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고아로 살아온 억울한 세월, 모든 것을 앗아간 제주4.3

김찬우 기자 2026. 2. 1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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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재심, 역사의 기록] (129) 3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20명 무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3이라는 말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눈물만 납니다."

집으로 찾아온 서북청년단에 의해 3대 독자였던 아버지가 끌려가 총에 맞아 돌아가시고 몇 년 뒤 남동생마저 홍역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재가해 떠났고 9살 된 딸과 조부모만 남았다.

애지중지 아껴주시던 조부모 덕분에 어떻게든 살았지만, 두 분은 스무살을 넘긴 지 얼마 안 된 손녀딸을 두고 운명을 달리했다. 세상에 홀로 남은 딸이 시집가며 호적은 사라졌다.

제주4.3희생자 고(故) 고창선의 딸 고영자 씨 사연에 법정이 숙연해졌다. 60여년 고아로 살아온 한스러운 인생을 비교적 짧게 이야기한 그의 북받친 흐느낌이 법정을 가득 메우면서다.

10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강기춘 등 20명에 대한 제3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을 진행했다. 

재판은 다른 직권재심과 마찬가지로 검사의 무죄 청구에 이은 모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고영자 씨 부친인 제주4.3희생자 故 고창선은 1948년 11월 18일 제주시 한림읍 자택에 있다가 서북청년단에 연행, 한림읍 대림리 수원초등학교 부근에서 총살당했다. 

앞서 고창선은 1948년 9월 15일 제주지방법원에서 포고 제2호 위반 혐의로 벌금 2000원을 선고받았다. 해산당한 불온 조직에 가입하고 경찰에 대한 증오심을 조장했다는 등 이유다. 

누명을 덮어쓰고 유죄 판결을 받은 두 달여 뒤 총살을 당한 것. 몇 년 뒤 남동생이 죽자 어머니는 떠났고 조부모마저 22살 때 돌아가셨다. 고씨 집안 유일한 생존자였던 딸 고영자씨가 결혼하면서 호적은 사라졌다. 

발언 기회를 얻은 고씨는 "혼인신고 할 때 호적에 나 혼자 있었다. 이마저도 결혼하며 없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어떻게든 살았지만, 고생을 많이 했다"며 "말을 하려니 눈물밖에 안 나온다. 4.3이라는 말만 나오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라고 눈물을 쏟아냈다. 
4.3 당시 진압군이 총살을 집행하는 장면.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故 이남호의 며느리 김금자 씨는 고인이 희생된 이후 겪은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한스러운 사연을 소개했다. 이남호는 1947년 9월 27일 포고 제2호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뒤 1948년 11월 초, 출두 명령을 받고 지서로 갔다가 현 중문성당 터에서 경찰에 총살당했다.

중문성당은 4.3 당시 중문리에서 가장 참혹한 학살극이 벌어진 곳이다. 중문성당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중문·강정·대포·도순·상예·상천·색달·하예·하원·회수 등 주민 총 71명이 희생됐다. 80대 노인부터 2살 난 아기까지 다양했으며, 일가족이 집단 총살당한 사례도 있다.

김씨는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시어머니는 고통 속 너무나 힘들게 살다 돌아가셨다. 땅을 빌려주고도 빨갱이 가족이라고 돈도 제대로 못 받았고 농사지을 땅도 빌리지 못해 어떻게든 삼 남매를 살리려 오일장에서 국수 장사를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억척스럽게 살다 돌아가신 뒤 땅들은 빌려 간 사람들이 자기네가 땅을 산 거라고 우기더니 특별조치법으로 남들에게 다 팔아버렸다"며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독립운동도 하셨는데 4.3때 빨갱이가 돼 유공자도 못 됐다"고 억울함을 토해 냈다. 

이날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희생자는 모두 20명으로 대부분 1947년~1948년 사이 법령 제19호 및 포고 2호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강기춘, 오형준, 고창선, 정철훈, 신수길, 한공칠, 이기선, 신수용, 오창현, 이재공, 문철수, 정삼길, 이용준, 이남호, 김정생, 김상호, 한봉섭, 김상백, 조창휴, 장치만.

농사를 짓다가 이유 없이 경찰지서에 끌려가 구금된 이후 총살, 순찰 중인 군인에게 붙잡혀 총살, 예비검속으로 끌려가 총살, 육지 형무소에 이감 된 이후 행방불명, 조사 후유증으로 입원 치료 중 사망 등 다양한 방법으로 희생당한 이들이다. 

이날을 끝으로 제주4.3 특별재판부를 떠나게 된 노현미 부장판사는 "지난 1년간 제주4.3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참혹한지 간접적으로 목도하며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으로 재판을 해왔다"며 "오늘날 이 판결이 그동안의 잘못을 바로잡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2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김한석, 우정생, 정옥련, 문도훈, 김명국, 강원선, 강몽필, 송남규, 양기형, 오남곤, 김태우, 김완봉, 진생남, 고대호, 김봉우, 서인수, 고재철, 김진국, 김탁하, 문팽용

22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오도흠, 김병화, 부규방, 양동직, 문종옥, 오남숙, 오영호, 김종하, 김양선, 강인현, 고성학, 김두석, 고창잠, 고두옥, 양성수, 송만표, 강위옥, 양병오, 강순옥, 김태준

24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김정택, 현봉석, 최운길, 강희진, 문성순, 홍성태, 김홍집, 강순열(이명 강순옥), 채수삼, 김덕수, 오동식, 김기식, 오기봉, 진영숙, 김두규, 고방전, 부덕삼, 안상숙, 오창서, 고군옥

2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9월23일)
김태규, 홍종봉, 박신원, 지문옥, 오태전, 김옥선, 홍중화, 오태순, 오태보, 김윤평, 김희관, 한형조, 정홍남, 강인식, 고한성, 좌우보, 김두만, 김성훈, 조원배, 안대규

26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9월23일)
김봉호, 강창우, 양영춘, 현순종, 고성춘, 한우섭, 홍두표, 이동준, 임백기, 고원식, 조경호, 임기방, 이경문, 문기남, 김순경, 강을생, 윤수형, 이승택, 기경출, 송휴진

27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10월28일)
고창림, 강순홍, 문춘옥, 홍남하, 김창희, 김신림, 강순현, 김윤희, 고사만, 양병호, 배문경, 강상보, 박창효, 양을평, 박윤지, 오도연, 강주남, 신찬호, 김석구

28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10월28일)
안덕찬, 좌중호, 강승호, 신응반, 신응두, 김군택, 강병호, 현병림, 현기정, 문상기, 오규환, 강기종, 이수성, 양남호, 백우현, 이세근, 이계춘, 김용주, 이성규, 문보택

29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10월28일)
고완병, 김필순, 강위풍, 윤학석, 진윤식, 최문빈, 강효생, 김용철, 강영호, 강희찬, 임한준, 강승홍, 강성봉, 한석도, 오희윤, 강장성, 임평문, 조화옥, 송운옥, 오진옥

60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11월25일)
김병규, 김종인, 김화윤, 김능환, 백창순, 양원춘, 이성수, 강창겸, 김남형, 문진옥, 김성오, 김세홍, 손석규, 현인하, 김규현, 김현수, 고창룡, 정원호, 강창균, 송두경, 양이운, 김구하, 김의창, 양문오, 문지윤, 양철호, 이완형, 김규림, 김두호, 김인하, 이태훈, 양시우, 고치영, 홍옥녀(이명 홍옥례), 강반삼, 강창언, 김희현, 최병호

3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6년 2월10일)
강기춘, 오형준, 고창선, 정철훈, 신수길, 한공칠, 이기선, 신수용, 오창현, 이재공, 문철수, 정삼길, 이용준, 이남호, 김정생, 김상호, 한봉섭, 김상백, 조창휴, 장치만