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자율 거버넌스로 중대재해 줄여야”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 교수
“특별법 난립으로 산업안전 취지 후퇴”
“능동적 참여 위해 업종별 단합 필요”

“생명을 지키는 일에도 담합이 필요합니다. 특별법을 우후죽순 만드는 대신 기업들이 업종별로 모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스스로 준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착한 담합’을 허용해야 합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11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헤럴드경제·법무법인 대륙아주 공동주최 ‘노동·안전법제포럼’에서 “법령에 기업의 의무를 나열하는 누적적 입법이 역으로 노동 안전이라는 입법 취지를 희석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산업 생태계의 자기 규율, 산재 예방 거버넌스 구축’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강 교수는 한국산업보건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과 서울특별시 안전자문회의 민간위원 등을 역임한 산업안전 정책·현장 전문가다.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사고 백서 편찬위원과 인사혁신처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중대재해 예방 정책 및 산업안전 거버넌스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강 교수는 현행 산업안전보건 규제가 ‘법에 명시된 조치를 했는지’에 집중하는 의무나열형 구조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구조는 기술 발전 속도를 법이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법규에 없으면 위험하지 않다는 오인을 불러일으킨다. ‘규칙 준수’에 매몰돼 실질적 안전 확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지난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포함해 산업 안전에 대한 법안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안전 확보가 아닌 규칙을 준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며 “중대재해를 줄이는 관건은 법령에 의무를 나열하기보다, 기업이 위험을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산업계의 능동적인 활동을 촉진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대안으로 영국·독일·일본의 현행 산업안전 거버넌스를 제시했다. 이들 국가는 정부가 안전 목표를 제시하되, 구체적인 이행 방법은 산업과 기업이 자율적으로 설계하도록 하는 ‘위험관리형 규제’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을 근간으로 산업별 워킹그룹이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면 정부가 실행 지침(ACOP)으로 이를 승인해, 현장에서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산업별 워킹그룹에는 노·사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며, 정부 역시 노사 협력에 동참한다. 독일은 산재보험조합(BG)이 재해예방 규칙을 직접 제정·운영하며, 일본은 법정 단체가 업종별 위험성 평가 가이드라인을 신속하게 개발·보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산업별 가이드라인의 목표는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사 협의를 통해 무조건적인 위험 제어를 목표로 하기보다 사업장의 규모와 업계 수준에 맞춰 실행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은 중대재해처벌법·생활물류법 등 개별법이 난립하면서 규제 체계가 오히려 파편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장소 중심의 규제로 공장과 건설 현장을 제외하면 ‘법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넓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새로운 산업 안전에 대한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 연구실안전법, 공연법, 생활물류법 등을 잇달아 제정하며 낮은 단계의 의무와 규제만 파편화된 채 난립하고 있다”며 “특별법을 지켰으니 산업안전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은 나 몰라라 하는 도피처 전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개별법의 복잡한 규제를 삭제하고 포괄적인 거버넌스 근거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건설·물류 공제회 등에 법적 지위를 부여해 자율 규제 주체로 육성하고, 공제회의 안전 코드를 노동부가 승인해 현장 준수 시 면책을 부여하는 자기 규율 구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강 교수는 “정부가 안전에 관해서는 기업들의 능동적인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카르텔’을 만들도록 독려해야 한다”며 “나아가 정부가 업계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을 승인하고, 행정 및 사법 절차에서도 이를 활용해 산업 안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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