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HBM 설계도 내놔라”…ITC, 도 넘은 韓 압박

김우보 기자 2026. 2. 1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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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분쟁 넷리스트 요청 인용
하이닉스에 영업기밀 공개 강요
SK하이닉스. 연합뉴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005930)의 자국 기업 특허 침해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SK하이닉스(000660)에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기밀 정보들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ITC가 HBM 설계 방식뿐 아니라 생산능력, 원가 정보 등 영업 기밀 전반을 요구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1일 재계와 통상 당국에 따르면 ITC는 최근 미국 반도체 기업 넷리스트가 SK하이닉스에 대해 요청한 이 같은 내용의 정보공개 안건을 인용했다.

ITC는 넷리스트의 요청에 따라 SK하이닉스에 주요 제품 정보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HBM 설계와 동작 방식, 구성 요소 등이 요청 목록에 포함된다. ITC는 SK하이닉스의 인건비와 시설 비용을 포함한 제품의 원가 내역도 요청할 예정이다. 기업의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포괄적으로 요구하려는 것이다.

이번 요청은 넷리스트가 삼성전자와 진행 중인 특허 소송과 연계돼 있다. 넷리스트는 지난해 11월 삼성전자의 HBM과 DDR5 등 메모리반도체가 자사 기술을 침해했다며 ITC에 제소했다. ITC가 수입 배제 명령을 내려 해당 제품의 미국 내 반입을 막아줄 것도 함께 요청한 상태다.

넷리스트는 자사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돌연 SK하이닉스의 제품 및 투자 관련 정보가 필요하다고 ITC에 요청했는데 ITC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영업 기밀을 외부로 반출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라면서 “ITC의 요구 사항이 과도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넷리스트가 삼성전자와의 분쟁에 SK하이닉스를 끌어들인 것은 반도체 수입 금지 요청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ITC는 특허 침해 여부와 함께 미국 내 특허를 활용하는 산업이 존재하는지(국내 산업 요건)를 검증한 뒤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린다. 특허 침해로 미국 내 피해를 보는 산업이 없다면 수입을 막더라도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넷리스트가 SK하이닉스의 미국 투자를 근거로 국내 산업 요건을 끼워 맞추려는 점이다. 앞서 넷리스트는 SK하이닉스와 특허 소송을 벌여 2021년 SK하이닉스에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합의를 끌어냈다. 넷리스트는 이를 근거로 SK하이닉스가 자사 특허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사 특허를 활용한 SK하이닉스가 미국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니 국내 산업 요건이 충족되고 특허를 침해한 삼성전자 제품의 대미 수출을 막아야 한다는 게 넷리스트의 논리다.

ITC는 삼성전자 제품의 미국 수입이 금지될 경우 SK하이닉스가 현지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도 SK하이닉스 측에 요청할 예정이다. 실제 수입 배제 명령을 ITC가 내릴 가능성은 낮지만 만에 하나 수입을 금지할 경우 미국 현지 수요 업체의 피해 여부를 가늠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대응 수위에 관심을 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자료 요청에 협조하면 특허 분쟁에 휘말린 삼성전자도 곤혹스러울 수 있다”면서 “적극 협조하기도, 하지 않기도 모두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국 기업을 전폭적으로 편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 아래 ‘특허 괴물’로 불리는 미국 내 특허전문관리회사(NPE)들의 공세가 잇따르면서 반도체 업계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NPE인 모놀리식3D는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SK하이닉스와 일본 키옥시아를 ITC에 제소하기도 했다. 모놀리식3D는 SK하이닉스의 HBM2E·HBM3·HBM3E 등이 자사의 3D 적층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NPE들이 특허 소송을 통해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내려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라 합의금을 챙기기 위한 소송이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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