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도 공중에도 작품이… 큰스님의 쉼 없는 도전

김한수 기자 2026. 2. 1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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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경기도박물관 30주년 기념 ‘禪藝’전
경기도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개막식에서 성파 스님(앞줄 왼쪽 세번째)와 김동연 경기 지사(앞줄 왼쪽 네번째) 등이 옻칠 작품이 물 속에 떠있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 성파 스님은 옻칠의 뛰어난 방수, 방염, 방충 기능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수중 전시를 보여주고 있다./장경식 기자

87세의 성파(性坡) 스님은 여전히 현역이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宗正) 성파 스님의 작품전 ‘성파 선예(禪藝)-성파 스님의 예술 세계’가 10일 경기 용인 경기도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이 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전으로 마련된 전시.

총 150여 점을 선보이는 이 전시엔 작년 한 해 동안 제작한 옻칠 회화 작품이 무려 90여 점에 이른다. 불과 2년 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할 당시의 작품은 거의 없다. 평소 “나는 욕심이 대적(大賊)”이라는 말씀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창작열을 불태운 결과다. 또한 이번 전시는 성파 스님이 평생 통도사에 살면서 40여 년 동안 일궈온 자신의 예술 세계를 초기부터 현재까지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작품은 벽에도 걸려 있지만 물속에도 있고, 천장에도 매달려 있고, 하늘에서 드론에 매달려 공중 전시되기도 한다.

전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영겁(永劫)-아득하고 먼’ ‘물아불이(物我不二)-니가 내다’ ‘문자반야(文字般若)-글자 너머’ ‘일체유심조-마음대로’ 등이다. 한 수행자가 평생 공부하고 일하면서 일궈온 발자취다.

경기도박물관에서 개막한 '성파 선예'전에 나온 도자 불상. 1980년대 스님이 직접 구워 만든 작품들이다. /장경식 기자

전시장에서 먼저 관람객을 맞는 것은 도자기로 구운 불상들. 통도사 서운암 삼천불전(三千佛殿)에서 모셔온 30여 점의 불상이다. 이 불상은 스님이 도자기를 통해 예술에 첫발을 디딘 작품들. 1980년대 중반 통도사 주지에서 물러난 후 가마를 만들어 직접 구운 작품들이다. 10점의 목각을 본으로 만들어 구웠으나 굽는 과정과 얼굴을 그리면서 3000점이 모두 다른 얼굴을 갖게 됐다. 도자기 불상에서 이어진 16만 도자 대장경의 일부도 전시된다. 앞뒤로 판각된 해인사 8만대장경을 도자기에 한 면씩 구워 16만장이 됐다. 굽는 과정과 장경각을 지어 소장하기까지 22년이 걸린 대작이다. 삼천불상과 도자대장경이 서운암 바깥으로 나들이하는 것은 처음이다.

쪽물을 들인 종이[감지·紺紙]에 금으로 쓴 ‘반야심경’은 성파 스님이 서예와 회화로 나아가게 된 출발점이다. 감지 제조 전통이 끊어진 것을 안타까워한 스님은 1980년대부터 종이 제조에도 직접 뛰어들었고, 이후 산수화와 옻칠 회화로 이어졌다.

성파 스님 전시장엔 작품에서 배어나온 옻 향기가 그윽하다. 성파스님의 전시회 개막 후 관람객이 천장에 걸린 옻칠 염색 작품과 벽에 걸린 옻칠 회화 작품을 감상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장경식 기자

‘물아불이’ 전시실은 잠시 침묵 명상할 만한 곳이다. 물속에 떠 있는 옻칠 회화 작품에 조명이 비추니 마치 물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주변엔 삼천불전에서 모셔 온 불상들이 조용히 관람객을 맞는다.

스님은 이번 전시를 앞두고 ‘드론 공중 전시’를 회심의 역작으로 준비했었다. 항상 새로움에 도전해 온 스님은 몇 년 전 학원을 다니며 드론 조종 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그동안 서운암에서 드론을 띄워 사진을 촬영하곤 했던 그는 “에밀레종의 비천상(飛天像)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드론에 손수 쪽물을 들인 천 작품을 매달아 공중에 띄우려 했다. 연습까지 잘 마쳤지만 막상 개막식에선 기계 고장 때문에 실현하지 못했다. 스님은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성파 스님이 전시장 입구에서 기념 촬영했다. 뒤의 사진은 통도사 서운암에서 촬영한 모습. /뉴시스

이날 개막식은 김동연 경기 지사 등 정관계 인사뿐 아니라 불교계,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300석 식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김동연 지사는 “2년 전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 때 스님을 뵙고 ‘경기도가 서울보다 땅도 넓고 인구도 많다’며 전시를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많은 경기도민이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모신 지 꽤 됐는데 만날 때마다 늘 웃으신다”며 “그 웃음만으로도 모든 잡념을 떨치게 된다”고 했다.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은 스님과 1939년생 토끼띠 동갑이라는 인연을 소개하며 “어떻게 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분”이라고 했다.

평소 ‘통도사라는 문화의 보고(寶庫)에서 평생을 살다보니 배추가 소금물에 절여져 짠맛이 나듯 문화에 절여졌다’고 말하는 성파 스님은 이날 감사 인사에서 “예술은 발자국”이라고 했다. “예술이나 문화유산은 사람이 살다 간 발자국입니다. 발자국 남기려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삶을 통해 남은 것이 예술이고 문화유산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뭐든지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마음먹자”고 강조했다. “마음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마음먹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큰 일, 작은 일 가리지 말고 마음먹고 해보세요.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후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 이제부터 마음먹고 뭐든지 해보려 작정합니다.” 90대를 코앞에 둔 큰스님의 각오가 새로웠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무료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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