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치콩나물국

"월요일, 아침까진 강추위 지속". "월요일 출근길 '꽁꽁'".
아내가 1층에서 밥을 차려 2층으로 밥상을 들고 올라왔다. 사각쟁반에 달걀부침 한 접시, 사과 한 접시, 밥 한 공기, 그리고 김치콩나물국 한 사발이 차려있다. 좋아하는 국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척 좋아하는 김치콩나물국이다. 밖으로 난 계단을 오르며 들고 왔는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다.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선 채 놋숟가락으로 한술 떠 입안에 넣었다. 시원하다. 잘 익은 김치의 감칠맛이 입안을 두루두루 바른다. 콩나물의 시원한 맛이 입안에 머물다 목을 넘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의 느낌에 아삭거리는 김치 식감이 어우러진 환상의 세계다. 밥 한술에 국물 한술 뜨다 밥 한술 말아 먹으면 국물에 우러난 갓 지은 탄수화물의 맛이 더해진다. 간간이 부드러운 두부가 숟가락 위에 올라탄다. 전에 없던 깍둑깍둑 썬 두부가 나이 들어가며 몇 첨 더 해졌다. 마지막 한 술, 사발을 약간 기우려 떠내어 입안에 들인 세상은 모든 게 어우러지고 우러난 진한 맛이다. 어디에도 없는 김치 콩나물국이다.
나무 사각쟁반의 아침상은 출근에 맞춰 늘 차려지는 밥상이다. 아내가 집을 비우지 않는 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침밥을 거르지 않도록 상을 차려준다. 술을 과하게 먹고 들어온 다음 날은 달걀 북엇국이거나 콩나물 황태 북엇국이다. 입맛이 없을 땐 무와 멸치로 우려낸 육수로 끓인 어묵국이거나 잘게 다진 소고기로 맛을 낸 미역국이다. 쌀뜨물로 끓인 미역국 등 상황에 맞춰 다양한 국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아침에는 김치를 잘 안 먹지만 김치볶음밥을 차려 줄 때는 한 그릇 뚝딱이다. 여기에 달걀부침 반숙은 김치볶음밥 위에 둥지를 튼다.
작년 겨울, 25년 전 설치했던 심야전기보일러 온수통이 터지면서 1층 보일러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2층 보일러가 별도로 설치가 되어 있어, 식사를 제외하고는 2층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겨울이 시작되며 매일 아침밥을 차려 올렸다. 내려가서 먹는다고 해도 추운데 먹다가 얹힐까 봐 걱정되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샤워하고 나오면 테이블 위에 아침밥과 그날 입을 옷이 침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30여 년 전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지을 때도 부엌에서 상을 차려 방으로 들어 날랐다. 부엌에서 마루를 지날 때면 그릇 밑이 얼어 상에 붙었다. 25년 전 집을 지을 때까지 5년 정도를 여러 명이 먹을 밥상을 하루하루 마다하지 않고 날랐다.
아침밥을 먹고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어찌 그리 예보를 칼같이 맞추는지, 강추위를 실감한다. 대문을 안으로 들인다. 나무의 봄눈이 눈앞에 마주한다. 삭막하게 메마른 가지에 물이 오른 것 같은, 호박색과 루비색의 봄눈이다. 맑다. 칼바람 같은 추위 속에 잘 버텼다. 출근을 서두를 시간인데, 칼바람이 얼굴을 할퀴는데 봄눈에 발이 붙었다. 눈에 봄눈이 박혔다.
늘 차려지는 아침상은 거창한 사건처럼 현란하지 않다. 소소한 온기가 늘 배어있는 검소한 사각 나무쟁반에 그려진 정갈한 그림, 오늘 하루 잘 견뎌내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잘 돌아오라는 작은 의례다. 밥상에 올라오는 국은 자극적이지 않다. 심심한듯하면서 깊은 맛이다.
아침에 먹은, 마지막 한 술 떠먹은 김치콩나물국에 자세를 낮춘다. 매섭게 때리는 칼바람에 당당하게 얼굴을 든다. 정신 사납게 짖어대는 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저녁 퇴근에 맞이한 나무의 눈은 여전히 호박색과 짙은 루비색의 봄눈이다. 현관문을 열고 맞이한 저녁상에는 갓 볶은 납작 어묵과 멸치볶음, 달걀을 풀어 끓여낸 김치만두국이 차려져 있다.
나무의 봄눈은 늘 겸손하다. 화려하지 않다. 거친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때를 기다린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잠깐의 휘청거림은 금세 제자리를 찾는다. 조급함이 없다. 이제 터질 봄눈은 늘 변함없이 거르지 않고 어떠한 말도 없이 계절의 약속을 품고 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지킬 수 있도록 가지 끝에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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