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대중매체 속 실록이야기 ⑩영화 ‘왕과 사는 남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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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1453년)으로 김종서와 황보인 등 조정의 원로들이 숙청을 당하고 수양대군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조선의 운명은 소용돌이쳤다.
"노산군이 일어나 서니, 세조가 엎드려 울면서 굳게 사양하였다. 노산군이 손으로 대보(옥새)를 잡아 세조에게 전해 주니, 세조가 더 사양하지 못하고 이를 받고는 오히려 엎드려 있으니(중략)주상(主上)을 높여 상왕(上王)으로 받들게 되었다.(세조실록1권, 세조 1년 윤6월 11일)" 이로써 15세의 단종은 삼촌에게 하릴없이 자리를 빼앗긴 채, 조선 역사상 가장 어린 상왕이 돼 수강궁(현 창경궁 일대)으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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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여파는 상왕 단종에게까지 미쳤다. 세조를 중심으로 한 공신 세력들은 단종 복위 운동의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단종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단종은 상왕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 보내지게 된다. 세조실록은 유배지의 구체 지명을 상세히 남기지 않았고, 후대에 ‘청령포’ 서사가 기억과 기록으로 덧씌워지며 확장된다. “단종 대왕께서 임금의 자리를 물려준 다음 해인 병자년(1456)에 영월 청령포에 옮겨 갔을 때는 마침 늦은 봄이었습니다. (중략) 깜빡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사육신(死六臣)이 꿈에 나타나서 마치 살았을 때와 같이 억울한 사정을 하소하였다고 합니다.(고종실록40권, 고종 37년 5월 11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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