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수택과 개달물 사이에서

마흔을 이르는 말 불혹(不惑)은 주관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불혹은 열정의 사그라듦일지도 모른다. 혹한다는 말은 삶에 대한 애착과 열망이니, 필자는 죽는 날까지 세상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치고 싶지 않다. 열정적 삶은 윤택(潤澤)하다. '적실 윤(潤)'에 '못 택(澤)'의 조합인 '윤택'은 물기가 자작한 상태를 말한다. 의기로 끓는 피, 감동의 눈물, 몰입하여 고인 침, 노동과 사랑으로 솟은 땀은 모두 삶을 적시는 물이다. 이렇듯 체액 흥건한 삶이야말로 윤택이다. 덕(德)이 못물처럼 그득하면 '덕택(德澤)'이고, 은혜가 넘치면 '은택(恩澤)'이다. 우리 삶의 모든 매끄러운 관계 뒤에는 늘 촉촉한 체액이 흐른다.
소중한 물건을 만지는 손길에는 땀이 밴다. 그 땀과 세월의 흔적을 '수택(手澤)'이라 한다. 자주 읽어 손때 묻은 책 수택본(本)이 대표적이다. 제3자에게 수택은 더러운 때에 불과할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미련이자 사랑이다. 어린 시절, 시골집 마루의 짙은 고동색 때깔이 지저분하게 보여 잣대로 벗겨내다 야단을 맞았다. 돌아보니 마루의 칠흑 같은 더께는 가족의 면면한 삶이 아롱진 수택이었다. 끼니때마다 둘러앉아 먹다 흘린 찌개 자국, 흙투성이로 뒹굴며 공부하던 아이들 흔적이 켜를 이룬 행복한 기록이었다.
수택은 노동과 사랑의 땀이요 접촉의 역사다. 씻어내야 할 불결함 아니라, 곁에 두고 어루만져야 할 소중함이다. 그 윤기는 따뜻한 마음과 기나긴 세월이 빚은 추억의 질화(質化)이다. 물신(物神)이라는 말 마주할 때면 가끔 혼란스럽다. 자본주의 물질만능을 꾸짖는 말인지, 반대로 애지중지 손때 묻은 물건에 깃든 영혼을 뜻하는지 헷갈린다. 이력이 삭제된 신상품의 쉬운 소비와, 오래 함께한 물건의 수택 사이에서 필자는 후자를 택한다. 손때 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물건에는, 어루만지다 떠난 이의 정령이 깃든다. 낡고 퇴색한 것들에 신비로운 기운이 고였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 노랫말은 수택에 대한 따뜻한 통찰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 많이 소비하고 너무 쉽게 버린다. 이러한 행태는 이윽고 물질을 넘어 사람과 관계에까지 번졌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수택'이라는 아름다운 물건은 이제 거북한 처지가 되었다. 보건학 용어에 '개달물(介達物)'이라는 것이 있다. 병원체를 매개하여 전달하는 모든 비활성 무생물을 뜻한다. 환자의 옷가지, 수건, 가구, 서책 등이 이에 해당한다. 괴질이 휩쓴 곳을 불살라 버린 역사 기록은 이들 개달물의 제거 과정이었다. 사람의 온기 스민 물건이 바이러스의 매개물로 지목되면서, 수택은 어느덧 빛을 잃고 오염원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들이야말로 수택으로서 모두 더없는 소중함 아니던가.
방역을 위해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는 것은 분명 긍정적 변화이다. 덕분에 독감 환자도 줄었다 한다. 하지만 그만큼 소중한 이들의 손때와 손길도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서재에 가득한 수택본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아이들에게 이 책들은 아비의 기운이 배인 유산일까, 아니면 처분해야 할 개달물일까. 몽당비 귀신은 빗자루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써야 비로소 붙는 정령이라 했다. 과학과 기술의 속도전 속에 추억과 사랑은 자꾸만 설 자리를 잃어간다. 물신(物神)이던 수택은 어느덧 개달물(介達物)로 전락하였다. 언젠가 삶이 끝났을 때, 내가 남긴 흔적들이 깨끗이 치워야 할 오염원이 아니기를 바란다. 누군가 그리움으로 가만히 어루만지는, 은은한 수택으로 남을 삶을 살아야겠다.
유호명 경동대학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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