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ZAM’으로 한국 메모리 패권에 도전한다
한국 메모리 의존 낮추기 위한 미일 동맹 탄생
“ZAM 실패해도 HBM 대체 움직임은 지속될 것”

“기존 메모리 설계는 인공지능(AI)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10년 동안 AI 기술 발전을 가속화할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려 합니다.”
이달 초 조슈아 프라이먼 인텔 공공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일본 소프트뱅크 산하 반도체 기업인 사이메모리와 함께 차세대 AI용 메모리 ‘ZAM(Z-Angle Memory)’ 개발에 나선다는 발표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양분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 아예 새로운 설계 방식으로 도전장을 내밀겠다는 것이다.
9일 대만 디지타임스는 시장 분석 기관 세미비전을 인용해 “지금의 메모리 공급난은 주기적인 현상이 아닌, 몇몇 회사가 독점한 단일 기술에 대한 의존성이 촉발한 구조적 문제”라며 “ZAM 프로젝트는 공급망 위험 관리를 위해 추진되는 측면이 크다”고 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미국이 한국 주도의 메모리 산업을 공략하기 위한 파트너로 일본과 손잡았다는 점을 주목한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이 메모리 패권을 쥐기 전인 1980년대에 활약한 ‘1세대 메모리 강자’들인 만큼, 기술 개발에 성공할 경우 이들 조합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ZAM, 어떻게 다른가
HBM은 높은 탑처럼 쌓은 D램 다이(die·메모리 칩 한장)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실리콘관통전극(TSV)으로 연결한 구조다. 마치 고층 빌딩에 설치된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가 층간 이동을 돕는 것과 같은데, 하나의 HBM 안에는 TSV가 설치된 ‘구멍’만 1만개 이상이다. 이 같은 수직 설계는 최단 거리로 데이터를 옮겨 속도 면에서는 우위가 있지만, 중앙부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인텔이 사이메모리와 개발에 착수한 ZAM은 수직 설계 대신 ‘사선 설계’를 취한 게 특징이다. D램 다이를 층층이 쌓는 것은 같지만, 수직인 TSV 대신 비스듬한 구리 배선이 서로 연결하는 구조다. 이들 배선은 중앙에 있는 수직 채널을 중심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퍼져 있어, 마치 높은 건물 한가운데 기둥을 세우고 각 층에 사다리를 뻗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인텔은 “중앙부 열기를 더 빠르게 발산시킬 수 있고, 이론적으로 HBM보다 D램을 더 많이 쌓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ZAM은 HBM 대비 다이당 탑재한 D램 면적이 30% 이상 늘고, 같은 크기에서 용량이 2~3배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선 “메모리는 데이터 이동 거리가 몇 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만 길어져도 성능이 크게 달라지는데, ZAM 같은 사선 설계가 그런 단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패권에 도전하는 미·일 동맹
인텔과 사이메모리는 내년 ZAM 시제품을 만들고, 이르면 2029년부터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당장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지만, 업계가 촉각을 세우는 것은 ZAM이 사실상 미국·일본 양국의 메모리 명운을 건 국가 프로젝트로, 지정학적 패권 다툼의 하나로 읽히기 때문이다. ZAM의 기반이 되는 인텔의 NGDB(차세대 D램 접합) 기술은 미국 에너지부·국가핵안보국이 운영하는 선진 반도체 기술(AMT) 프로그램 지원을 받고 개발됐다. 특히 미국 정부가 지난해 인텔 지분의 9.9%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된 만큼, 한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ZAM 프로젝트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텔과 손을 잡은 일본 역시 ZAM을 자국 메모리 재기(再起)의 중요한 프로젝트로 보고 있다. 사이메모리의 모회사인 소프트뱅크는 “이번 협업은 일본에서 선진 반도체 기술을 창출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2024년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위해 일본 국립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리켄)와 후지쓰의 후원을 받아 사이메모리를 설립했다. 소프트뱅크가 오픈AI와 손잡고 초대형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를 추진하는 만큼, 미국과 일본의 국가대표들이 ZAM 개발에 성공할 경우 단숨에 대규모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ZAM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점치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다. 그간 인텔과 일본계 반도체 기업이 과거 영광을 되찾기 위해 수차례 새로운 시도를 해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인텔은 파운드리 부활을 노렸지만 적자의 늪에 빠져 한때 위기론이 나왔고, 일본 역시 국가 주도로 D램 업체 엘피다를 설립했지만, 시장 확보에 실패하고 좌초했다. 김정호 카이스트(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사선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공정을 성공시키는 건 상당히 어려운 과제”라며 “ZAM 자체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HBM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계속해서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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