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박재항〉일본이 세계를 변화시킨 3대 발명품과 개표 방송

전남일보 2026. 2. 1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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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항 서경대 광고홍보영상학과 교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8일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승리한 집권 자민당 후보 이름 위에 꽃을 붙이고 있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어쩌다 보니 지난 1월하순부터 2월 초순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일본 여행을 했다. 필자가 나온 동양사학과 동문회 주최로 청일전쟁 130주년, 이차대전 종전 80주년을 맞아, 청일전쟁 후 강화조약이 체결된 시모노세키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를 4박5일에 걸쳐 방문한 게 첫 번째 여행이었다.

이어 2월 초에 죽마고우 친구들과 후지산 근처의 시즈오카를 방문했다. 1차 여행은 일본 관련 전공을 한 동문 교수가 주요 인솔자 겸 해설자로 나섰다. 동문회 주최이기는 하지만 동문들의 친지들도 다수 참가했다.

다양한 전문성을 지닌 이들이 이동 버스 안에서 강연을 펼친다. 동문회 여행의 핵심이자 다른 여행과의 차별점이라고 하는 이 '달리는 강의실' 의 강사 선임과 진행사회를 맡았다. 청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퀴즈 형식으로 일본과 연관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중 하나가 다음이었다.

"세계를 변화시킨 일본의 발명품 세 개를 든다면, 무엇일까?"

세상에 없던 혁신 제품으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라이프스타일 등을 새롭게 만들어낸 제품들이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기존의 카테고리에서 완전히 다른 상품으로 취급된다며, 원래 카테고리에서 새로운 카데고리를 만든 셈이라고 힌트를 주었다.

더 나아가 필자가 광고 회사 시절에 주로 맡았었던 전자, 자동차, 생활용품 분야에서 하나씩 나왔다고 했다. 사실 이 질문은 2006년에 삼성의 브랜드전략과 관련해 만난 마케팅이란 학문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스터 마케팅'이란 별명을 가진 미국의 필립 코틀러 선생이 필자에게 던진 질문으로부터 나왔다.

"재항, 세상을 변화시킨 삼성이 개발하고 만든 제품이 있나요?"

선생이 '이를테면 말이오'라고 말을 이으면서, 예로 든 제품 중 하나가, 내가 일본 여행단에 던진 질문의 답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개발된 그 제품은 바로 소니에서 1979년 세상에 선을 보였던 워크맨이었다.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레코더&플레이어인 워크맨은 사람들이 이동하거나, 야외 활동을 하면서도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혼자 헤드셋을 착용하고, 좋아하는 곡들로 구성된 직접 녹음한 테이프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개인주의와 취향의 다양화, 야외 여가 활동 증가, 어려지는 음악의 주소비자 등의 조류에 맞추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 제품이었다. 소니는 이 제품으로 혁신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어령 선생이 1981년에 일본에서 먼저 발간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도 그 지향의 정수를 담은 제품으로 워크맨이 나온다.

휴대용 음악기기라는 이 제품은 사실 소니의 라이벌이자, 매출에서는 앞지르고 있던 마쯔시다의 파나소닉에서도 개발에 열을 올렸었다. 접근방식이 달랐다. 소니의 창업자로 기술 개발 분야를 맡고 있던 이부카 마사루는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오디오기기의 크기를 개발진에게 제시했다.

반면 마쯔시다의 개발진은 기존의 오디오기기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연구했다. 애플 컴퓨터의 개발 초기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어느 날 전화번호부(yellow page)를 가져와서 책상에 놓으며 컴퓨터는 전화번호부보다 더 커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전자에서 자동차로 넘어가서 나오는 일본 제품은 도요타의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승용차이다.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를 함께 구동체로 삼는 자동차로 하이브리드라는 문자 그대로 융합 혹은 합체를 뜻하는 단어를 이상용어로 만들었다. 이질적인 것들을 합쳐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일본다운 발상이자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퀴즈에 도전한 이들이 가장 풀기 힘들어했고, '호텔에서 그날 아침에도 봤을 것'이라고까지 힌트를 주어야 겨우 맞추곤 했던 마지막 정답은 바로 화장실의 비데였다.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러시아 출신의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는 일본에 와서 비데를 처음 보고 흥분해서 '일본인들은 천재'라고 외쳤다고, 그의 통역을 맡은 유명 수필가이기도 했던 여네하라 마리는 전했다.

그는 도쿄에서 숙박한 호텔에서 처음 비데를 보고, 체험하였다고 한다. 감탄을 한 그 첼리스트는 바로 파리에 있는 그의 집에도 비데를 설치하겠다고 했고, 비데를 만드는 기업들에서 카탈로그를 받아서 신간센(新幹線)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열차 안에서 그렇게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상세하게 연구했다고 한다.

그가 본 비데는 정확하게 말하면 '변기부착식 비데'이다. 원래 유럽에서 쓰던 건 프랑스식 비데인데, 화장실 안에 변기와 별도로 존재했다. 보통 호텔의 화장실 안에는 변기, 세면대, 욕조, 그리고 비데가 있었다. 스페인, 이태리, UAE등 비데를 목격한 곳에서는 어디나 비슷했던 것 같다.

요네하라 마리는 밀라노의 어느 싼 호텔에서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으로 쓰면서, 비데만은 방 안에 설치한 것을 봤다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로맨스어(라틴어가 분화하여 이루어진 언어를 통틀어 이르는 말)권의 비데에 대한 집착'을 말하기도 했다.

보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변기와 분리돼 사용하는 비데'에 대한 집착이다. 효용 측면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변기부착식 비데의 장점을 이렇게 역시 흥분하여 외쳤다고 한다.

"아아, 뭐가 감동적이냐 하면, 이 발명의 결과 욕실 면적이 획기적으로 절약되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야. 이제까지 응가를 엉덩이에 묻힌 채 비데까지 이동해야 했던 심각한 희비극에서 인류를 해방해줬다는 것이지."

공간이용의 효율성이 개선되고 실내 청결 유지를 저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며, 일상적인 행위의 편리성과 존엄성을 높인다는 제품의 특장점을 바로 광고로 옮겨도 될 만큼 명료하게 표현했다.

그런 장점을 가능하게 만든 아주 근본적인 제품의 소위 콘셉트가 있다. 역시 로스트로포비치 본인이 프랑스식의 기존 비데와 비교해 정확하게 집어내었다.

"벌써 몇백 년이나 비데를 애용해온 프랑스인이 찾아내지 못한 것을 일본인들은 일순간에 이루어냈어. 비데와 변기를 합체하다니 정말 혁명적이지 않나!"

죽마고우 친구들과의 여행 중간에 일본 총선일인 2월8일이 끼어 있었다. 일찍 저녁을 마치고 일본식 여관의 5인실에 모여 함께 출구조사 결과 공개로부터 시작하는 개표방송을 봤다.

스튜디오 안에서 360도 회전하는 로봇팔 카메라에 선거구 맞대결 애니메이션 등 한국의 화려, 신기, 역동적인 개표방송을 따라하려 애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거기에도 축소, 융합, 효율 추구의 속성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하긴 일본의 정치체제란 것도 따지고 보면 왕정과 내각제의 요상하게 틀어지거나 합쳐진 양상을 많이 가지고 있긴 하다.
박재항 서경대 광고홍보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