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상자·현금 봉투···설 앞두고 매서운 추위 속 평범한 시민들의 ‘익명 기부’ 눈길
올 설도 배 30상자 익명으로 전달
신안동서는 현금 6만6천원 기탁
취약계층 명절 꾸러미로 사

설 명절을 앞두고 광주 곳곳에서 얼굴 없는 기부 천사들의 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광산구 하남동에서는 익명의 독지가가 배 30상자를 동 행정복지센터에 전달했고, 북구 신안동에서도 한 시민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현금 6만6천원을 기부하는 등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평범한 시민들이 조용히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있다.
설 연휴를 닷새 앞둔 지난 9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하남동행정복지센터에 배 30상자가 배달됐다. 배달 송장에는 이름도, 연락처도 없었다. 메시지란에만 “올 설 명절에도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 기쁘다”는 짧은 문장만 남아 있었다.
상자를 확인한 직원들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매년 명절마다 하남동에 조용한 온기를 전하는 ‘얼굴 없는 천사’였다.
직원들은 혹여 다른 기부자가 보낸 물품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확인 절차에 나섰다. 관내 주요 기부자들에게도 수소문했지만 “본인이 보낸 것이 아니다“는 답만 돌아왔다. 직원들은 결국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얼굴 없는 천사’가 다녀갔음을 확신했다.
채명순 하남동 맞춤형복지2팀장은 “매년 설과 추석을 앞두고 과일이나 쌀을 익명으로 보내주시는 분은 하남동의 ‘얼굴 없는 천사’로 불리는 한 분뿐”이라며 “이번에도 배송 메시지를 보는 순간 ‘아, 또 오셨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짐작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전달된 배 30상자는 독거 노인 등 돌봄이 필요한 가구에 고루 전달됐다. 일부 어르신들은 연락을 받고 직원이 방문하기도 전에 직접 행정복지센터를 찾아와 배 상자를 받아갈 만큼 반가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이 “명절 후원으로 들어온 배”라고 설명하자, 한 어르신은 “불경기임에도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줘서 너무 고맙다. 이번 명절도 잘 보내겠다”며 웃음으로 화답했다고 한다.
하남동의 이 ‘얼굴 없는 천사’의 나눔은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독지가는 2011년 2월 쌀 20㎏ 35포대 기부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15년 동안 총 28차례에 걸쳐 명절 나눔을 이어왔다. 이후 포도, 사과, 바나나, 천혜향, 샤인머스캣 등 명절을 대표하는 과일류를 주로 보내왔다.
그는 지난해 10월 추석 명절에도 배 35상자를 동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조용히 내려놓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름도, 얼굴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명절마다 같은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는 나눔은 이제 하남동 직원과 주민들에게 ‘명절이 왔다는 신호’가 됐다.
하남동 직원들은 익명 기부를 원하는 독지가의 뜻을 존중해 일부러 신원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 대신 매년 명절이 되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리고 있다.
이상윤 하남동장은 “매년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묵묵히 나눔을 실천해 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며 “이웃 모두가 따뜻한 설 명절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잘 전달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오전에는 광주 북구 신안동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익명의 시민이 기부한 사례가 알려졌다. 이날 50대 남성은 기부 의사를 밝히며 현금 봉투를 건넸다. 직원이 이름과 연락처를 묻자 “‘신안동 말바우’로만 해달라”며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봉투 안에는 현금 6만6천원이 들어 있었다.
신안동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봉투만 건네고 가셨다”며 “설 명절을 앞두고 접수된 첫 익명 기부였다”고 전했다. 이 기부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1인 가구·취약계층 대상 떡국·한과 등 명절 꾸러미 나눔에 사용될 예정이다.
신안동 관계자는 또 “신안동에서도 1년에 3~4건 정도는 이렇게 이름을 밝히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며 “명절을 앞두고 이웃을 먼저 떠올려 주신 마음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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