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영의 ‘지피지기’ 일본역사] ‘일등 국민’ 일본인, ‘열등 국가’ 일본
![시베리아 억류 일본군 포로들. [출처 : 야후재팬 화상]](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11/ned/20260211112128126mero.jpg)

“너는 커서 일본 사람처럼 되거라.”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독립한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초대 대통령은 어릴 적에 주말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일본군 포로수용소 철조망에 갔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아, 저 일본 군인들을 봐라. 누가 감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일하고 있다. 너도 커서 저런 일본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나는 어머니 말씀대로 실천했다. 그래서 지금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고 술회한 바 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에 약 2만5000 명의 ‘시베리아 억류’ 일본군 포로들이 이송되어 운하와 수력발전소 건설과 나보이오페라극장 건축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일본군 포로들이 본국으로 귀국한 지 20년 남짓한 1966년 4월 26일, 직하형 대지진이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시가지를 강타하여 주택과 건물 70%가 무너지고 약 1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런데 유독 일본군 포로들이 지은 나보이오페라극장만은 온전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이곳을 피난처로 삼았다. 지진에 무너지지 않은 나보이오페라극장을 지은 사람들이 일본인이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이를 계기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소련에서 독립할 때 일본을 국가 모델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일었다고 한다.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지진이 오면, 일본인이 지은 건물로 피신하라”고 말한다.
자유분방한 유목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성실하고 질서에 순응하는 일본인은 본받아야 할 ‘일등 국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이런 성실함과 손재주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가 성립된 이래 260여 년 동안 축적된 상인과 수공업자 즉 ‘조닌(町人)사회’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이 역량이 일본의 근대화를 견인했다.
![일본군 포로들이 1947년 완공한 우즈베키스탄 나보이오페라극장. [출처 : 야후재팬 화상]](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11/ned/20260211112128626lrha.jpg)
비극의 시베리아 억류
소련은 1945년 8월 9일 새벽, 일본과 맺은 중립조약을 파기하고 전격적으로 약 174만 명의 소련극동군을 동원하여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진격해 들어왔다. 이어서 쿠릴열도와 사할린 남부지역도 점령했다. 소련 지도자 스탈린은 이어서 ‘국가방위위원회 결정 No.9898호’를 통해 일본군 포로 약 50만 명을 소련 영내로 이송하여 강제노동에 동원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서방측의 지원 없이 국내경제를 재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소련으로서는 2차대전에서 상실한 노동력을 강제 동원으로 보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일본군 포로들을 속속 하바롭스크에 집결시키고 화물열차에 태워 노동 현장으로 이송했다. 일본군 포로들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몽골 등 소련 위성국에 노동력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억류되어 혹한과 기아, 전염병과 싸우면서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최근 조사에서는 억류자가 약 61만1000 명, 이 가운데 10%에 이르는 약 6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억류 기간은 통산 3~4년이었다. 특히 시베리아에서 사망자가 급증했다. 이 점에서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일본군 포로는 운이 좋았던 셈이다.
키르기스스탄의 일본군 포로 125명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고 전원 귀국길에 오를 수가 있었다. 1956년 12월 12일, 일소공동선언이 발효되어 양국 간의 국교회복이 이뤄진 후에야 비로소 강제 억류는 종료됐다.
소련이 해체된 뒤 러시아 옐친 대통령은 1993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강제 억류는) 전체주의에 의한 범죄이며 비인도적인 행위였다”라며 사죄의 뜻을 밝혔다.
자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일본
1868년 메이지유신에서 시작하여 1945년 태평양전쟁 패망에 이르기까지 77년간을 국민주권의 관점에서 조망해 보면, 일본은 대만침공에서 시작하여 미국과의 태평양전쟁까지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는 침략전쟁으로 일관했다.
특히 일본이 무모하게 미국과 벌인 태평양전쟁 결과는 참혹했다. 미군의 도쿄공습과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국토는 초토화가 되었고 약 310만 명의 전몰자가 발생했다.
전쟁 주범 도조 히데키는 병사들에게 적의 포로가 되는 것을 금지하고 “최후에는 깔끔하게 옥쇄하여 황국 군인정신을 발휘하라”며 옥쇄를 강요하며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격전지 사이판 이오지마 전투 등지에서 옥쇄를 선택한 사망자 수는 무려 약 11만6000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전범재판은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가 되었다. 중국의 장제스는 상하이 재판에서 중국주둔 일본군 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를 무죄 판결로 석방했다. 미국은 히로히토 천황에게는 사회 대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해서 불소추 결정을 내렸고, 세균전 부대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에게는 인체실험 자료를 미군 측에 넘기는 조건으로 소추를 면제했다. 기시 노부스케 등 A급 전범 17명은 기소 면제로 석방되었다. 단 7명만 사형이 집행되었을 뿐이다.
일본 국민 개개인은 근면, 성실하고 매우 능력 있는 민족이다. 반면에 일본이란 국가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고 침략적이며 고립 지향적인 선택을 해왔다. 게다가 자기 국민에게는 무책임했다. 한마디로 “국민은 우수한데 국가는 열등했다”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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