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뢰 애벌레는 왜 꽃향기를 풍길까 [강석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6. 2. 1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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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필자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때 뻔한 약육강식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지만, 동식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는 감탄하며 본다.

연구자들은 남가뢰 어미가 식물에서 꽃향기 성분을 모아 알에 저장해 애벌레가 써먹게 했을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성체나 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만일 그랬다면 재미가 덜했을 것이다). 결국 애벌레 몸에서 꽃향기 분자를 만든 것이고, 게놈 분석 결과 합성에 관여하는 산화 반응 유전자 2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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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뢰 유충은 리날룰(2)을 비롯해 8가지 구조의 17가지 모노터페노이드 분자를 만들어 꽃향기를 내어 벌을 유혹한다. 8가지 구조의 생합성 경로(추정)로 이 과정을 촉매하는 효소 유전자 두가지(CYP345BZ1과 CYP347BT1)도 밝혀졌다. 막스플랑크화학생태학연구소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언제부터인가 필자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때 뻔한 약육강식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지만, 동식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는 감탄하며 본다. 속임수, 즉 사기는 상대의 인지적 약점을 역이용하는 것이고 따라서 고도의 인지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서 ‘녀석들, 제법인데…’라며 감상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연 역시 ‘속이고 속는 세상’이고 결국 더 잘 속이고 더 안 속는 자가 살아남는 진화 게임의 현장이다.

그런데 최근 필자의 상상력을 초월한 속임수 사례를 접하고 무릎을 쳤다. 동물이 식물의 꽃향기를 모방했다는 것인데, 필자의 과학 상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식물은 동물보다 게놈의 유전자 수가 더 많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의사소통이나 방어를 위해 다양한 분자(화합물)를 만들어야 하고 따라서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 유전자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향료의 거의 전부가 식물에서 유래하는 이유다.

몇몇 식물은 냄새 분자를 만들어 속이는 전략을 진화시켰는데, 대표적인 예가 꽃에서 썩은 고기 냄새를 풍기는 식물로 ‘시체꽃’으로 불린다. 이 냄새를 맡고 날아든 파리가 꽃에 내려 서성거리다 꽃가루받이를 한다. 지난해에는 꽃에서 다친 개미 냄새를 풍겨 체액을 빨아먹는 풀파리를 끌어들여 꽃가루받이하는 박주가리속 식물이 보고되기도 했다. 다들 기발한 전략이지만 식물은 뛰어난 화학자이므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바이오아카이브에 등록된 독일 막스플랑크화학생태학연구소 연구팀의 논문은 거꾸로 곤충(남가뢰 애벌레)이 꽃향기를 모방해 자신이 기생할 벌을 유인한다는 관찰과 분석을 담고 있다. 남가뢰는 ‘파브르 곤충기’에도 나오는 곤충으로 알에서 깬 애벌레들이 풀 줄기를 기어올라가 무리를 지어 있는데, 선명한 주황색이라 얼핏 꽃처럼 보인다. 지나가던 벌이 주변에 내려앉으면 얼른 올라타 같이 벌집으로 가서 내린 뒤 벌 애벌레와 먹이를 먹고 자라 성체가 되면 떠난다. 이런 삶의 방식을 탈취(편승)기생이라고 부른다. 벌의 입장에서는 화를 자초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왜 벌은 남가뢰 유충 무리에게 내려앉을까.

연구자들은 이 녀석들이 벌의 페로몬을 흉내 낸 냄새 분자를 만들어 끌어들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가뢰 유충이 내뿜는 휘발 성분을 분석하자 전형적인 꽃향기 분자인 리날룰을 비롯해 모노터페노이드 계열 분자가 17가지나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들 속씨식물의 꽃에 흔한 향기 성분이다.

연구자들은 남가뢰 어미가 식물에서 꽃향기 성분을 모아 알에 저장해 애벌레가 써먹게 했을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성체나 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만일 그랬다면 재미가 덜했을 것이다). 결국 애벌레 몸에서 꽃향기 분자를 만든 것이고, 게놈 분석 결과 합성에 관여하는 산화 반응 유전자 2개를 확인했다. 동물에서 꽃향기 분자의 생합성 경로(일부)가 밝혀진 첫 사례다.

선명한 주황색인 남가뢰 유충 무리가 풀 줄기 위에 뭉친 모습이 꽃처럼 보이는데다 꽃향기까지 나니 벌들이 깜빡 속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가뢰 유충이 풍기는 꽃향기가 어느 수준일지 직접 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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