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숨졌는데 ‘중대재해법 1호’ 삼표 회장, 1심 무죄…“잘못된 판결 답습”

노동자 3명이 숨진 2022년 1월 삼표산업 채석장 매몰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중처법 시행 이후 그룹 총수가 기소된 ‘1호 사건’으로 주목받았지만, 법원이 실질적 오너의 책임을 외면한 채 현장 책임자들에게만 유죄를 선고해 중처법 제정 이전으로 회귀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 이영은 판사는 10일 중처법 위반으로 기소된 정 회장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종신 당시 삼표산업 대표이사, 임아무개 안전담당 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사고가 발생한 양주사업소에 근무했던 직원 4명에게만 징역형·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사고는 중처법 시행 이틀 뒤인 2022년 1월29일 경기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발생해 중처법 ‘1호 사건’이 됐다. 검찰은 삼표산업이 골재 채취량을 늘리기 위해 채석 과정에서 발생하는 석분토를 쌓아뒀던 야적장 하부를 채굴하다, 약해진 지반이 무너져 사고가 발생했다고 봤다. 검찰은 정 회장이 삼표산업의 안전보건 등 경영에 대해 수시로 보고받고 최종 결정권을 행사한 점 등을 들어 중처법의 실질적 경영책임자로 판단해 기소했다. 중처법은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경영책임자에게 종사자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해 노동자가 숨지는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이 판사는 중처법 제정 당시 국회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처법상 경영책임자는 원칙적으로 대표이사에 해당한다며, 정 회장이 경영책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정 회장이 삼표그룹의 부문별 정례보고 등에 참석하고 대표이사, 담당 임원으로부터 직접 보고받거나 지시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정 회장이 중처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구체적·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 회장이 경영책임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에 삼표산업 법인의 중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산안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표이사도 책임을 면했다. 이 전 대표는 애초 중처법 시행을 앞두고 양주사업소의 작업을 중단하라고 했다가, 생산량 압박 때문에 번복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바 있다. 야적장 토사 붕괴 조짐은 사고 발생 이전부터 감지됐는데, 이 전 대표는 사고 전날에도 양주사업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이 전 대표가 석분토 야적장 하부에서 채석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법령에 따른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했다거나 이를 방치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노동자 3명이 숨진 사고에 대한 책임을 야적된 석분토의 붕괴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적극적인 안전조치 없이 작업을 진행한 양주사업소장과 현장 책임자들에게만 사고의 책임을 물었다. 결국 노동자 안전보다는 생산량 증대에 관심이 있었던 경영진이 아니라 현장 책임자들만 처벌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경영진에 책임을 묻기 위해 중처법이 제정됐다는 점에서 이날 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는 “중처법·산안법은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각 주체별로 다양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법원이 이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장 책임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과거의 잘못된 판단을 답습한 것 같다”며 “현장의 위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책임도 안 진다는 인식을 강화시킨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논평을 통해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축소 해석하고 책임을 현장 관리자 수준으로 끌어내려, 중처법을 무력화하고 기업 총수들에게 집단적인 면죄부를 부여한 판결”이라며 “검찰은 즉각 항소해 이 위험한 판결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의정부지검 관계자는 “판결문을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송상호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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