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문화] 봉의산을 걷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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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다시 고향의 속도로 돌아온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몸이 기억하는 장소를 찾는다.
이 숲은 성취보다 지속을, 속도보다 균형을 먼저 생각한다.
봉의산의 신갈나무처럼, 자기 속도를 지켜도 괜찮은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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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다시 고향의 속도로 돌아온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몸이 기억하는 장소를 찾는다. 손끝과 발바닥, 숨결 속에 남아 있는 오래된 리듬, 잠시 잊고 있던 움직임을 되살리는 곳. 고향은 늘 그런 공간이다.
춘천은 사람의 삶을 재촉하지 않는 도시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호수가 있고, 숲이 있고, 폭포가 있다. 의암호의 물결은 하루를 재촉하지 않고, 햇빛에 반짝이며 천천히 움직인다. 전통시장은 여전히 말의 속도로 하루를 연다.
상인들의 발걸음과 손놀림은 느리지만, 서로 안부를 묻고 웃음을 건네는 속도가 따뜻하다. 도시 전체가,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삶의 리듬을 가르쳐준다. 이 도시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봉의산이다. 해발은 낮고 길은 짧다. 그래서 이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다녀올 수 있는 고향의 뒷산으로 남아 있다.
아침 햇살이 숲 사이로 스며들고, 흙냄새와 나뭇잎의 촉감이 발끝에 스며들 때,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숲이 안내하는 속도에 맞춰 걷는다. 느리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속도다.
봉의산 숲의 중심에는 신갈나무가 있다. 땅 위로 높아지기보다 먼저 땅속으로 뿌리를 깊게 내린다. 눈에 띄는 성장을 미루고, 보이지 않는 시간을 택한다. 바람과 눈보라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단단하게 준비하는 나무다.
신갈나무는 늘 늦게 숲의 중심이 되지만,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다른 나무들이 먼저 빛을 받더라도, 신갈나무는 자신의 리듬을 지킨다. 그 느림 속에서 숲 전체의 균형이 만들어진다.
신갈나무 숲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낙엽은 곧바로 성과가 되지 않고, 몇 해를 거쳐 토양이 된다. 그 토양 위에서 다음 세대가 준비된다. 이 숲은 성취보다 지속을, 속도보다 균형을 먼저 생각한다. 오히려 느림 속에서 삶의 깊이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봉의산을 걷다 보면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숨이 차면 멈춰도 되고, 생각이 길어지면 그대로 걸어도 된다. 발자국 하나하나가 땅에 스며들고, 숨결 하나하나가 숲과 어우러진다. 서두르지 않는 삶이 결코 뒤처지는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없이 보여준다.
춘천의 호수와 시장도 이 숲과 닮아 있다. 물결은 재촉하지 않고, 시장은 효율보다 안부를 먼저 묻는다. 이 도시는 ‘무엇을 더 할 것인가’보다 ‘지금 이 속도가 괜찮은가’를 먼저 묻는다. 설을 맞아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온 이 도시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삶으로 말해주던 곳이었다는 사실을.
봉의산의 신갈나무처럼, 자기 속도를 지켜도 괜찮은 고향. 조금 늦어도, 잠시 멈추어도, 삶은 여전히 흘러가고, 다음 세대는 그 속에서 준비된다. 춘천은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올해는, 이 속도로 살아도 괜찮겠느냐?”
그리고 우리는 그 대답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 도시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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