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우리는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

기호일보 2026. 2. 1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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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능력을 테스트할 때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능력을 살펴본다.

그 네 가지가 결합돼 일정 수준을 이뤘을 때 비로소 해당 언어를 잘 구사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서 노파 니니를 만나고 그녀가 들려주는 50~60년 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휘슬 스탑에서 발생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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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동국대 강사
언어 능력을 테스트할 때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능력을 살펴본다. 그 네 가지가 결합돼 일정 수준을 이뤘을 때 비로소 해당 언어를 잘 구사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능력은 모국어 사용자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소양이다. 모든 요소가 중요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낀다. 특히 친밀한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가까운 이에게는 조심성 없이 말로 상처를 주거나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다. 반면 내가 상대의 이야기를 얼마나 경청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스스로 고개가 숙여진다. 언제나 자신의 말과 감정을 먼저 쏟아내며 공감받기만을 바랐던 건 아닌지, 영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보며 생각하게 됐다. 1992년 작인 이 영화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삶에 공감해 주는 이로부터 받는 긍정적인 힘을 전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크게 두 시대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우선 1991년을 살아가는 여성 에블린의 이야기다. 그녀는 양로원에 계신 숙모를 뒷바라지하며 살아가는 무료한 중년 여인이다. 집안일에 매진하며 일상을 보내지만 남편은 아내를 투명인간 취급하기 일쑤다. 야속함 때문인지 정서적 허기 때문인지 에블린은 단 음식에 집착하게 됐고, 그 결과 체격도 커지고 자신감도 잃어버렸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서 노파 니니를 만나고 그녀가 들려주는 50~60년 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휘슬 스탑에서 발생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니니 할머니는 대기실 로비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남편을 기다리는 에블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다가온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잇지라는 여성이 어쩌다 살인범으로 몰리게 됐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사실 에블린이 처음부터 니니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삶의 희로애락을 지혜롭고 따뜻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의 마력에 금세 매료된다. 니니의 이야기 속에는 잇지와 루스가 있다. 차별과 억압이 당연시되던 시대 속에서 두 사람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연대로 서로의 삶을 지켜낸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잇지와 온화하고 인내심 깊은 루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지만, 그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균형이 된다. 영화는 이 관계를 섣불리 정의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함께 웃고 버티며 살아낸 시간들을 차분히 보여줄 뿐이다.

에블린은 니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조금씩 변해간다. 남의 인생인 줄만 알았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자신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그 안에서 잃어버렸던 용기와 자아를 발견한다.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이 영화가 말하는 이야기의 힘이란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하게 만드는 힘이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결국 묻는다.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영화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따뜻한 시선으로 들어주는 배려와 아픔에 공감하는 작은 행동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꽤 오래전 작품임에도 이 영화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누군가의 이야기와 연대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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