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기준 금리 낮출 수 있다는 미 연준 의장 지명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차기 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여한 ‘금리 인하’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일까, 그가 과거 “인공지능(AI) 기술 덕에 미국이 금리를 낮출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 주목받고 있다.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면 공급이 많아지게 된다. 이로 인해 물가 상승이 억제되면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게 워시의 주장이다.
반면 미국의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생산성 향상이 실제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지금 시점에서 이를 근거로 통화 정책을 펼치기에는 관련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올해 미국 통화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할 이른바 ‘워시 모델’에 대한 검증 필요성이 연준 의장으로 인준되기 전부터 부각되고 있다.

◇AI가 금리 인하 가능하게 한다는 워시
워시 지명자는 연준 의장 지명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하게 요구해 온 ‘금리 인하’를 실현할 핵심 무기로 AI를 내세웠다. 그는 지난해 11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AI가 강력한 물가 상승 둔화(디스인플레이션)의 요인이 돼 생산성을 높이고 미국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연준이 금리 인하에 더 전향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작년 말 한 인터뷰에서도 AI에 대해 ‘우리 세대가 경험할 가장 큰 생산성 향상의 물결’이라고 표현했다.
AI가 산업 현장에 보급되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렇게 늘어난 공급량 덕에 물가 상승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 AI 덕분에 물건이 흔해지면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는 AI 도입이 노동 생산성을 높여, 물가 급등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임금 상승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끌어낼 것이라는데 판돈을 걸고 있다”며 “워시 지명자는 백악관의 이 같은 전략에 동조하며,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워시 지명자가 1990년대 후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이 컴퓨터와 인터넷 등 IT 혁명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논리로 저금리를 유지했던 사례를 재현하려 한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그린스펀 전 의장의 임기 초반인 1980년대 후반 미국 기준 금리는 9%를 넘나들었는데, 임기 후반기인 2000년대 초에는 금리가 1%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저금리로 미국 경제는 유례없는 장기 호황을 맞았다.
워시 지명자는 현재 3.50~3.75% 수준인 미국 기준 금리가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기준’이라며,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통해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그는 연준의 자산 규모를 줄여 유동성을 관리하는 해법도 병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학자들 “AI 단기적 효과는 제한적” 반박
하지만 워시 지명자의 생각에 대해 미 경제학계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박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국 시카고대 클라크 금융시장센터가 경제학자 4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56%는 “AI 열풍이 당분간 금리 결정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경제학자들은 단기적으로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지출하게 되는 자본과 전력 수요 증가가 오히려 물가 상승을 촉발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필립 제퍼슨 연준 부의장은 과거 “기업들이 AI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설비나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출을 늘리는 것처럼 AI 도입이 단기적으로는 수요를 공급보다 더 많이 증가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어느 주장이 옳은지는 AI가 실제 미국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 지표를 얼마나 빨리, 유의미하게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각종 생산성 지표가 눈에 띄게 좋아지면 워시의 주장이 선견지명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반대로 생산성 개선이 없는데 금리만 내릴 경우 그가 물가 상승만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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