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노동자 몫’ 줄고 ‘자본 몫’ 는다

1985년에 아이비엠(IBM)은 미국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기업이었고, 직원을 40만명 가까이 거느린 최대 고용주 중 하나였다.
현재 엔비디아는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면 40여년 전 아이비엠보다 가치는 거의 20배, 이익은 5배 더 높다. 그러나 고용 인원은 아이비엠의 약 10분의 1 수준이다.
이 단순한 비교는 오늘날 기업 활동에 따른 경제적 보상이 노동이 아닌 자본에 급격히 쏠리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업 이익은 급증했고, 그 이익에 따라오는 시장 가치는 더욱 커졌다. 그 결과 기업, 주주, 고성과 직원을 포함한 자본은 승승장구하는데,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미미한 이익이 돌아갈 뿐이다. 2019년 말 이후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평균 시간당 임금은 3% 올랐고, 근로자 전체의 총소득은 8%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이 기간 기업 이윤은 43%나 치솟았다.
특히 인공지능은 경제 생산물의 더 많은 부분을 노동이 아닌 자본으로 유입시켜 이러한 추세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주 상황은 이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 해고가 증가하고 구인 공고는 급감한다는 소식에도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지난 6일 사상 첫 5만선을 돌파하며 마감했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이 같은 괴리는 활황인 경제 지표와 비관적인 체감 경기 사이의 단절을 설명하며, 앞으로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에 따르면, 노동에서 자본으로의 이익분배 전환은 40년 이상 진행됐다. 미국 국내총소득(GDI)으로 측정한 경제 생산물 총액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58%에서 지난해 3분기 51.4%로 하락했다. 반면 이 기간 기업 이윤의 비중은 7%에서 11.7%로 상승했다.
노동 소득 분배율의 하락은 기업이 노동자에게 임금을 적게 주는 것보다는 경제를 지배하는 노사 관계와 기업의 유형이 변한 영향이 더 크다고 이 매체는 설명했다. 1980~1990년대에 노동조합이 쇠퇴하고 아웃소싱이 확산하면서 노동자들의 교섭력이 약화한 것도 이런 상황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자동화로 기계, 로봇, 컴퓨터가 노동자를 대체하는 현상은 제조업에서부터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파스쿠알 레스트레포 예일대 경제학 교수는 1980년 공장에서 발생한 부가가치의 66%가 임금과 복리후생으로 노동에 다시 투입됐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이 수치가 45%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오늘날 가파르게 성장하는 거대 기술 기업들은 임금을 많이 주지만 고용 인원은 많지 않다. 지난 3년간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매출은 43% 늘었는데 직원 수는 그대로였다. 기술 기업의 사업 모델도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의 자본은 공장, 건물, 기계가 아닌 알고리즘, 운영 체제, 표준, 사용자 네트워크로 구성된다.
엔비디아도 1980년대 아이비엠과 달리 제품을 설계할 뿐 직접 제조하지는 않는다. 이런 기업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경계가 모호해져 기술을 설계하는 직원은 일종의 인적 자본이며, 이를 반영해 주식으로 보상받는다.
인공지능 모델 개발업체인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는 “인공지능은 특정 인간 직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노동력을 전반적으로 대체하는 것”이라며 “특정 직업이 사라지기보다는 대기업이 전반적으로 흔들리고 노동 집약도가 훨씬 낮은 스타트업으로 대체되는 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레스트레포 예일대 교수는 “기업이 운영에 인공지능을 통합하면서 매출이 노동으로 가는 비중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며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도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사회적 기술이나 대인 관계,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과 더 저렴한 제품과 서비스를 얻게 되는 소비자들이 승자가 되겠지만, 가장 큰 승자는 주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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