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노조 '아틀라스 반발' 보도, 핵심 빠지고 노조혐오 남았다
[비평] "함께 망하자는 건지" "마지막 발악" 노조 요구 왜곡한 언론
핵심은 단협 준수 요구인데… 이재명 대통령도 러다이트 언급하며 확산
현대차지부 "대안 없이 들어오는 로봇, 기자들은 가만 있을 건가?"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노사 합의 없이는 단 1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밝힌 입장을 노조의 '떼쓰기' 또는 집단이기주의로 치부하는 보도가 양산되고 있다.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일제히 같은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사이 정작 노조의 실제 요구는 언론에서 지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의 출발점은 현대차의 'CES 2026' 아틀라스 공개였다. 현대차는 지난달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전시회에서 휴머노이드(인간형) 양산형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했다. 현대차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2028년까지 아틀라스를 연간 3만 대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대량 생산하겠다고도 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지난달 22일 '노사합의 없는 일방통행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현대차에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인공지능 로봇 투입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노사 합의 없는 신기술 도입은 단 1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런 입장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로봇과의 전면전' '로봇 거부' 프레임에서 보도됐다. 노조가 단체협약을 비롯한 노사합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는 핵심 맥락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1면 <현대차 노조, 로봇과 전면전 “공장에 단 1대도 못 들인다”> 기사 제목에서 '노사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노조의 핵심 요구를 지웠다. 다음날 사설 <이번엔 '로봇 반대', 혁신 싹 틀 때마다 막아 서는 나라>에선 “(아틀라스를 도입하면) 폭력 불법 파업도 없다”면서 노조 혐오 정서를 자극했다. 동아일보는 <현대차 노조 “로봇 1대도 못 들여”…함께 망하자는 건지> 사설을 냈다. 조선일보와 같은 그룹에 속한 TV조선의 경우 유튜브 자막뉴스 섬네일에 “현대차 노조 마지막 발악 시작됐다”란 자막을 달았다.


'신기술 도입시 노사 합의' 단협 준수 요구
이들 기사는 현대차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에 “신기계·기술의 도입, 신차종 개발 및 차종 투입, 작업 공정의 개선, 경영상 또는 기술상의 사정으로 인한 인력의 전환 배치, 재훈련 및 제반 사항은 계획 수립 즉시 조합에 통보하고 고용안정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한다”고 규정돼있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현대차 단체협약은 1990년대 말 신기술 도입 시 노사 '협의'하도록 했고, 이를 2000년대 들어 '합의'로 강화했다.
노사관계 전문가인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은 “AI를 일터에 도입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인간을 실제로 대체할 수 있는지조차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이럴수록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 당사자인 노조와 합의 없이는 도입할 수 없다는 요구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를 노조가 혁신을 거부하는 것처럼 비난하는 프레임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소장은 “노동자들과의 합의 없이 회사 뜻대로 로봇을 도입할 경우, AI가 노동자 감시와 통제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단지 노동자를 내쫓는 구실로 악용될 위험도 있다”며 “이 지점에서 노조의 견제와 정확한 요구 목소리를 듣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왜 대화 배제적인 프레임을 주장하는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달 5일 정부에 AI관련 정책 입안 시 '노동영향평가' 도입을 제안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당시 기자 간담회에서 양 위원장은 “노사 합의 없는 인공지능 투입은 일자리를 빠르게 파괴하고 극빈층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노동조합과 노동 현장의 변화에 대해서 합의 하에 진행해야 된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했다.

보수언론·정치권 중심 '대화 배제' 프레임 확산
정치권에서 노조 요구를 '변화 거부'로 규정하면서, 언론 보도의 주된 흐름도 이에 맞춰졌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3일 현대차지부를 향해 “21세기판 러다이트”이자 “로봇 쇄국”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를 구실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교섭권을 규정한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후퇴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서울시장 출마가 거론되는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23일 SNS에서 “반대 깃발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노조에 비판적인 입장을 냈다.
그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현대차지부를 겨냥해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며, 산업혁명 시기의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을 언급한 뒤 현대차지부와 러다이트를 함께 언급한 보도량이 급증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 따르면 지난달 22일부터 10일 현재까지 현대차지부를 러다이트와 언급한 보도는 100여 건, 이 가운데 이 대통령 발언이 있던 지난달 29일 이후 기사만 60여 건에 달한다.
이문호 소장은 “이재명 정부가 업무보고를 중계하는 취지가 현장성과 목소리를 듣겠다는 데 있다면, 대통령의 발언 역시 노조의 실제 요구를 충분히 듣고 나와야 한다”며 “현재 발언은 언론 프레임에 포획된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쟁점 '집단 이기주의'로 뭉개는 언론
현장에선 언론이 여러 쟁점이 있는 사안을 “집단이기주의로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한주 금속노조 언론국장은 “이 사안은 자본의 해외전략과 공급망 변화, 국내 물량 등 여러 요소가 얽히고설켜 노동자들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노조로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언론계가 기존 보도가 잘못됐다면서도 문제를 바꾸지 않는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김 국장은 “취재 전화를 걸어온 기자들이 다짜고짜 '로봇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 소식지 등 원자료를 공유하면 기존 보도가 왜곡됐다고 인정하면서도 보도 방향은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면서 “한국사회에서 노조에 대한 혐오와 집단이기주의로 보도해야 '팔리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지부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크게 늘었는데, 주된 질문은 '주가가 떨어지는데 현장 조합원들 반응은 어떠냐'는 것이었다”면서 “현대차 주가가 노조 소식지가 나온 다음날 떨어졌다며 탓하는 듯한 질문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현대차지부는 지난 29일 재차 낸 소식지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지부가 노사 합의 없는 해외물량 이관 및 로봇 자동화에 반대하자 보수언론은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라며 비난했다. 언론에 묻는다. 그럼 대안없이 들어오는 로봇과 물량(일자리) 빼가기에 아무소리도 하지 말고 있으란 말인가? 언론과 기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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