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환칼럼] 과연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인가?

정상환 2026. 2. 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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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중계 국정의 빛과 그림자

국민의 안방으로 배달되는 국무회의 생중계 영상은 행정의 유리벽을 허문 혁신처럼 보인다. 성남시장 시절 '집무실 CCTV'로 투명 행정의 상징이 되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 국가 경영의 정점으로 확장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필자의 눈에 이 파격적인 풍경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국정의 전부인가. 그 이면에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자의적 투명성의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져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국무회의 생중계는 법률이나 제도로 명확히 정례화된 시스템이라 보기 어렵다. 대통령실은 사안의 성격과 중요도에 따라 공개 여부를 그때그때 검토하고, 선별적으로 카메라를 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행정의 구조적 투명성이라기보다, 정권이 강조하고 싶은 장면과 메시지를 선택적으로 송출하는 '자의적 투명성(Arbitrary Transparency)'의 형태에 가깝다.

공개가 의무가 아닌 통치자의 선택이 되는 순간, 생중계는 국정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고도의 홍보 프레임으로 전환될 위험을 안게 된다.

이러한 선택적 노출은 필연적으로 디지털 포퓰리즘을 동반한다. 정책 결정은 본질적으로 느리고 고통스러운 조율의 과정이지만, 생중계라는 렌즈를 통과하면 즉각적인 효능감을 주는 '사이다 콘텐츠'로 재구성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타인에게 비치는 이미지를 통제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라 설명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국무회의와 업무보고 현장에서 국무위원과 고위 관료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솔직한 이견보다, 대중에게 유능해 보이거나 대통령의 문제의식과 어긋나지 않는 발언에 더 신경 쓰게 된다.

여기에 노엘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이론이 결합하면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공개된 회의라는 거대한 공론장 속에서 대통령이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순간, 고립을 우려한 반대 의견은 자연스럽게 위축된다. 건강한 내부 견제와 숙의가 사라진 자리를 동의와 수긍만이 채우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외교·안보·예산 등 민감 사안을 비공개 사유로 든다. 이는 현실적으로 타당한 설명이지만, 동시에 불편한 갈등이나 정책적 실패, 부처 간 이견을 가리는 편리한 명분으로 작동할 여지도 있다.

최근 국무회의와 부처 업무보고 공개 장면을 보면, 산업재해 대책이나 금융 관행을 강하게 질타하는 모습은 생생히 전달되지만, 예산 조정 과정에서의 충돌이나 정책 실행 단계에서의 현실적 제약은 '비공개'라는 장막 뒤로 숨는다. 실제로 일부 부처 업무보고 과정에서 정책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역사·문화적 발언이 공개되며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낳은 사례도 있었다.

결국 국민이 접하는 것은 국정의 총체적 진실이 아니라, 정권이 취사선택한 '편집된 투명성'이다. 관가에서 "생중계라는 형식이 내용을 삼켰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숙의(Deliberation)가 사라진 자리를 정치적 연출과 마케팅이 대신할 때, 행정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사례를 들어 생중계 국정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각료회의를 공개하며 파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회의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대통령의 모두 발언과 각료들의 공개적 충성 표현이 강조되는 무대로 변질되었다. 미 언론과 학계는 이를 행정의 희화화이자 권위주의적 정치 연출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 '수사적 거리두기(Rhetorical Distancing)'는 정책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대통령이라는 최종 권위를 보호하는 전략적 장치다. 그러나 대통령이 모든 국정 현안에 직접 개입하고, 그 과정을 생중계의 중심에 두는 순간 이 완충 장치는 사라진다.

루즈벨트의 '노변정담'이 12년 동안 약 30회라는 절제된 노출을 통해 메시지의 권위를 유지했던 것과 달리, 빈번하고 자의적인 공개는 오히려 리더십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 모든 결정을 직접 설명하고 공표하는 대통령은, 향후 발생할 정책 실패의 책임 또한 분산 없이 온전히 떠안게 된다. 이는 스스로 정무적 안전지대를 좁히는 선택이기도 하다.

투명성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미완의 정책이 다듬어질 때까지 치열한 논쟁과 솔직한 이견이 오갈 수 있는 안전한 숙의의 공간이 보장될 때, 공개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제도화되지 않은 자의적 생중계는 국정 운영의 시스템을 약화시키고, 정치를 즉각적 카타르시스에 기대는 이벤트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우리가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이 국정의 전부가 아님을 인식할 때, 정치는 비로소 연출이 아닌 실체로 다가온다.

생중계라는 화려한 '빛' 뒤에 가려진 숙의의 '그림자'를 복원하는 것. 그것이 이재명 정부가 진정한 소통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국정 중계가 아니라, 카메라가 꺼진 곳에서 조용히 조율되어 완성된 단단한 정책의 결과물이다.

정치는 중계방송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짊어지는 책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권력을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권력을 연출하는 조명으로도 쓰인다.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The Brain & Action Communic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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