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조물 우리곡물] 언 땅에도 파릇한 싹…호밀 매력愛 40년이 훌쩍

조은별 기자 2026. 2.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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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물조물 우리곡물] 경북 영천 ‘하눅베이커리’
대학시절 호밀 종자 연구로 인연
무농약으로 재배 건강한 빵 보급
통곡물 직접 갈아 영양소 그대로
지역 색깔 담은 ‘작약꽃빵’ 선봬
“호밀밭 지키는 파수꾼 남고 싶어”
경북 영천 ‘하눅베이커리’의 류한욱 대표는 자신이 연구한 국산 호밀 종자로 빵을 만들어왔다.

장볼 때 원산지가 국산이면 믿음이 간다. 깨끗한 우리 땅에서 자란 신선한 작물이라는 안도감 때문이다. 호밀도 마찬가지! 우리 농가에서 재배한 국산 종자라면 선뜻 손이 가기 마련이다. 경북 영천시 화산면엔 이 믿음을 지키고자 한평생을 바쳐온 이가 있다. 우리 호밀 종자를 연구하다가 이젠 그 이삭으로 건강한 빵을 굽는 류한욱 ‘하눅베이커리’ 대표(63)다. 류 대표를 만나러 1월30일 그의 일터로 향했다.

동장군의 매서운 기세에도 밭엔 새싹이 돋아났다. 류 대표는 “겨울에 밭으로 초대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냐”고 물으며 “얼어붙은 땅에서도 이렇게 파릇파릇한 싹을 틔우는 게 호밀의 매력”이라고 미소 지었다. 만나자마자 호밀 이야기부터 꺼내는 모습에 진정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찾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산 호밀과 함께한 지도 벌써 40년 가까이 됐네요. 첫 만남은 대학 시절이었죠.”

류씨와 호밀의 인연은 한 대학교수의 권유로 시작됐다. 1981년 대학에 입학해 농학을 공부하던 그에게 교수가 호밀 종자를 연구해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단다. 쌀처럼 주식으로 먹는 작물도 있는데 동물 사료로 쓰던 곡물이라 마뜩잖았다. 하지만 호밀을 알아갈수록 점점 사명감이 생겼다. 류 대표는 “당시 국내엔 수입 호밀이 대부분이었다”며 “이 알곡은 유통과정에서 약품 처리를 해 발아율이 떨어지고 마음 놓고 먹기에도 부담되던 게 현실”이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안전한 국산 호밀 종자를 널리 전파해보겠다는 결심이 섰고 석사 학위까지 밟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곤 무농약으로 재배한 호밀을 세상에 알릴 방법을 궁리했다. 답은 누구나 간편하게 먹기 좋은 빵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영천 버스터미널 내부에 가게를 열고 구수한 향기를 퍼뜨렸다. 그의 열정을 알아본 건지 점차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한번 발을 들인 손님은 빵인데도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된다며 다시 가게를 찾을 정도였다.

류 대표는 “재료를 배합할 때 가장 먼저 신경 쓴 게 건강”이라며 “호밀은 섬유질이 풍부하고 글루텐이 거의 없어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에게도 좋다”고 설명했다.

하눅베이커리의 호밀빵엔 영양소도 그대로 담긴다. 도정하지 않은 통곡물을 직접 갈아 쓰는 덕분이다. 대표 상품 역시 본연의 풍미를 살린 천연 발효 빵이다. 주재료도 단순하다. 100% 호밀가루에 호밀로 만든 천연 발효종을 넣어 반죽한다. 이때 물 대신 호밀차까지 더해 향을 보탠다.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넣어 씹는 재미까지 살린다. 발효종이 지닌 풋풋하고 시큼한 향이 특징으로 잼을 곁들이면 호밀을 처음 접한 이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영양소가 그대로 담긴 호밀빵을 사러온 손님. 영천=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달콤한 간식류도 인기다. 저당 팥소를 넣은 통호밀 단팥빵, 한입에 쏙 들어오는 만주 과자, 커피나 차와 즐기기 좋은 스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류 대표는 “부드러운 식감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호밀가루를 넣는다”며 “특히 스콘은 온라인에서 첫 출시 사흘 만에 1600만원 매출을 올린 효자 상품”이라고 했다. 한 손님은 “입덧으로 음식을 통 못 먹던 친구에게 선물했는데 담백한 맛에 계속 손이 간다고 하더라”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빵 외에도 호밀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노력합니다. 고민 끝에 탄생한 게 음료였죠.”

빵 외에 고소한 호밀 미숫가루와 알곡 차도 별미다. 영천=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하눅베이커리에선 미숫가루와 차도 선보인다. 호밀을 250℃에서 40분 정도 볶아낸 고소한 미숫가루는 물·우유에 타 마시거나 시리얼을 먹을 때 같이 넣어도 된다. 차는 물에 넣고 끓여야 맛과 향이 잘 우러난다. 다 마신 뒤 숭늉 속 밥알처럼 남은 알곡을 꼭꼭 씹어 먹으면 포만감이 든다. 2020년엔 한 행사에서 이 둘을 묶어 선물용으로 내놨는데,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직접 소개하며 8분 만에 동났다.

영천 특산물인 작약꽃에서 착안한 ‘작약꽃빵’도 본격적으로 알린다. 강원 춘천 감자빵, 경북 경주 십원빵처럼 영천 하면 분홍빛 빵이 자연스레 떠오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경북에서 참깨농사를 짓는 농가와도 손잡는다. 제분 공장 한편에서 참기름을 짜 가게에서 함께 판매할 계획이다.

“호밀과 제 인생은 참 많이 닮았어요. 춥거나 더워도 우직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자라죠. 건강한 재료에서 건강한 빵이 나온다는 신념으로 국산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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