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증권시장 인식과 관심도[정창현의 북한읽기]

2026. 2. 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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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편집자주]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2025년 평양지하상점 봄철상품전시회의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넘으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만간 6000선을 넘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왔다. 북한도 세계 증권시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북한에는 증권시장이나 주식시장이 없다. 당연히 증권거래소도 없다. 북한의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주식회사가 아니라 국영회사이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과거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표방했던 국가들도 1980년대 이후 점진적으로 시장을 개방하고 주식시장 개설에 나섰지만 북한은 여전히 증권거래소가 없는 나라로 남아 있다.

주권과 채권이 기본형태인 자본증권에 대한 북한의 인식도 대단히 부정적이다. 북한은 증권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 집중의 기본 수단으로서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발생하여 변화·발전하여 왔다"며 "자본증권은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면서 산업부문에서 근로자들을 착취하여 얻은 리윤(이윤)을 재분배하는 착취의 수단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집어삼키고 지배하는 수단으로 되고 있다"라고 인식해 왔다.

또한 자본증권이 "한 나라의 국내적 범위를 벗어나 세계적 범위에로의 자본 수출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예속하고 지배하여 신식민주의적 략탈(약탈)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그 나라 근로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한 도구의 하나"로도 이용되고 있는 측면을 강조한다. 자본증권이 가지는 가치 증식의 측면보다 투기적 이용에 따른 부작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도 "단물을 빼먹을 만큼 빼먹고 빠져나가는" 투자자금이란 인식이 강했다. 이러한 인식 자체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해외 주식시장이나 증권투자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권에 개혁개방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자 1980년대 후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연구를 잘하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자본주의 국가 또는 시장경제를 도입한 국가들과 무역을 하는 조건에서 자본주의 시장과 세계경제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무역을 잘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1990년에는 "국제금융시장에 적극 진출하여 여러 가지 신용업무를 확대발전시키며 국제 금융시장의 시세변동에 맞게 기동적인 활동을 벌려 더 많은 외화를 벌어야 하겠습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무렵 해외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 방식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화 획득 차원에서 증권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후인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상하이를 방문 중 직접 증권거래소를 두 차례나 찾아 주가 변동 요인을 질문하는 등 증권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자 북한이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시장을 도입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북한에 증권시장 출현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왔다. 성급한 기대였다. 북한이 표방한 '우리식 사회주의' 틀 안에 주식시장 개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실무를 배우고 증권시장에 관심을 드러냈지만 어디까지나 '우리식 사회주의 경제'를 강화하기 위한 활용 차원의 접근이었다.

2012년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후에는 달라진 점이 있을까? 우선 눈에 띄는 점은 북한의 경제 분야 학술지에 실리는 증권 관련 논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개론적 수준이지만 증권의 법률적 특징부터 자본증권의 형태, 증권투자 위험, 증권투자에 영향을 주는 요인분석 등 관심 영역도 다양해졌다. 증권시장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보여준다.

특히 2014년에 출간된 <증권투자와 분석>(327쪽, 전광남 집필, 공업출판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평화경제연구소가 입수한 이 책은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북한이 자본주의 사회의 주식시장, 증권 거래 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북한의 금융분야 종사자들을 위해 발간한 '증권시장 안내서'다. 그런 만큼 증권과 증권 투자의 일반적 내용, 증권 발행 시장과 증권 거래 시장에서의 증권 거래 방법, 증권의 이론가격과 위험, 증권 투자의 기술 분석과 투자 방법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증권과 증권시장에 대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이해 수준을 잘 보여준다. 서문에 밝힌 책 출간 목적이 흥미롭다.

"금융부문의 일꾼들이 변화된 국제적 환경과 조건에 맞게 증권시장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여러 가지 금융업무를 확대발전시키며 시장공간을 잘 리용(이용)하여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써먹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이 책을 출판한다."

이 책은 증권시장이 자본 조달과 투자 수단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고, 광범한 사람들이 증권 거래에 참가하는 세계적 상황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시장만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시장에 적극 진출하여 자본주의를 크게 뜯어먹자면 증권시장을 옳게 리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해외 증권시장에 투자해 돈을 벌기 위해 증권시장을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증권투자를 위해 이 책은 회사분석, 재무분석 및 각 증권의 예상수익과 위험에 대한 계산 등 기본분석을 통해 투자 대상과 투자 시기를 정확히 선택할 것을 강조한다. 대단히 초보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학술지에 실리는 글도 비슷한 수준이다.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 분야 학술지인 <경제연구> 2020년 제1호에 실린 '증권투자 분석에서 인기지표의 이용'이라는 소논문에서도 "국제금융시장에 적극 진출해 여러 신용업무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증권 투자에서 시세 변동에 의한 이익 타산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란 원론적인 언급을 하는 데 그쳤다.

다만 '증권투자와 분석'이란 주제로 북한에서 단행본이 출간됐다는 점 자체가 흥미롭고, 일정한 인식변화를 엿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의 금융분야 종사자에 해당되고, 대다수 주민들은 증권시장 자체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코스피가 상승 출발한 지난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시황이 표시되어 있다. 2026.2.9 ⓒ 뉴스1 최지환 기자

최근 북한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활동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연구진이 AI기술을 활용해 국제 금 가격을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자동금융조작체계'(프로그램 거래의 북한식 용어)에 대한 관심도 나타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2023년 홈페이지를 통해 "거래 결심과 실행을 사람의 참가 없이 자동적으로 진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방법인 자동금융조작 방법이 출현해 많은 거래자들이 이용하고 있다"며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동금융조작을 이용하면 금융상품의 거래를 IT로 빠르게 실현해 시세 변화에 따르는 수많은 순간적인 투자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활동한 경험이 부족하고 전문가도 많지 않은 조건에서 AI를 활용해 단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증권, 주식시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과 실제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더구나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현재 공식적으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주식투자 등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이 증권시장에 관심을 드러낸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평양에 증권거래소 개설은 아직까지 요원한 일이다.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일단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면서 주식을 발행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기본적인 경제정책과 경제관리체계와 직결되어 있다.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자본시장 개방은 국가체제 개혁과 맞물려 있다. 북한 경제체제의 전면 개혁개방이 이뤄져야 증권거래소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 규모도 아직 거래소를 설치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해외 투자유치를 위해 합영·합작기업에 주식회사 형태가 정착되고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 경제제재가 풀리면 북한이 외국기업이 참여하는 주식회사를 만들어 중국이나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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