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비 한 푼 안 주고 탄생한 페블비치의 비밀들[골프 트리비아]
설계 경험 전무한 아마골퍼 2명이 디자인
로고 속 나무는 ‘외로운 사이프러스’
톰 왓슨 한 마디에 매일 저녁 백파이프 연주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에 위치한 페블비치 링크스는 ‘신이 만든 코스’라 불린다. 바로 옆에 태평양이 넘실대고 매 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근처의 스파이글래스힐, 스패니시베이 링크스 등과 함께 전 세계 골퍼들이 평생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코스로 꼽는 곳이다. 페블비치 링크스에선 12일부터 나흘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이 열린다.
페블비치 링크스는 1919년 개장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스가 됐지만 처음엔 단지 땅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골프장을 만들었을 뿐이다. 1880년 퍼시픽 임프루브먼트 컴퍼니(PIC)라는 회사가 이곳에 리조트 호텔인 델몬테를 세웠는데, 창립 오너 4명이 모두 죽자 후손들은 회사 자산을 매각한 뒤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후손들은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사무엘 핀리 브라운 모스를 고용했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스 부호를 발명한 사무엘 모스의 친척이다. 모스는 호텔을 비롯한 땅을 매각하려 했지만 해안가 부지 딱 한 곳밖에 팔지 못했다. 그러자 이곳을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목적으로 골프코스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페블비치 링크스다.
페블비치 링크스는 유명 설계가의 작품이 아니다. 설계 경험이 전혀 없었던 잭 네빌과 더글라스 그랜트라는 2명의 아마추어 골퍼가 디자인했다. 네빌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만을 따라 가능한 많은 홀을 만들었다. 우리에겐 약간의 상상력만 필요했을 뿐이다. 나무를 제거하고 잔디 씨앗을 뿌린 게 전부다.” 페블비치가 ‘신이 만든 코스’라고 불리는 이유다.
페블비치 링크스는 오늘날 막대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네빌과 그랜트는 설계비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당시에는 돈을 받는 코스 설계가는 프로 골퍼로 간주됐는데, 그들은 아마추어 골퍼로 남는 걸 선택한 것이다.
페블비치라는 명칭은 해변에 자갈(pebble)이 많은 데서 유래했다. 스파이글래스힐은 소설 ‘보물섬’ 중 보물을 묻은 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의 이름이다.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이곳을 자주 찾았다. 스패니시베이는 몬터레이 만을 찾으려는 스페인 탐험가들이 1769년 이곳에서 야영한 걸 기념한 것이다. 페블비치 로고 속 나무는 ‘외로운 사이프러스(The Lone Cypress)’다. 페블비치 일대를 일주하는 유료 도로인 ‘17마일 드라이브’에 있는 상징적인 나무다. 바닷가 바위 위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850년대부터 중국 이민자들은 페블비치 일대에 어촌을 형성했는데, 한 가족은 오늘날 페블비치 링크스 18번 홀 자리에서 가판대를 펼치고 전복을 팔았다.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은 1891년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전복을 산 뒤 당시에는 보기 드문 10달러 지폐(오늘날 약 300달러 가치)를 지불하려 했다. 그러자 주인은 “가짜 돈은 안 돼요. 진짜 돈으로 지불하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 중 제럴드 포드, 조지 HW 부시, 도널드 트럼프는 AT&T 페블비치 프로암에 참가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3년 스파이글래스힐 12번 홀에서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스패니시베이 해변에선 매일 밤 백파이브 연주가 펼쳐진다. 스패니시베이 링크스의 공동 설계가로 참여한 톰 왓슨이 스패니시베이 해변에 대해 “스코틀랜드와 너무 닮아서 백파이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말한 게 계기가 됐다.
페블비치 링크스의 18번 홀은 개장 당시 파4 홀이었지만 1922년 영국 코스 설계가 하버트 파울러가 파5로 마무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변경됐다. 페블비치에서 가장 유명한 홀로는 파3의 7번이 꼽힌다. 106야드에 불과하지만 그린 뒤로 태평양의 거대한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모습이 장관이다. 전 세계 유명 파3 홀을 선정할 때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7번 홀은 자칫 사라질 수도 있었다. 설계가 파울러가 “그 홀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건 인정하지만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건 무리다. 다른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페블비치는 제안을 따르지 않았다. 그 판단은 옳았다.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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