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류의 진보인가?…자본의 질주를 위한 도구로 전락”

인공지능(AI)이 문장 한 줄로 세상을 그려내는 시대, 그 편리함의 장막 뒤에 가려진 ‘노동 착취’와 ‘자원 수탈’의 민낯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5일 서울 동작구 서울가족플라자에서 열린 ‘2026 체제전환운동 포럼’의 ‘인공지능에 맞서 저항을 연결하는 디지털정의운동’ 세션에서는 AI를 ‘피할 수 없는 미래’로 규정하는 자본의 서사에 균열을 내며, 시민사회의 연대와 저항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참석자들은 저항의 출발점으로 기술을 신비화하는 담론부터 깨뜨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AI 윤리레터’ 운영자 고아침씨는 인공지능을 “기술이 아닌 일종의 마케팅 서사”로 규정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현대차 노조 관련 발언에서 인공지능을 “거대한 수레바퀴”에 비유한 것을 비판하며, 이러한 ‘불가피성의 신화’가 기술을 과대평가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빅테크가 기술의 완성도를 정의할 때 수익을 근거로 한다는 점을 들어, 인공지능은 ‘인류의 진보’ 가 아닌 ‘자본의 질주’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오픈 에이아이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맺은 계약을 보면, 범용인공지능(AGI)은 “수익 1천억 달러를 내는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명시돼 있다.
인공지능이 빅테크의 ‘지대 수탈’ 구조 위에 서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는 △구글과 메타가 전 세계 디지털 광고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애플·구글 앱스토어가 개발자에게 30%의 수수료를 부과하며, △지피유(GPU 그래픽처리장치)와 데이터센터라는 디지털 인프라를 독점해 임대료를 거두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와의 결탁 없이 불가능하다는 게 오 대표의 견해다. 빅테크가 2020년~2024년 미국 연방 로비에 사용한 자금이 3700억원에 달하는데, 이는 법과 제도로 수익 구조를 보장받으려는 행위라고 그는 지적했다. 오 대표는 “한 국가에서만 규제를 강화하면 ‘왜 우리만 경쟁력을 약화시키냐’는 문제 제기를 받는다”며 “글로벌한 규범 설정이 필요하고, 이것이 국제 연대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노동 현장에서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노동을 지우는지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도 잇따랐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인공지능이 내놓는 유창한 결과물은 결국 우리가 올린 데이터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로봇을 훈련한 노동자들의 산물”이라고 짚었다. 김하늬 디지털정의네트워크 운영위원은 기술이 사회를 결정한다는 ‘기술 결정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19세기 아동 노동을 금지한 공장법이 기계의 구조를 바꿨듯이 기술의 방향은 늘 사회적 투쟁의 산물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김 위원은 현대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사례를 들어 ‘기획과 개발 단계’부터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 과정에서 생기는 물리적·환경적 비용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현담 디지털정의네트워크 활동가는 인공지능 연산을 위한 광물 채굴에 7살 미만 아동까지 동원되는 콩고의 현실과 니켈 가공으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해양 생태계를 고발하며 국내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는 원전 15기의 전력량을 소모하는 데이터센터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 강원도 화천댐의 물까지 끌어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지역 사회의 자원을 빼앗아 기업에 우선 배분하는 ‘에너지 수탈’의 전형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가속화하는 인공지능 개발 속도와 방향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시민의 데이터 주권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데이터가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옵트아웃(Opt-out)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영향을 받는 시민을 수동적인 서비스 이용자가 아니라, 기술의 방향을 함께 정하는 ‘권리 주체’로 세우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대 자본이 독점하는 대형 모델에만 의존하지 않고, 오픈소스를 바탕으로 개방적 기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더 많은 데이터와 연산에만 매달리는 현재의 개발 방식 대신 에너지·자원·노동을 함께 고려하는 대안적 기술 경로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논의는 결국 민주주의로 수렴되었다. 장여경 이사는 “이름도, 얼굴도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이 새 질서를 만들고 비로소 ‘내가 결정하겠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쟁취해야 할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김수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sy2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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