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이란의 현실을 증언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과 거리에서 손을 잡았다고 검문을 받는다면. 베일 아래로 머리카락이 보였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한다면.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한 쪽 눈을 잃어야 한다면. 밤중에 누군가 찾아와 내 가족을 어딘가로 끌고 간다면. 자유를 외쳤다는 이유로 처참히 학살을 당하게 된다면…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러한 참극은 장소와 시기가 다를 뿐, 비슷한 양상으로 세계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최근,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 저항하는 시위대가 수 많은 생명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미국 타임지(TIME)는 이란의 시위대가 2026년 1월 8~9일 동안만 최대 3만6천명가량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학살이다. 이보다 많은 인원이 구금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감옥조차 포화 상태라고 한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이란의 시위대 모습을 어렵게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공개됐다. 바로 〈Inside the ‘Woman, Life, Freedom’ protest movement in Iran〉(2026)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불과 2주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니, 최신작이다. 영화 속 시위대의 모습은 최근의 상황까지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영화에 나온 이야기들은 2022년 히잡 시위 직후부터 촬영되었고, 2025~2026년 현재 유혈 시위가 터지기 직전까지의 기록임을 명시한다. 그럼에도 현재 이란의 상황을 시위대의 입장에서 굉장히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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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영화 〈Inside the ‘Woman, Life, Freedom’ protest movement in Iran〉의 초반부, 이란 히잡 시위의 도화선이 된 지나 마흐사(Jina Mahsa Amini)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출처: DW Documentary 유튜브) |
다큐멘터리는 독일의 도이체벨레(DW) Documentary라는 국제 공영방송사에서 공개했다. 유튜브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www.youtube.com/watch?v=us8B_KdcB3c) 영화를 공개한 곳은 독일방송이지만, 처음 이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한 감독은 이란의 한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37세의 청년, 슈레쉬(Shorresh Afkari)다. 슈레쉬는 도저히 이란에서 이 영화를 편집/제작 완료할 수 없어 프랑스인 동료에게 원본을 전달하였고, 유럽에서 협업 제작 과정을 거쳐 독일 공영방송이 공개한 것이다. 영화는 고생 끝에 국제공동제작 형태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왜 ‘Woman, Life, Freedom’일까
2022년 9월. 이란의 젊은 여성, 지나 마흐사 아미니(Jina Mahsa Amini)의 죽음이 이란 사회를 뒤흔들었다. 당시 22세였던 지나는 가족들과 함께 테헤란에 방문했다가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이 삐져 나왔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 당한다. 조사를 받던 중 지나는 의문사 했고, 정권은 ‘심장마비’라고 주장했지만 지나가 보안군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수많은 여성들과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때 시위대가 채택한 운동의 구호가 ‘Woman, Life, Freedom’(여성, 삶, 자유)이다. 쿠르드어로는 Jin, Jiyan, Azadî(진, 지얀, 아자디)라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위 구호를 쿠르드어라고 강조하는 맥락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운동의 뿌리와 정신이 이란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인권운동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나의 어머니 또한 쿠르드인이며, 지나의 장례식에 찾아온 조문객들이 쿠르드어로 ‘Woman, Life, Freedom’를 외쳤고, 이 문구가 이란 전역으로 퍼져나가 2022년 히잡 시위의 구호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감독 슈레쉬는 이 시위에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카메라를 들고, 기록하고, 영화를 만드는 일-으로 연대하고자 마음 먹는다. 감독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하기로 한다. 그리고 인상적인 한 장면. 히잡을 벗어들고 멋지게 브이를 날리는 한 여성의 뒷 모습과 함께 다큐멘터리는 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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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Inside the ‘Woman, Life, Freedom’ protest movement in Iran〉 속 장면, 검은색 옷을 입은 여성이 한 손을 올리고 있는 뒷모습 (출처: DW Documentary 유튜브) |
탄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예술과 생존의 기록
이란에서 정권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면 죽음, 적어도 감옥행을 각오해야 한다. 2022년 히잡 시위를 배경으로 제작된 한 가족의 소동극 〈신성한 나무의 씨앗〉(2024)을 연출한 모하마드 라술로프(Mohammad Rasoulof) 감독은 정권 비판적인 영화를 찍는다는 이유로 여러 탄압을 받아왔다. 영화를 촬영하던 시기에도 8년형 실형을 선고 받았고, 감독은 이 과정에서 국외로 망명했다. 감독과 일부 배우들은 칸 영화제에 함께 참석했지만, 미처 이란을 빠져나오지 못한 배우들은 사진으로 참석할 수밖에 없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란 정부의 검열과 제작 금지령 속에서도 계속해 사회적인 영화를 만들어 온 자파르 파니히(Jafar Panahi) 감독은 〈그저 사고였을 뿐〉(2025)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한 전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 국민들은 그의 영화를 여전히 볼 수 없다. 이건 무슨 비극인가. 〈그저 사고였을 뿐〉은 자파르 파니히 감독이 실제 감옥살이를 했을 당시, 조사관에게 참혹한 고문을 당한 시위대 수감자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모티브가 된 영화임에도 말이다.
〈Inside the 'Woman, Life, Freedom' protest movement in Iran〉 또한 위의 영화들이 제작되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위험성과 절박함을 안고 만들어졌다. 특히 다큐멘터리라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는 특성, 시위대를 찍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감독과 출연자 또한 안전을 전혀 담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블러 처리되어 있지만, 이 제작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영화는 감독과 제작진을 비롯해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 택시운전사, 예술가, 의사, 어머니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슈레쉬의 카메라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 중인 미트라다. 미트라는 시위대에서 사람들을 선동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독실한 종교가정에서 자랐기에 외출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거의 ‘죄수’나 다름 없다고 표현한다. 이란에서 자유연애는 가장 큰 금기를 깨는 일 중에 하나라고 한다. 특히 미성년자의 연애는 말할 것도 없다. 집안에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 함께 있는 것은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이란의 독재 정권이 여성을 억압하고 성적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 상상 이상으로 기만적인 제도가 있는데, 바로 ‘시가(Sigheh)’라고 불리는 ‘일시적 결혼’ 제도다. 이슬람의 시아파 율법을 근거로 하는 제도로 최소 몇 시간에서 몇 년까지 기간을 정해 맺는 계약결혼이다. 혼전 성관계를 금지하는 율법안에서 합벅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명분을 대지만, 여성을 성적으로 통제하는 제도라고 비판 받는다. 남성은 여러 명의 ‘시가’ 아내를 둘 수 있으나, 여성은 다른 남성을 만나려면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더불어 경찰이 커플을 길거리에서 검문할 때, ‘시가’ 증명서가 없으면 구금을 당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강제로 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 속에 몰리기도 한다. 2022년 시작된 ‘Woman, Life, Freedom’ 운동 이후, 이란의 젊은 세대에게 ‘시가’는 철저한 거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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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에서 미트라가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출처: DW Documentary 유튜브) |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도 미트라는 좌절하지 않고, 그녀의 파트너 아라쉬와 사랑을 나누는 형태로 독재체제에 저항하고 있었다. 미트라는 아라쉬와 함께 하기 위해 보수적인 기숙학교에 들어갔다고 그녀의 집안에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온다. 아라쉬와 재회하지만, 둘은 갈 곳이 없다. 어딜가도 안전하지 않다. 계속 검문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둘은 계속 사랑을 나누고, 히잡을 벗어 던지고, 함께하길 선택한다.
또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 중 하나는 택시운전사 카브다. 카브는 28세 청년으로, 택시 운전을 하기도 하지만 시위대에 함께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카브는 이 영화의 제작을 돕기도 한다. 그는 열심히 일해도 점점 빈곤해지는 자신의 처지와 이란 사람들의 삶을 걱정한다. 그럼에도 희망을 갖고, 시위대의 일을 함께 한다.
언젠가는 그들의 키스가 평범한 일상이 되기를
감독은 시위에 함께하는 이란 사람들을 만나며, 중요한 질문에 봉착한다. ‘이란인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탄압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이런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그리고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는가.’ 더불어 ‘이러한 엄격한 검열 속에서도 이란은, 어떻게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었는지’도 말이다.
슈레쉬는 화가 골바하르를 만난다. 그리고 골바하르가 그린 머리카락이 보이는 여성의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골바하르는 지나가 세상을 떠난 후, 여성의 머리카락이 보이는 그림을 그려 그 분노를 표현했다. 골바하르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쪽지에 희망의 문구를 적어 주차된 차와 닫힌 대문 속으로 메시지를 꽂으며 거리를 산책한다. 그 행위만으로도 감옥에 구금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 외에도 부상한 시위대를 치료해주는 의사, 택시운전사 카브의 어머니 이야기,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영상, 늦은 밤 거리에서의 외침, 무력충돌에 맞서는 시위대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감독은 수차례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여러 압박 속에서 잠시 이란을 떠나있기로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찾아올 이란의 풍경을 카메라에 기록한다.
영화의 말미.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소식이 차례대로 소개된다. 마주하기 싫은, 안타까운 소식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를 끝까지 직면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재 이란의 독재정권을 고발하는 강력한 증언으로 세상에 나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마도 이 영화에 제일 먼저 등장한 미트라와 아라쉬의 장면일 것이다. 어떻게 촬영된 건지, 실제 그들의 모습인지, 만들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그런 사실여부는 그들의 모습 앞에서 그닥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감독이 제기한 질문, ‘이란인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탄압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이런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답을 강력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너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미트라의 연인, 아라쉬의 희망이 언젠가는 이란 사회에 일상이 되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이란의 자유를 외치는 시위대에 연대의 마음을 보내며, 〈Inside the ‘Woman, Life, Freedom’ protest movement in Iran〉(2026)을 추천한다.
[필자 소개] 변규리: 1989년생. 관찰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 왔고, 그 습관이 발전해 다큐멘터리라는 툴을 탐구하게 됐다. 지역공동체 라디오 구로FM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다. 2016년 퀴어 페미니스트 미디어 그룹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큐가 더 좋아졌다. 다큐는 관객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공동의 경험을 감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세상에 미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에서 집행위원으로도 함께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Play On〉(2017 연출), 〈너에게 가는 길〉(2021 연출)이 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다양한 현장에서 미디어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 극영화, 웹컨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pink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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