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대신 좁쌀 먹고 살아난 딸 “부모님 손 한 번만 잡아봤으면”

김찬우 기자 2026. 2. 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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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재심, 역사의 기록] (131) 제주4.3희생자 故 신두원 무죄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 앞에 핀 동백꽃이 돌담 위에 내려앉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토벌대를 피해 가족을 데리고 산으로 몸을 피했다가 잡히면 큰일날 것 같아 혼자 자수한 뒤 행방불명된 제주4.3희생자 고(故) 신두원의 억울한 명예가 회복됐다.

10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제주4.3 희생자 故 신두원 아들 신권섭 씨가 청구한 재심 사건에 대한 재판을 진행, 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인은 1947년과 1950년, 두 차례에 걸쳐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희생자다. 먼저 1947년 제주지방심리원에서는 무허가 시위와 집회 등을 이유로 3000원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후 1950년 7월 제주지방법원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를 뒤집어쓰고 징역 3년에 처해졌다. 남로당원으로 활동하며 폭도에게 식량과 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썼다. 

그러나 이 같은 공소사실은 증거도 없을뿐더러 증언을 바탕으로 한 사실과도 맞지 않다. 

고인의 아들 신권섭, 딸 신영자에 따르면 고인은 외도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산으로 도피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가족들과 함께 1948년 12월 초 산으로 몸을 피했다. 

약 6개월간 숨어 살던 중 고인은 잡히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산에서 내려와 자수했고 고인의 두 자녀는 그길로 아버지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재판 기록에서는 1950년 7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가족들은 1949년 5~6월쯤 이미 고인을 떠나보냈다. 그래서 고인이 어떻게 생을 마감하게 됐는지도 몰랐고 이제야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 알게 됐다.

발언 기회를 얻은 딸 신영자 씨는 "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동네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산으로 갔다. 어머니는 출산 3일만에 지팡이를 짚고 겨우 산에 올랐고 이를 반복하다 결국 병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젖도 먹어보지 못한 채로 고모할머니에 업혀 산으로 갔고 아버지가 자수한 뒤 어머니는 겨우겨우 외도에서 친정인 애월까지 갔다"며 "외할머니는 좁쌀을 구해다 끓여 체에 거른 뒤 나를 먹였고 어머니는 나를 낳고 3년 만에 돌아가셨다"고 울먹였다. 

또 "나는 태어나서 아버지 딸이라는 말, 어머니라는 말을 못 해보고 살았다. 배우지도 못했고 지금까지 고생하며 살았다. 평생 한 번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봤으면 좋겠다"며 "나 같은 사람 세상에 없다. 어머니 아버지 손만 한번 잡아보면 세상에 소원이 없겠다"고 흐느꼈다.

그러면서 "이 한을 어떻게 푸나.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됐나 싶다. 시대를 잘못 만나 잘못 태어다 고생하며 살았다. 할 말이 많지만 가슴이 아파 못 하겠다"고 억울함을 토해냈다. 

재판부는 "희생자가 가족을 데리고 산으로 피신해 숨어 지내다 파출소에 자수해 들어간 뒤 가족과 연락도 하지 못하고 행방불명됐다"며 "사망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한 억울함이 얼마나 클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 선고가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가족을 짓누른 억울함을 푸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