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10년 만에 신작 ‘불란서 금고’…“출발점은 신구였다”

노정연 기자 2026. 2. 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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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신구 선생님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좋았어요. ‘왜 나는 저분을 내 연극에서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떻게든 선생님을 무대로 모실 수 있는 작품을 써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장진 감독이 10일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불란서 금고’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진 감독이 10년 만에 신작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장 감독은 1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연극 <불란서 금고: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 제작발표회에서 이 작품의 출발점에 배우 신구가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연극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지만 마음처럼 써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게 돼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두려움도 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장진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맡은 <불란서 금고>는 그가 2015년 연극 <꽃의 비밀> 이후 약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희곡이다.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장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오랜만에 특유의 언어유희와 리듬이 살아있는 ‘장진식 블랙 코미디’를 선보인다.

이야기의 배경은 은행 건물 지하, ‘밤 12시 모든 전기가 꺼지면 금고를 연다’는 규칙 아래 모인 다섯 인물의 욕망이 충돌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배우 신구를 비롯해 성지루, 장현성·김한결, 정영주·장영남, 최영준·주종혁, 김슬기·금새록, 조달환·안두호 등 총 12명의 배우가 개성 강한 코미디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장 감독은 “처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도 몰랐다”며 “신구 선생님의 음성과 억양을 떠올리며 만든 첫 대사 하나로 출발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시놉시스 없이 쓰다 보니 그날그날의 꿈자리가 작품의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고 이야기가 완성된 과정을 설명했다.

장 감독은 대본을 완성하자마자 가장 먼저 신구에게 건넸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중순, 대본을 탈고한 바로 다음 날 신구가 좋아하는 평양냉면 식당에서였다. 그는 “재밌게 봤다고만 하시고 답을 안 주셨는데, 10월 초 대학로 중국 식당에서 고량주 한두 잔 하시더니 ‘하자!’고 말씀하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배우 신구가 10일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불란서 금고’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구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게 아닌가 싶다”고 웃으며 “막상 연습을 해보니 극복하기 힘든 점도 있고, 작품 해석에서도 어려움이 있어 노욕이 아니었나 고민한 순간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는 “대본이 정말 재미있었고 많이 웃었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 작품에서 신구는 시각 대신 감각으로 상황을 읽어내는 전설적인 금고털이 기술자, ‘맹인’ 역을 맡았다. 장진 감독과는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2005), <거룩한 계보>(2006) 등을 통해 호흡을 맞춘 바 있지만, 연극 무대에서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1936년생으로 올해 90세인 신구는 출연을 승낙했을 당시 자신이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상태라 고민했다고 한다. 집 안에서 걷기 연습부터 시작해 몇 달간 몸을 만들었고, 장 감독에게 “이 작품이 내가 살아 있는 이유”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배우 신구가 10일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불란서 금고’ 제작발표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장차·파크컴퍼니 제공

신구는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 여러 장애가 오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극복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살아 있으니 연기를 하는 것”이라며 “연기는 나에게 밥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지난해 12월 선배 이순재를 떠나보낸 신구는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가 됐다. 그는 “얼마 전에 내가 형님이라고 불렀던 이순재 씨가 돌아가셔서 이제는 위로 모실 분이 안 계셔 아쉽기 짝이 없다”며 “그래도 살아 있고 숨을 쉬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서 해보려고 한다”고 각오를 전했다.

10일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불란서 금고’ 제작발표회에서 출연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김한결, 장현성, 장영남, 정영주, 장진 감독, 신구, 성지루, 주종혁, 최영준, 김슬기, 금새록, 안두호, 조달환. 장차·파크컴버니 제공

이날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배우들은 신구와 함께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움과 깊은 울림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신구와 함께 맹인 역으로 더블 캐스팅된 성지루는 신구를 평소 아버지라고 부른다며 “같은 역을 맡게 돼 부담도 되지만 아버지와 같은 무대에서 같은 역할을 하게 돼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라고 했다. 배우 장현성 역시 “불필요한 걸 덜어낸 진짜 ‘결정체’ 같은 모습을 뵙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다”며 대배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장 감독은 작품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앞으로 이어질 신구 선생님의 수많은 작품 중 하나로 남길 바란다”며 선생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고 있다는 소망을 전했다. 연극 <불란서 금고>는 3월 7일부터 5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공연된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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