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 이서진에서 '투명인간' 정해인까지…인종차별일까? [올댓체크]

김나연 2026. 2. 1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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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중요한 시대, 역설적으로 언론은 소통을 게을리한다는 점에 착안해 MBN디지털뉴스부가 '올댓체크' 코너를 운영합니다. '올댓체크'에서는 기사 댓글을 통해 또 다른 정보와 지식, 관점을 제시합니다. 모든 댓글을 꼼꼼히 읽어보고 기존 다뤄진 기사 너머 주요한 이슈를 한 번 더 짚어보겠습니다.
정해인, 밀라노 패션쇼서 포착된 '불편한 모습'

배우 이서진(왼쪽)과 정해인 / 사진=인스타그램 @hook_entertainment, 연합뉴스

최근 배우 정해인이 해외 공식 석상에서 겪은 한 장면을 두고 온라인이 뜨겁게 갈라졌습니다. 지난달 남성 패션잡지 지큐(GQ)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영상에는, 밀라노에서 열린 돌체앤가바나 패션쇼 현장에서 정해인이 양옆의 다리를 벌린 남성들 사이에서 몸을 움츠린 채 불편해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영상 출처: 인스타그램 @gq


미국 가수 벤슨 분과 미국에서 성장한 터키 배우 케렘 버신은 정해인을 사이에 두고 수십 초간 대화를 이어갔고, 정해인은 대화에 끼지 못한 채 경직된 표정으로 앞만 응시했습니다.


논란은 게시물 설명으로 더욱 불이 붙었습니다. 정해인이 정중앙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큐(GQ)는 양옆 두 사람의 계정만 태그하며 ‘누가 더 잘 입었느냐(Who wore it better?)’는 문구를 달았습니다.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선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는 주장과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박이 맞섰습니다.

한국 스타 ‘차별 논란’ 잔혹사

(왼쪽) 엘르 UK가 오른쪽에 있는 로제를 잘라낸 채 올린 게시물 (오른쪽) 가수 찰리 XCX가 올린 사진 속에서 음영 처리된 로제 / 사진=엘르 UK, 인스타그램 @charlie_xcx

이 같은 논란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블랙핑크 로제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생로랑 패션쇼에 생로랑 글로벌 앰배서더 자격으로 참석해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로제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찰리 XCX, 모델 헤일리 비버 등과 함께 포즈를 취했지만, 엘르 UK는 로제만 잘린 단체 사진을 SNS에 게시해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은 찰리 XCX는 로제만 음영 처리된 사진을 올려 논란이 더 커졌습니다.
사진=tvN 방송화면 캡처


2022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할리우드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가 사진 촬영을 위해 이동하던 중, 배우 이서진에게 갑작스럽게 핸드백을 맡기는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당시 이서진은 "백을 잠시 갖고 있어 달라고…내가 누군지 알고 맡긴 건지"라며 황당함을 드러냈고, 커티스는 사진 촬영 후 별다른 인사 없이 가방을 챙겨 갔습니다.

영상=X 갈무리


이 외에도 202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소녀시대 윤아가 포즈를 취하려는 순간, 백인 여성 경호원이 팔로 이를 가로막으며 안쪽으로 들어갈 것을 재촉하는 장면이 포착돼 논란이 일었습니다. 2022년 같은 영화제에서는 한 프랑스 뷰티 인플루언서가 가수 아이유의 어깨를 밀치고 지나가며, 아이유가 휘청거릴 정도였음에도 별다른 사과 없이 자리를 떠나는 모습이 영상에 담기기도 했습니다.

일상 속 미묘한 공격, '마이크로어그레션'이란?

이처럼 한국 스타들이 해외 현장에서 겪은 ‘미묘한 장면’들은 매번 같은 질문을 남겼습니다. “인종차별일까, 아니면 단순한 해프닝일까?”

직접적인 폭력이나 노골적인 혐오 표현은 없지만, 상대에게 불편함과 소외감을 남기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는 개념이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입니다. ‘아주 작은’을 뜻하는 ‘micro’와 ‘공격’을 의미하는 ‘aggression’의 합성어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차별 행위를 뜻합니다.

이는 1970년대 미국 하버드대 정신과 의사 체스터 피어스가 흑인에 대한 언어적 차별과 모욕을 묘사하기 위해 만든 용어로, 이후 동양인,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전반으로 그 적용 범위가 확장됐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흑인이나 동양인이 버스 옆자리에 앉자 자리를 옮기거나, 식당에 빈자리가 많은데도 백인이 아닌 손님을 구석으로 안내하는 행동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고의’가 없으면 인종차별이 아닐까?

문제는 이들 사례 모두에서 행위자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경황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우연인지, 인종적 위계에 대한 태도가 드러난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논란이 불거질 경우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해명이 뒤따르곤 합니다. 실제로 블랙핑크 로제를 둘러싼 논란 이후 엘르 UK는 "사진 크기 조정 과정에서 로제가 단체 사진에서 잘려 나갔다”며 “불쾌감을 줄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사과했습니다.

사진=SNS 갈무리


이번 정해인 사례 역시 일각에서는 인종차별이 아닌 단순한 ‘매너의 부재’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특히 벤슨 분은 과거 여러 차례 한국에 대한 호감을 공개적으로 밝혀 왔습니다. 2022년 한국을 방문해 한강에서 버스킹을 진행했고, 이후 다시 한국을 찾아 ‘I ♥ Korea’ 문구가 적힌 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된 해당 패션쇼 현장에서는 정해인을 직접 약 1분간 직접 인터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악의보다 무지에서 비롯되는 차별”

한국외국어대학교 Culture & Technology 융합대학장을 맡고 있는 임대근 교수(한국영화학회장)는 “벤슨 분의 경우 그동안의 맥락을 보아 고의적인 행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마이크로 어그레션의 판단 기준이 ‘고의성’에만 있지는 않다고 지적합니다. 그보다는 행위가 일어난 사회적 맥락과 피해자가 겪는 영향이 중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임 교수는 “인종차별은 악의적인 의도보다는 무지나 감수성의 부재, 즉 무의식적 습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가해자에게 악의가 없었다고 해서 피해자가 겪은 배제와 모욕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정 행동이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당사자에게 모욕감을 주었다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인종차별로 해석될 수 있다”며 "많은 아시아 대중이 해당 장면을 불편하게 받아들였다면, 이미 인종과 위계에 관한 사회적 신호를 드러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자료


마이크로 어그레션의 또 다른 특징은 당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항의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문제를 제기해도 ‘피해의식’, ‘예민하다’, ‘유난스럽다’는 반응으로 되돌아오기 쉽습니다.

임 교수는 “의도와 무관하게 대중의 시선에 포착된 이 ‘불편함’을 곧바로 오해라고 치부하지 말고, 왜 문제적 장면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언어화해야 은폐된 차별 구조를 드러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복되는 논란,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러한 논란이 개별 사건을 넘어 ‘반복’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각 사건의 구체적 내막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종차별로 의심되는 장면들이 여러 한국 스타에게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문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윤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 ‘문화적 지체’가 존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는 제도적으로 노예제 등 인종차별을 금지해 왔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차별이 공격적이고 노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은연 중에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세계가 주목한 K-컬처, 높아진 위상만큼 선명해진 균열?

그래미 수상한 '골든' 작사·작곡가들 /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논란은 K-컬처의 성과가 커질수록 더욱 아이러니하게 다가옵니다.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끈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은 지난 2일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K-팝 역사상 최초의 그래미 수상입니다.

K-콘텐츠가 그래미의 문턱까지 넘어섰음에도, 해외 현장에서는 한국 스타들을 둘러싼 차별 논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이러한 논란은 K-콘텐츠의 위기라기보다는, 양적 팽창을 넘어 서구 사회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겪는 일종의 진통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재근 평론가 역시 “차별은 약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존 주류가 위협을 느낄 만큼 비주류가 강해졌을 때도 나타난다”며 “한류 스타들에 대한 차별 논란은 그만큼 K컬처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나연 디지털뉴스 기자 kim.nayeo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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