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플로깅하다 환경단체까지 만들었습니다 [전원생활 I 지구人터뷰]

윤혜준 기자 2026. 2.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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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비영리단체 ‘와이퍼스’ 황승용 이사장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2월호 기사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오염된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황승용 씨를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대기업 직원인 황승용 씨는 퇴근 후 플로깅을 시작해 환경 비영리단체 ‘와이퍼스’까지 설립했다. 직접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정부와 대기업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특별한 영웅이 아니어도 누구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하는 황씨를 만났다.
“평일엔 일을 해서, 주말만 인터뷰할 수 있어요.”

황승용 씨(40)가 전화기 너머로 기자에게 말했다. 그와 인터뷰 날짜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그는 소위 ‘N잡러’이기 때문이다. 평일엔 직장인으로 일하고, 주말엔 비영리 환경단체 와이퍼스의 이사장으로 활동한다.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빽빽한 일정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삶, 그 사이를 어렵사리 비집고 들어가 인터뷰 시간을 잡았다.

환경 비영리단체 ‘와이퍼스’ 황승용 이사장.

와이퍼스는 5년 전 황씨가 설립한 환경 비영리단체다.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환경단체들이 존재하기에, 이들에 비해서 ‘와이퍼스’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지구 닦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와이퍼스(WIPERTH)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을 중심으로 친환경 활동을 펼치는 환경단체다. 2020년 설립된 이래로 와이퍼스는 환경 분야에서 크고 작은 발자취를 남겨왔다. 5년 동안 플로깅 모임을 통해 수거한 쓰레기만 20t에 달하는데, 이는 20ℓ 종량제봉투 4000장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와이퍼스는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업과 정부를 향해 끊임없이 탄원서를 보내며 변화를 촉구해왔다. 지난해에는 국내 최초 ‘쓰레기 없는 마라톤’인 ‘무해런’을 성공시키며 주목받았다. 대중적 인지도는 다소 낮을지 몰라도, 와이퍼스는 환경 비영리단체 중에서도 실천력이 돋보이는 숨은 강자에 속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모든 일을 일궈낸 주역이 전문 활동가가 아닌, 대기업 관광 사업부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 황씨라는 점. 제법 무게감 있는 환경단체의 운영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그와 약속 시간을 잡는 게 쉽지 않았던 이유다.

평범한 직장인, 플로깅 단체를 만들다
“담배 필터의 90% 이상은 종이가 아니라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라는 플라스틱 소재예요.”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와이퍼스 사무실에서 황씨를 마주했다. 그가 작은 천 가방에서 담뱃갑, 플라스틱 컵 등을 주섬주섬 꺼냈다. 그러더니 기자에게 담배 꽁초를 보여주며 관련 지식을 하나둘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는 와이퍼스의 플로깅 모임을 시작하기 전, 이런 식으로 회원들에게 우리가 알아야 할 쓰레기 지식을 공유한다고 한다. 설명하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쓰레기 전문가’라 그가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는 어떤 계기로 쓰레기에 이토록 깊은 관심을 갖게 됐을까. 

“처음부터 환경 분야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에요. 인터넷에서 거북이 코에 빨대가 낀 사진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였지, 퇴근 후의 삶까지 할애할 정도로 기후 위기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는 못했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KBS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미국 출생의 라이언 히크먼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었죠. 라이언은 세 살 때부터 쓰레기를 줍고, 일곱 살에 재활용 회사를 세워 플라스틱 수백t을 수거해 수익금을 기부한 친구예요. 저와 똑같이 거북이 코에 빨대가 낀 사진을 봤는데, 저와 달리 환경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퇴근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황씨를 움직이게 했다. 플로깅을 결심한 건 당장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길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다녔던 그는 쓰레기를 주우며 처음으로 길바닥을 내려다보게 됐다. 길 위에 버려진 엄청난 쓰레기는 그에게 충격을 주었고, 이는 환경 분야로 시야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쓰레기를 줍는 게 문제가 아니라,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레 일상 속에서 제로웨이스트 삶을 실천하게 됐어요. 비건 식으로 식단을 바꾸고, 소비를 줄이고, 텀블러 이용을 일상화했어요.”

비건 식단을 유지하다 보니 자연스레 살이 빠져 총 11kg을 감량했다. 필요한 것만 사는 습관을 들이니 매월 50만 원이던 저축액이 월평균 200만 원으로 올랐다.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이 안겨준 여러 이점은 그가 환경 활동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됐다.

또 다른 원동력은 함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였다. 지인 세 명과 소소히 시작한 플로깅 모임이던 와이퍼스는 점차 규모가 커져 어느덧 누적 회원 1500명이 함께하는 플로깅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혼자 플로깅을 할 땐, 나태한 마음이 들어 그만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단체 대화방에 회원들이 올리는 쓰레기 수거 인증 사진을 보면 ‘그래 나도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며 자연스레 집 밖으로 나가 쓰레기를 줍게 되더라고요.” 

황씨는 모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활동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4년 전 와이퍼스를 법인으로 등록했다. 단체를 운영하기 위해선 매달 몇백만 원의 적자를 감수하고, 소중한 휴식 시간을 바쳐야 한다. 그럼에도 단체의 운영을 포기하지 않는 건 플로깅과 와이퍼스를 통해 얻는 심리적, 신체적 이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지구 닦는 황대리〉는 황승용 씨가 저술한 환경 에세이다. 퇴근 후 플로깅을 하며 인생이 완전히 바뀐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줍는 손은 성실하게, 목소리는 집요하게
회원들과 진행해온 쓰레기 수거 모임이 600회가 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황씨는 “쓰레기를 줍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말한다.

“쓰레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쓰레기를 주울 게 아니라,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야 해요. 그런데 플로깅은 봉사활동에 가깝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인 정부와 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부족하거든요.”

플로깅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그는 회원들과 함께 기업과 정부에 탄원서를 넣어왔다. 대표적인 게 2020년부터 진행한 ‘꽁초어택’이었다. 담배꽁초 11만 개를 수거해 KT&G 등 담배 제조사에 전달했다.

황씨와 와이퍼스 회원들이 수거한 담배꽁초. 양이 어마어마하다(사진 황승용 제공).

시민들은 담배 필터가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렇기에 담배 필터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담뱃갑에 명확히 표기하고, 제조사가 꽁초 수거 및 처리 비용을 부담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된 청원서를 동봉해 함께 보냈다.

작년 한 해 큰 주목을 받은 쓰레기 없는 마라톤, ‘무해런’을 기획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국내 3대 마라톤대회에서 매번 버려지는 일회용 컵만 최소 20만개 이상. 그는 대회가 끝난 뒤 쓰레기를 줍는 일보다, 애초에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무해런’에서 배출된 쓰레기는 대회용으로 제작한 현수막 단 한 장뿐이었다.

“무해런과 비슷한 규모로 일반적인 마라톤대회가 개최됐다면, 새로운 쓰레기 8천 개가 만들어졌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급수대에서 일회용 종이컵 대신 다회용 컵을 사용했고, 포토 월과 대회 행사 부스는 버려진 종이와 쇼핑백을 활용하며 쓰레기 배출량을 줄였어요.”

황씨가 2021년 환경부 장관상부터 시작해 다수의 상을 수상하고, 와이퍼스가 2025년엔 서울특별시 표창장까지 받은 건 결코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쓰레기를 줍는 성실함에 쓰레기 문제의 뿌리를 뽑겠다는 집요함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지구 닦는 사람들, 와이퍼스. 황씨가 회원들과 함께 닦아갈 지구는 10년 후 어떤 모습일까.

“미래에도 쓰레기가 완전히 없어지진 않겠죠. 그래도 서로 토닥토닥해주며 계속 쓰레기를 주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황승용 씨가 전하는 플로깅 노하우 세 가지]
‘버릴 곳’부터 확보하세요

의욕만 앞서 줍다가 쓰레기로 가득 찬 봉투 때문에 자칫 곤란해지기 쉽다. 오염된 쓰레기를 집까지 가져오긴 힘드니, 산책로 주변 공공 쓰레기통 위치를 파악해 버릴 곳을 미리 정한 후 플로깅을 하는 게 효율적이다. 

완벽한 분리배출에 대한 강박을 버리세요

길거리 쓰레기를 집에서처럼 완벽하게 세척·분리하려다 보면 금방 지친다. ‘길 위 쓰레기를 쓰레기통으로 옮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실천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자.

혼자보다 ‘함께’의 에너지를 빌리세요

누군가와 함께할 때 플로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법이다. 와이퍼스의 플로깅 모임에 참여해 다른 사람과 함께 쓰레기를 주워보자. 정기 플로깅 모임 일정은 와이퍼스 인스타그램(@wiperth_official)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부산·순천·경남 지부가 있으니 참고하자.

윤혜준 기자 I 사진 고승범(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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