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인터뷰] 15억원 기부왕, 굳은살에 새긴 철학 “나눔이 곧 행복”

김진형 2026. 2. 1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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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수 한국타이어 춘천판매점 회장
춘천로타리클럽 등 지역 기부단체 설립
강원도사회공헌장·도 선행도민대상 수상
16살 이웃 소개로 춘천 펑크 수리점 취업
어음 부도·IMF·아내 투병 등 고비 겪어
한국타이어 본사 물건 선공급…재기 도움
강원대·춘천고 장기적 장학금 지원 약속
“이웃과 나누며 사는 삶, 성공한 인생”
▲ 임기수 한국타이어 춘천판매점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정호 기자

‘춘천 기부왕’이라 불리는 임기수(85) 한국타이어 춘천판매점 회장이 있다. 16살 무일푼 소년으로 춘천 땅을 밟아 낫 한 자루로 타이어를 깎아 팔던 소년은 이제 15억 원이 넘는 거액을 기부하며 지역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그는 춘천 기부문화의 산 역사이기도 하다. 춘천로타리클럽 등 지역의 대표 기부단체를 설립하고, 고향 세종시와 홍천 해밀학교 등에도 꾸준히 기부를 이어왔다. 춘천시나눔봉사단, 강원아너소사이어티 지역 대표 역임했으며 강원도사회공헌장, 강원도 선행도민대상을 수상하는 등 사무실에 가득찬 각종 상장과 공로패를 보고 난 뒤에는 그의 이력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는 직감이 들었다. 지난 달에도 강원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희망나눔 캠페인을 통해 1000만원을 기부하는 선행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은 곧 한국 현대사의 축약본이다. 전쟁 직후의 빈곤과 수차례의 부도 위기, 아내의 오랜 투병 생활까지, 굽이진 고비마다 일으켜 세운 것은 춘천 사람들이 보내준 따뜻한 온정이었다. 임 회장은 그저 “죽어서도 다 못 갚을 삶의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의 기부행위는 결코 돈을 많이 갖고 있어서 나누는 것이 아니다. 낡은 폴더폰을 고집하고 자식들에게는 결혼 자금조차 빌려주며 엄하게 가르치지만, 어려운 이웃의 소식에는 주저 없이 수백만 원의 연탄값을 내놓는다. 설 명절을 앞두고 있는 지금,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임기수 회장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몸소 실천으로 보여줬다.
▲ 3일 춘천 근화동 매장에서 임기수 한국타이어 춘천판매점 회장이 그동안 받았던 공로패를 배경으로 춘천중앙로타리클럽 개참패를 들어보이고 있다.

-타이어와 함께 70년을 보냈다. 그 시작이 궁금하다.

“1956년 7월 29일, 16살의 나이로 춘천에 왔다. 지금도 정확히 그날을 기억한다. 고향 충남 연기군에서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이웃 할머니의 소개로 빵구집(펑크 수리점)에 취업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춘천버스터미널에 취직이 돼 18살에 동업으로 사장을 맡게 됐다. 당시엔 타이어가 귀해 차들이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 남들이 잠든 밤에 낫과 대패를 들고 군용 타이어를 직접 깎았고, 구멍난 타이어 2개를 하나로 합친 ‘해방 타이어’를 만들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기술을 밤낮없이 연마한 덕분에 어린 나이에 땅을 살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긴 세월만큼이나 위기의 순간도 많았을 텐데.

“네 차례 정도 큰 고비가 있었다. 1979년에는 어음 부도로 캄캄한 절벽 앞에 서기도 했고, IMF 시절에는 가게가 경매에 넘어가기도 했다.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12년 동안 투병을 간호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주위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특히 한국타이어 본사에서 물건을 먼저 내어주며 도와준 덕분에 오늘날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나에게 기부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그때 받은 은혜를 갚는 당연한 도리이자 ‘삶의 빚’이다.”

-한창 일할 때는 하루 몇 시간 주무셨는지.

“잠이야 잤겠지만은 돈을 벌어야지 잠잘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빵꾸’를 때울 때마다 돈이 생겼으니. 바보같이 은행에다 돈도 안맡기고 집에다 보관한 적이 있는데, 친구놈들한테 도둑맞은 적도 있었다. 배신감도 들었다. 그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 그 사람들은 나만큼 어려운 일을 덜 겪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학생 유학도 보내주고, 명문대를 졸업해 잘 나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나중 문제다. 인사하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는 걸로 끝나는 것이고 잊어버린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만 15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집에서는 ‘자린고비’라고 들었다.

“막내에게는 유학자금도 안 보탰고, 자녀들에게 결혼 자금을 한 푼도 거저 주지 않았다. 모두 빌려준 뒤 3년 안에 갚게 했다. 부모 재산에 의지하면 사람은 망가지기 마련이다. 스스로 땀 흘려 번 돈이라야 그 가치를 알고 귀하게 쓴다. 대신 그 돈을 모아 곳곳에 장학재단을 세웠다. 배우지 못한 한을 품은 학생들이 마음껏 꿈을 펼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강원대와 춘천고 등에 장기적인 장학금 지원을 약속했다.”
▲ 임기수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호 기자

-회장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나눔의 가치는 무엇인가.

“고향은 부모님이 나를 낳아준 땅이고, 춘천은 나를 키워준 곳이다. 고향에도, 춘천에도 죽어서까지 빚을 갚아야 한다. 나를 이만큼 키워줬기에 그 은혜를 모른 척하고 뒤돌아서면 하늘에서 욕을 한다. 옛부터 부모가 잘못하면 자식들이 벌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께서도 친구 여럿 만들지 말고 ‘똑바른 놈’ 한 두놈만 만들라고 하셨다. 나눔은 곧 행복이다. 남에게 얻어먹으면 마음의 빚이 되지만, 베풀 때는 그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다. 경로당에 갈 때도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비싼 갈비를 혼자 먹는 것보다 이웃과 짜장면 한 그릇을 나누는 것이 훨씬 값진 삶이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정신도 건강해지고 삶의 활력이 생긴다. 얻어먹는 것을 좋아하는 삶은 결국 이웃을 잃게 만든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어려서 서당을 다녔지만, 나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다. 하지만 못 배웠다는 이유로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악바리처럼 버텼고, 나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원망하기보다 ‘너보다 잘 살아야겠다’는 오기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세상이 좋아졌지만 인간미는 예전만 못하다.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세상에 도와주지 않을 사람은 없다.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는다는 진리를 믿어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철학은 무엇인가.

“욕심이 없으면 바보 천치고, 과욕을 부리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 돈이 아닌 것을 과욕으로 챙기면 결국 후대가 벌을 받는다. 부모가 잘 살면 후대도 잘 먹고 잘 살아야 마땅한 조건인데도 그렇지 않은 경우를 이곳에서 많이 봤다. 갈비 혼자 먹어봤자 맛이 없다. 짜장면 나눠먹는 게 사람 사는 맛이다. 자기 능력껏 그늘진 곳을 보살피며 사는 것이 진정한 세상살이다. 이웃과 즐겁게 나누며 사는 삶이야말로 가장 성공한 인생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임 회장은 신문에서 연탄 지원이 절실한 소외계층의 소식을 접하자마자 사랑의열매 직원에게 말을 전했다.

“한 가구당 300장은 너무 적어. 가구당 500장은 되어야 따뜻하게 겨울을 나지 않겠나. 금액은 맞출 테니, 부족함 없이 바로 배달되도록 처리해라.”

임 회장은 자신의 철학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즉각 증명했다. 지금도 가게에 나와 직원들을 다그치고, 타이어를 돌보는 85세 노회장의 투박한 손에는 70년 타이어 인생의 굳은살과 함께, 춘천 시민들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김진형 기자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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