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9개월 만에 11석… 청년 엔지니어들, 日 정치 변화의 불 댕겼다


일본 중의원 선거를 10여 일 앞둔 지난달 27일 도쿄 번화가 시부야역 앞. 신생 정당 ‘팀 미라이(미래)’의 유세가 열렸다. 번듯한 연단 하나 없이 당의 상징색인 민트색 입간판만으로 꾸며진 단출한 유세장이지만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장발을 꽁지머리로 묶고 민트색 어깨띠를 두른 젊은 남성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분열을 부추겨 표를 얻는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를 적으로 돌려 공격하는 대신,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한다고 믿는 정책을 정직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인공지능(AI) 엔지니어 출신인 안노 다카히로(安野貴博·35) 팀 미라이 대표였다. 현직 참의원 의원인 안노의 지휘 속에 팀 미라이는 이번 선거에서 11석을 얻으며 원내 제6당에 올랐다. 후보자 평균 나이는 39.5세다. 안노와 마찬가지로 IT 업계 종사자 및 엔지니어 출신들이 다수 국회에 입성했다.
팀 미라이는 창당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고 기반도 미약해 비례 대표 후보만 냈다. 그러나 381만표(득표율 6.7%)를 얻으며 목표(5석)의 두 배 넘는 의석수를 얻는 의미있는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151만표를 얻어 비례 1석(안노 본인)의 원내 정당이 됐고, 정치적 영향력이 더 큰 중의원 선거에서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안노는 9일 X에 “나 홀로 정당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진짜 팀이 될 수 있게 돼 기쁘다. 기대에 실적으로 부응할 수 있도록, 전력으로 일하겠다”고 썼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팀 미라이의 작은 돌풍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압승 못지않게 주목하고 있다. 일본 정치의 대립축이 이념(보수 대 진보)에서 세대(청년 대 노년)로 재편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팀 미라이의 선장 안노는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을 거쳐 AI 스타트업 두 곳을 창업했고, SF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15만표를 얻어 5위에 올랐다. 당시 모인 자원봉사 조직 ‘팀 안노’를 기반으로 2025년 팀 미라이가 창당됐다.
안노는 평소 “일본이라는 국가의 운영 체제가 낡았으니 버그를 수정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정치를 ‘권력 투쟁’이 아닌 ‘시스템 설계’의 영역으로 본 그의 정치관은 당 운영 방식에도 투영됐다. 이번 선거에서 팀 미라이가 보인 모습은 기성 정당과 여러모로 달랐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타도 자민당’ 같은 거창한 정치 슬로건은 배제했다.
철저히 생활에 기반한 공약을 제시하면서도 포퓰리즘은 배격했다. 가령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던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 격) 문제와 관련해서도 팀 미라이는 감세를 공약한 거대 정당들과 달리 ‘10% 유지’를 주장했다. “소비세를 내리면 재정에 구멍이 뚫리기 때문에 사회보험료(건강보험·연금 등)를 먼저 줄여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안노는 유세장에서 직접 태블릿 PC 자료 화면을 보여주면서 “무차별적 감세는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저출생 대책에서도 팀 미라이는 현금 살포를 지양하는 대신 자녀 수에 따라 부모의 소득세율을 깎아주는 방식을 공약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가정이 아이가 많으면 세금을 덜 내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이 공약은 맞벌이 부부가 많은 도쿄 등 대도시권 유권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선거 운동 방식도 달랐다. 유세차로 다니는 대신 AI가 24시간 유권자 질문에 답하는 ‘AI 안노’를 가동했다. 겨울 입시철을 맞아 수험생들을 위해 고사장 주변에서는 유세를 자제한다는 방침을 밝혀 학부모들의 호감을 샀다. 도쿄 신주쿠와 시부야 등 번화가에서는 유세를 토크쇼처럼 진행해 자연스럽게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유튜브 라이브를 활용해 가벼운 분위기로 정책을 알렸다. 자체 개발한 온라인 정치자금 투명 공개 시스템 ‘미라이 마루미에’를 통해 모든 수입과 지출 내역을 공개했다. 마루미에는 투명한 병에 담긴 것으로 유명한 일본 미에현의 사케 브랜드다. 안노의 아내는 기묘한 재주로 어린이를 돕는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에 빗대 “내 남편을 도라에몽처럼 써달라”며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일본의 정치 상황이 팀 미라이의 바람을 이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밀려드는 외국인 물결에 불안해하면서 일본인 우선 정책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이 흐름을 타고 약진한 정당이 민족주의 노선을 추구한다는 평가 속에 이번 선거에서 15석을 얻은 참정당이다. 하지만 팀 미라이는 탈이념 행보 속에 “시스템을 바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호소했고, 2030세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성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에 반감을 가진 젊은 세대의 표심이 팀 미라이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 것”이라며 “자민당은 싫은데 기성 야당에도 표를 주기 싫은 유권자들이 팀 미라이를 선택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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