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거리두기]AI 시대 러다이트 운동은 가능한가

AI에 의한 실업의 대재앙이란 공포를 확산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려는 태도로는 AI 시대의 토네이도를
막지 못한다. AI 자동화는 천천히, 분야별로, 미세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침투한다. 그래서 러다이트 운동은 사실 불가능하다.
AI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보다 무조건 반대하는
그곳이 토네이도의 취약지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인공지능(AI) 광풍이 ‘기술적 실업’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치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들여 날려 보내는 토네이도를 보는 것 같다. 토네이도는 단순히 ‘강한 바람’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공기 덩어리들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지는 불안정성의 극단적 결과다. 토네이도는 에너지가 새로 창조된 결과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에너지의 급격한 재배치로 인해 만들어진다.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 상승과 하강, 안정과 불안정. 이 모든 요소는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다만 어느 순간, 이 질서가 국지적으로 붕괴하면서 눈에 보이는 파괴적 형태로 응축될 뿐이다. 토네이도는 두려운 자연 현상이지만, 넓은 지역을 고르게 파괴하지 않는다. 같은 마을에서도 어떤 집은 완전히 사라지고, 바로 옆집은 멀쩡히 남는다. 파괴는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는 곳을 집중적으로 파괴한다는 점에서 선택적이다.
오늘날 AI를 둘러싼 광풍은 이 자연 현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AI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 기술이 아니다. 자동화, 계산 기계, 소프트웨어, 플랫폼화, 성과 압박, 생산성 경쟁과 같이 AI 기술의 모든 요소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축적되어온 기술적, 경제적 에너지였다. AI는 그것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급격히 회전시키고 가시화했을 뿐이다.
기술적 실업에 대한 공포는 그래서 미래의 문제라기보다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불안정성이 토네이도처럼 눈앞에 형체를 드러낸 순간에 가깝다. 토네이도를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흔히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한다. 하나는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과잉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왜 하필 내가?”라는 부당함의 감각이다.
AI 공포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AI와 자동화로 인한 기술적 실업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한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토네이도 자체가 아니라 하늘만 원망하며 피할 곳과 방법을 준비하지 않는 우리 자신이다. AI가 가져올 일자리의 변화와 노동의 구조적 변동에 대비하지 않고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한탄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AI 토네이도의 한복판으로 몰아넣는다.
인간만이 가능한 새 과업 준비해야
얼마 전 현대자동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생산 현장 투입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하였다. 현대차가 제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기업 가치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고용 불안과 노동 구조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대차 노조가 보여준 기술적 실업에 대한 공포는 ‘2025 제조솔루션 미래전략포럼’에서 밝힌 현대자동차의 무인공장 추진 계획에 관한 입장에서 잘 드러난다. 현대자동차의 무인공장 ‘다크 팩토리’는 사람이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불을 켤 필요도 없어서 그야말로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공장’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배제하고 오로지 AI 기반 로봇만으로 운영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꿈의 공장’이 노동자들에게는 디스토피아적 ‘암흑의 공장’으로 다가온다. AI 로봇이 인간에게서 모든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공포가 서서히 우리 의식을 침범하고 있다. 그렇다면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의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 산업혁명 시기처럼 “빨리 적응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까?
기술적 실업은 기술 혁신 과정에서 인간 노동이 새로운 용도를 찾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마찰 현상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기술 발전이 일자리 전체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기계는 단순히 사람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동화되지 않은 다른 작업에서도 사람을 보완하여 그 일을 대신할 사람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 역사를 통틀어 기술에는 항상 두 가지 뚜렷한 힘이 있었다. 노동자를 대체하여 일시적으로 실업을 초래하는 ‘대체의 힘’과 그 반대로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보완의 힘’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정도를 과장하고, 자동화와 노동 사이의 강력한 보완 관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발명되어 처음 설치되었을 때 이 기계가 은행 창구 직원을 대체하여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이 기계는 오히려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ATM이 창구 직원의 현금 인출 업무량을 줄이고, 직원들이 대면 상담이나 재정 상담과 같은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ATM이 엄청나게 늘어난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은행 창구 직원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20% 정도 증가했다.
중요한 것은 일에는 언제나 기술 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과업이 있고, 덜 받는 과업도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과업이 변화하면서 직업의 내용과 형식도 바뀐다. 어떤 사람은 기술 변화의 혜택을 받고, 어떤 사람은 기술 변화의 위험에 노출된다. AI 시대에 우리는 자동화를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자동화의 위협을 덜 받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과업을 찾아야 한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할 때도 똑같았다. 1870년대 최초의 내연기관이 개발되기 전 주요 교통수단은 마차였다. 이를 위해 수백만 마리의 말이 필요했는데, 말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헨리 포드가 유명한 모델 T를 통해 자동차를 대중 시장에 선보인 이후 1912년에는 뉴욕의 자동차 수가 말보다 많아졌다. 그로부터 5년 후 뉴욕에서 마지막 마차 전차가 운행을 중단했다. 자동차가 마차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새 분야 개척은 노동자의 과제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자동차로 넘어가고, 자동차 자체가 AI 발달로 전혀 새롭게 진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 사회에도 교통수단은 필요하다. 미래 교통수단이 설령 오늘날의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기술과 일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로봇과 자동화를 바라보아야 한다. 산업용 로봇은 1961년 GM 공장에 유니메이트가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1970년대에 겨우 ‘몇천 대’ 규모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산업용 로봇을 처음 도입한 것도 1978년 현대자동차 울산 2공장이었다. 현재 제조업 공정의 자동화에 엄청난 역할을 하는 산업용 로봇은 지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1만명당 운영 중인 산업용 로봇 수로 계산하는 ‘로봇 밀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고 제조업 고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노동과 고용의 성격이 변하고 있을 뿐이다.
AI로 노동 구조와 산업 현장이 재편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 변동을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으로 저항하는 것은 별 효과도 의미도 없다.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은 흔히 기술 진보에 대한 비이성적 저항의 상징처럼 소비되지만, 사실 러다이트들은 무작정 기계를 미워한 불온 세력이 아니라 자신들의 숙련노동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기계를 도입한 고용주에 맞선 권익 운동을 벌인 이들이었다. 오늘날 AI와 자동화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은 사실 현대차 노조처럼 그동안 기술 혁신의 온갖 혜택을 다 받은 고숙련 노동자들이 아니다. AI 기반 로봇과 자동화로 불리한 위치로 내몰린 사람들은 우리나라 제조업 대부분을 구성하는 중소기업의 중·저숙련 노동자들이다. 이들을 보호하고, 새로운 직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정부와 사회의 몫이다.
그러나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도 표준화될 수 없는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노동자의 과제이다. AI에 의한 기술적 실업의 대재앙이라는 공포를 확산시켜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려는 태도로는 결코 AI 시대의 토네이도를 막지 못한다. 산업혁명기 기계는 도입 즉시 기존 숙련을 무력화했지만, AI 자동화는 천천히, 분야별로, 미세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침투한다. 그래서 AI 시대 러다이트 운동은 사실 불가능하다. AI 대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보다 무조건 반대하는 바로 그곳이 토네이도의 취약지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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