검열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문득 서늘하게 다가왔다.
소수자의 삶과 종교·문화·국가의 규범이 긴장 관계에 놓이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한국에도 몇 년째 반복되어 온 익숙한 장면이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 동성 커플이나 성적 지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종종 '차별금지법 반대'라는 말이 이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 역시 "동성애 대 기독교"라는 구도로 단순화되는 경우가 많다. 법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피해를 막으려는 법인지 묻지 않고, '동성애를 조장한다', '목사를 감옥 보낸다'는 자극적인 구호가 더 빠르게 퍼지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해 왔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이후 여러 차례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번번이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의석수를 가지고도, 정치권은 '사회적 합의'라는 말을 핑계 삼아 법안을 캐비닛 깊숙이 밀어 넣어 왔다. 사회적 합의란 무엇인가. 사회 구성원은 늘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 역시 수시로 달라진다. 그런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논의를 뒤로 미뤄 온 현실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에 가까웠다.
지난달, 손솔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다. 이번 안에는 노동과 일의 영역에서 '노무 제공 계약'까지 고려해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에 대한 차별도 포함시켰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차별에 집단소송이라는 통로를 열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제소에 나설 수 있도록 하며, 차별시정정책위원회를 두는 등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구조다.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에 관한 법이라는 오해와 달리, 이 법은 노동·복지·행정 전반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다루는 기본적인 인권법이다. 법안을 찬찬히 읽어 보면, 이 법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특권을 더 얹어 주려는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일터와 학교, 병원과 공공기관에서 반복되어 온 차별의 구조를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한 장치로 설계됐다. 나이나 출신 지역, 건강 상태나 피부색, 외모나 혼인 여부, 학력 같은 이유로 늘 먼저 배제되어 온 사람들을, 비로소 법의 언어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려는 시도에 가깝다.
물론 법이 생긴다고 차별이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법이 차별과 혐오에 대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어 줄 때, 그동안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사람들에게도 비로소 피해를 말할 언어가 생긴다.
어떻게 크리스천으로서 차별금지법을 찬성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되묻곤 한다.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이 법을 반대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장로교(PCUSA)는 성소수자 목회자 안수 문제를 수십 년에 걸쳐 논의해 왔고, 독일 개신교회(EKD)는 교단마다 다른 신학적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성소수자 교인을 환대하는 공동체들을 꾸준히 확장해 왔다. 영국 감리회 역시 동성 커플을 둘러싼 신학적 이견을 인정하는 한편, 종교의자유가 타인의 존엄을 부정하는 권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제도 안에서 정교하게 다듬어 왔다. 완벽한 합의에 이른 경우는 드물었지만, 최소한 이 문제를 찬성이냐 반대냐의 단순한 대립 구도로 납작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 논의의 중심에는 차별을 겪는 사람들의 존엄이 놓여 있었다.

김예원 /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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