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만드는 CJ ENM이 호빵으로 'IP 매출' 굽는 법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2. 11. 09:26

흔히 콘텐츠 IP(지식재산권)는 비즈니스의 씨앗이라고 한다. 잘 키우기만 하면 소설 하나로도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굿즈, OST, 전시까지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미디어 업계, 최근에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까지 IP 창작과 활용에 방점을 찍은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 콘텐츠 IP 거래 현황조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콘텐츠 IP 산업 매출액은 약 47조7427억원으로, 전체 콘텐츠 산업(162조8000억원)의 29.3%를 차지했다. 매출 구조를 살펴보면 외부 IP를 가져와 2차 저작물을 제작하는 '타사 IP 활용'(49.9%)과 단순 라이선스 거래(35.9%) 비중이 높았으며, 자체 IP 확장은 14.2%에 그쳤다. 단순한 IP 판매나 검증된 원천 IP를 이종 장르와 결합한 재생산은 활발하지만, 기획 초기부터 IP를 확장하는 시도는 미진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IP 확장을 통한 부가사업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대표 IP인 디즈니는 2024년 매출에서 콘텐츠 자체 매출의 비중은 약 46%에 불과하며, 테마파크 산업이 35%, 기타 연관 산업이 17%를 차지했다. 구축된 세계관과 캐릭터를 기반으로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머천다이징(MD), 테마파크 등 여러 비즈니스를 뒤이어 전개한 결과, IP가 단일 콘텐츠를 넘어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계로 성장한 사례다. 이에 한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머니투데이방송 MTN에 "디즈니는 IP팀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부가 IP를 사전에 개발하는 걸로 알고 있다. 콘텐츠가 성공한 후 후속 IP를 만들기 시작하는 대부분의 회사들과 출발점이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전반의 IP 확장 비즈니스는 아직 미진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지만, 그렇다고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CJ ENM(035760)은 한 가지 IP를 공간, 캐릭터, 요식 사업 등 다양한 경로로 발전시키며 국내 IP 확장 비즈니스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신드롬급 인기를 모았던 자회사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는 국내 및 글로벌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며, 극 중 등장한 '망운록'을 비롯해 주요 소품을 전시하고 세계관을 반영한 굿즈를 판매했다. 서울 팝업 스토어는 오픈 초기부터 일부 품목이 완판됐으며, 일본과 대만을 시작으로 일본 오사카, 후쿠오카에서도 팝업 스토어가 열릴 예정이다. 드라마 IP와 연계해 주연 임윤아의 팬미팅('폭군의 셰프' 윤아 드라마 팬미팅)을 요코하마, 마카오, 호찌민, 타이베이, 방콕, 서울에서 개최했으며, 팬들의 아쉬움을 달랠 대본과 포토 에세이가 출간됐다.
과거로 타임슬립한 셰프와 절대 미각 소유자 왕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의 콘셉트에 맞춰 다양한 F&B(식음료)도 출시됐다. 고추장 버터 비빔밥, 시금치 페스토 된장 파스타 등 극 중 음식을 실제로 맛볼 수 있는 6종의 밀키트를 선보였고, 극 중 조선식 마카롱을 연상케 하는 뚜레쥬르의 쌀, 흑임자 맛 '마크론'도 호응을 얻었다. 드라마 콘셉트로 꾸민 팝업 레스토랑은 참여자 경쟁률이 무려 1200:1을 넘겼고,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은 드라마의 요리 총괄 자문을 맡았던 신종철 총주방장이 기획한 '대령숙수' 프로모션을 공개했다. 코스 대부분이 드라마에 등장한 요리들로 구성돼 작품을 한 번 더 맛보는 계기가 됐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외에도 쿠킹 클래스, OST, 굿즈 펀딩 등 '폭군의 셰프' IP를 기반으로 13개 이상의 사업이 진행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태풍상사'는 서울, 대만, 일본(도쿄, 후쿠오카, 나고야, 오사카) 등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고, 주연 이준호의 팬미팅('태풍상사' 드라마 팬미팅 위드 이준호)이 도쿄, 타이베이, 마카오, 방콕에서 열렸다. 롯데웰푸드와 협업해 '태풍상사' 회사 로고를 제품 포장지에 활용한 '기린호빵' 4종도 주목받았다. 드라마 속에서 기린호빵은 주인공이 아버지를 떠올리는 추억의 매개체로 활용됐는데, 이 장면을 떠올릴 수 있도록 제품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담긴 호빵'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 외에도 텀블러, 핸드타월 등의 굿즈가 출시돼 애청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이처럼 CJ ENM은 유통, 식품, 방송에 이르는 다양한 계열사와 글로벌 인프라를 활용해 콘텐츠 IP를 다각도로 활용하고 있다. CJ ENM 관계자는 "글로벌 IP 기업처럼 CJ ENM 역시 '글로벌 IP 파워하우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IP 확장 전담 부서를 두고 콘텐츠의 성격에 맞게 유기적으로 부가 IP를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CJ ENM은 지금과 같은 IP 활용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IP 주권'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디즈니+에 이어 올해 초 WBD의 OTT인 HBO Max(홍콩, 대만,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17개 지역)에 OTT 자회사 티빙 브랜드관을 론칭했는데, 이번 협약은 단순한 콘텐츠 협력을 넘어 티빙이라는 플랫폼까지 동반 진출하며 K콘텐츠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했다는 데에서 의미가 크다. 열심히 만든 콘텐츠의 판권을 글로벌 OTT에 넘겨주는 일 없이 티빙을 통해 서비스하게 된 것이다. 관계자는 "'IP 주권'을 확보하고 있으면 콘텐츠가 성공했을 때 굿즈, OST, 팝업 스토어 등 다양한 부가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판권을 넘기면 흥행해도 남 좋은 일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CJ ENM이 제작하고 HBO Max 내 티빙관에서 공개하는 구조를 구축하게 되면 해외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IP 경쟁력은 '얼마나 IP의 구조와 확장 전략을 치밀하게 설계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획 단계부터 세계관과 캐릭터, 확장 가능성을 함께 구상하고, 그 권리를 지켜내는 것. IP를 단발성 흥행이 아닌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쌓일 때 K콘텐츠는 또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진화할 수 있다. 또 이를 위해선 제작사가 IP를 소유할 수 있는 계약 관행과 원천 IP의 해외 유통 과정에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제 정비 등 제도적 뒷받침도 병행돼야 한다. K콘텐츠의 다음 성장은 더 많은 히트작만큼이나, 히트 이후를 설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