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는 액션, 깊어진 서사…10주년 맞은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더 라스트’

“나는 괴물이다. 들개로 태어난 내가 5446부대에서 괴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9년, 그동안 난 한 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막이 오르자 비장한 내레이션이 어둠을 가른다. 팽팽하게 조여 오던 긴장감은 잠시, 무대로 쏟아져 나온 배우들의 격투가 시작되고 점멸하는 조명 아래 휘몰아치는 액션의 열기가 순식간에 객석을 달군다.
창작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THE LAST>가 10주년을 맞아 화려하게 귀환했다. 관객들에게 영화로도 익숙한 이 작품은 2016년 소극장 초연을 시작으로 10년간 전국 40개 지역에서 누적 관객 11만 명을 모으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입증한 스테디셀러다. 2020년 중극장 버전으로 확장된 데 이어, 올해 10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지난달 30일 개막해 서울 종로구 놀 씨어터 대학로(약 1000석)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번 시즌은 시작부터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드라마와 쇼, 액션이 결합된 ‘액션 뮤지컬’이라는 수식어답게 첫 장면부터 관객을 격투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극은 북한 남파 공작원으로 길러진 세 청년 원류환·리해랑·리해진이 남한의 달동네에 잠입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은 각각 동네 바보 청년, 록커 지망생, 고등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평범한 일상을 연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든 명령에 반응하도록 단련된 특수부대 엘리트 요원이라는 정체가 숨겨져 있다.
리더 원류환은 어수룩한 얼굴 뒤에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깊은 고독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리해랑은 음악과 일상에 마음을 빼앗기며 점차 ‘지금의 삶’을 욕망하고, 막내 리해진은 감시자이자 요원으로서의 역할과 인간적인 감정 사이에서 가장 크게 흔들린다. 동구네 슈퍼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웃들과의 관계는 이들에게 가족 같은 온기를 건네는 동시에, 임무와 삶 사이 선명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대극장에 맞춰 가장 크게 강화된 요소는 단연 액션이다. 영화 <올드보이>, <아저씨>, 뮤지컬 <그날들> 등에서 거친 액션을 선보여 온 서정주 무술 감독이 새 시즌에 합류하며 무대 위 ‘액션 군무’의 밀도는 한층 높아졌다. 서 감독은 앞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10년 동안 사랑받은 작품에 합류하게 되어 떨리기도 했고, 어떻게 그려낼지 고민도 많이 했다”며 “배우들, 창작진과 회의를 많이 해 구도를 잡았고 잘 나왔다”고 결과에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관객석까지 그 호흡과 타격감이 전해질 만큼 생생하다. 맨손 무술을 비롯해 총과 칼을 활용한 전투, 여기에 아크로바틱과 비보잉 등 다양한 장르의 움직임이 결합되며 액션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하나의 퍼포먼스로 기능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같은 액션이 극의 정서를 밀어붙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 공작원들의 훈련 장면과 후반부 결투 시퀀스에서는 배우들의 합과 호흡이 정교하게 맞물리며 처절함과 비장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격투는 곧 인물들의 감정이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대극장 입성에 따라 배우 수도 초연 8인에서 17인으로 대폭 늘었다. 넓어진 공간을 가득 채우는 요원들의 집단 액션은 이번 시즌에서 만끽할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다만 무대 규모에 비해 무대 미술과 연출의 확장은 다소 아쉽다. 동구네 슈퍼 앞마당과 3층 철제 구조물을 중심으로 한 주요 무대가 크게 변주되지 않아, 공간적 가능성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인상도 남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 이유는 분명하다. 액션이 거칠게 몰아치는 와중에도 인물들이 노래하는 것은 결국 인간다운 삶과 가족,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다. 인물들이 갈망하는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라는 점에서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끝내 인간의 이야기로 남는다.
캐스팅에서도 10주년다운 확장이 눈에 띈다. 김동준(제국의아이들), 니엘(틴탑), 영빈(SF9) 등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새롭게 합류했고, 실력파 테너 백인태와 클릭비 출신 오종혁은 원류환 역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4월 26일까지 놀 씨어터 대학로에서 이어진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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